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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디아스포라 태생의 바르나바 사도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11 조회수1,152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11일 (금)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

 

[오늘의 복음]  마태 10,7-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사람은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어라. 나병 환자는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는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10)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마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11)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12) 그 집에 들어갈 때에는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릴 만하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집에 내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평화는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복음산책]  디아스포라 태생의 바르나바 사도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의 축일(기념일)이다. 따라서 오늘은 연중주간의 복음보다는 사도의 축일에 맞는 복음(마태 10,7-13)을 미사의 복음으로 듣게된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바르나바 사도는 누구인가? 바르나바 사도의 이름은 신약성서에 모두 37번 등장하는데, 사도행전에 32번, 그 외는 바울로 사도의 서간들(1고린 9,6; 갈라 2,9.13; 골로 4,10)에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바르나바의 이름이 거의 매번 사도 바울로와 함께 거명된다는 것이다. 그는 키프로스 태생의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며, 원명(原名)은 요셉으로 레위 지파의 혈통을 이은 사람이다. 요셉이 "바르나바"(위로의 아들)로 불리게 된 이유는 그가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 하여 사도들이 붙여주었기 때문이었고, 그는 자기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사도 4,36-37)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 훌륭한 사람"(사도 11,24)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12명의 사도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사도 바울로와 함께 복음선포에 앞장섰던 공을 인정하여 "사도"의 칭호(사도 14,4-6.14; 15,2 등)를 붙여주고 있다. 그랬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 중에서 바르나바와 바울로는 성령의 특별한 은총으로 뽑혀 복음선포의 임무를 받았으며, 여기서부터 바르나바 사도는 바울로 사도의 제1차 전도여행(사도 13,4-14,28)과 예루살렘 사도회의(사도 15,1-29)에 함께 하였다. 바울로의 제2차 전도여행을 앞두고 요한 마르코와의 동행문제 때문에 두 사도는 심한 언쟁을 벌이고 헤어지게 되면서, 바르나바 사도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난다.(사도 15,37-39) 그 후로 바르나바 사도의 이름은 사도행전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바르나바 사도의 죽음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61년경 키프로스에서 선교하던 중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는 말도 있고, 밀라노 주교로 일하다 순교하였다는 말도 있다. 오늘날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플로렌쯔는 성 바르나바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위경(僞經)으로 "바르나바에 의한 복음서"도 전해오고 있다.

 

  오늘 바르나바 사도의 축일을 맞이하여 그가 출생한 디아스포라(Diaspora)에 대하여 잠시 살펴보자.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 외역(外域)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디아스포라는 B.C 721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제국에 멸망하면서부터 시작하여 B.C 587년 남쪽의 유다왕국마저 신바빌로니아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고향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인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동경하면서 회당(Synagogue)을 지어 종교생활을 영위했다. 대표적인 디아스포라 지역은 바르티아,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키레네,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이다.(사도 2,9-11) 디아스포라의 가장 큰 중심지는 로마제국의 3대도시에 속하는 로마,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극소수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구사하였고 대부분이 그리스어를 상용(常用)하였고 라틴어를 쓰기도 하였다. 이점은 그들이 주위의 문화적 환경, 즉 헬레니즘(Hellenism)과 로마니즘(Romanism)에 상당히 개방적이었음을 의미하며, 나중에 반(反)유대교적 사상과 친(親)그리스도교적 사상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을 파견하는 예수님의 파견설교(10장)의 첫 부분이다. 파견설교에 앞서 예수께서는 12제자를 선발하시고(2-4절), 그리고 그들에게 구마(驅魔)와 치유(治癒)의 권능을 주시면서(1절) 이방인들도 사마리아인들도 아닌 오직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 그들을 파견하신다(5-6절).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스승인 예수께서 해오시던 일과 같다. 우선 하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그 표지로 구마기적과 치유기적을 행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행하게 될 기적의 능력은 예수께서 거저 주신 것이므로 그들도 거저 베풀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아주 엄한 여장규칙(旅裝規則)을 제시하신다. 이 규칙에 의하면 어떠한 여벌의 것은 아무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가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의 철저한 청빈(淸貧)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공동체의 의무도 암시하신다.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자격은 철저히 복음선포에 메여있다. 복음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예수의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복음을 수용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의 선물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제자들이 비는 평화의 인사는 단순한 예의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의 수용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복음 선포자들에게는 구마의 능력도 치유의 능력도 없어 보인다. 무엇 때문일까? 여장규칙을 어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복음을 선포함에 있어서 어떠한 "여벌의 것"도 허용치 않은 스승의 당부를 빈말로 알아들은 때문일 것이다. 청빈(淸貧)의 뜻을 국어사전은 성정(性情)이 청렴(淸廉)하여 살림이 구차(苟且)하게 된 것이라 말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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