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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12 조회수1,107 추천수10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12일 (토) -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5,33-37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

 

  33) "'거짓 맹세를 하지 마라. 그리고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 하고 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4)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다. 35)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예루살렘은 그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다. 36)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나 검게 할 수 없다. 37) 너희는 그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만 하여라. 그 이상의 말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복음산책]  "아닌 것"은 끝까지 아니다.

 

  "살인하지 말라 -> 화도 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 음란한 생각조차 품지 말라", 그리고 "이혼장을 써 주어라 -> 아내를 소박(疎薄)하지 말라"는 산상설교의 본격적인 대당명제에 이어 오늘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 ->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는 네 번째 대당명제가 선포된다. 맹세(盟誓)란 자신의 증언을 다짐하는 약속을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자신의 증언을 다짐하는 약속을 함에 있어서 하느님을 증인이나 보증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 (하느님께) 맹세한다고 할 때는 두 가지 종류의 맹세가 있다. 하나는 "과거지향적-단정적 맹세"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지향적-서약적 맹세"이다. 전자(前者)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에 어떤 일을 했다, 또는 하지 않았다고 단언하면서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율법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레위 19,12)고 규정한다. 후자(後者)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약속이나 서약을 하면서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율법은 "주님께 맹세한 것은 다 지켜라"(민수 30,3)고 말한다.

 

  어떤 형태의 맹세가 되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문이나 명예를 걸고, 나아가 천지(天地)와 하느님을 걸고 맹세를 한다. 사실 과거지향적-단정적인 맹세는 불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어떤 일을 했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경우, 이를 주장하는 그 사람 자신만이 사실의 진위(眞僞)를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맹세가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사실의 진위를 말해도 주위의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이럴 경우 주위의 믿음을 얻기 위하여 되도록 비중이 큰 대상을 증인으로 걸고 맹세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 때 구약의 율법은 결코 거짓 맹세를 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미래지향적-서약적인 맹세는 아직 성사(成事)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두고 하는 맹세이기 때문에 맹세를 함으로써 일의 성취를 위한 결심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이 때 구약의 율법은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예외가 허락되지만 과거 1970년대 모든 공적인 의례에서 반드시 해야 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미래지향적-서약적 맹세의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 제3조) 이 맹세문 통하여 당시의 국가당국은 교육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국가관(國家觀)을 확립하려고 했다.

 

  오늘 예수께서는 어떤 경우에라도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신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우회적으로 하느님을 지칭하는 "하늘, 땅, 예루살렘, 자기 머리" 등을 두고 맹세하는 관행까지도 나무라신다. 하늘은 하느님의 옥좌이고,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며, 예루살렘은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며, 사람은 자기 머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어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회적 수법을 사용한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 항상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출애 20,7)는 말씀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자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절대적으로 통용되는 법칙은 총체적 진실성이다. 무엇이든 "예" 할 것은 반드시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반드시 "아니오" 해야 한다. 맞는 것은 맞는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다. 맞는 것을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그것은 맞는 것이며, 아닌 것을 아무리 맞다고 우겨도 그것은 아닌 것이다. 끝까지 우긴다면 그것은 악(惡)이다.(37절) 그러니 이젠 더 이상 맹세가 필요 없게 된 셈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강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세상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해서, 또는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행위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고 해서 닭 먹은 자신을 본인이 모르겠는가, 하느님께서 모르시겠는가? 하느님이 다 보고 계시고, 자기 자신이 알고 있지 않는가? 물론 억울한 경우도 있다. 억울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만 그렇다. 행한 일이 참되고 자신이 참되다면 하느님 앞에서는 억울할 게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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