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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계명의 응용 : 자선·기도·단식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16 조회수1,900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16일 (수)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1)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5)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복음산책]  십계명의 응용: 자선·기도·단식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의로움"을 6개의 대당명제(5,21-48)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선포하셨다.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되었으며, 이 새로운 해석은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약의 의로움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글자 그대로 준수함으로써 예수로부터 위선자로 책망 받기도 했으나 그들의 "의(義)"를 인정받았다. 이는 구약의 율법 자체가 유효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구약의 모든 율법과 규정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十誡命, Decalogue)이 건재(健在)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도래한 하느님나라를 위해 선포하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나은 의로움이 십계명의 기본 정신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십계명"이라는 단어가 모세오경에 들어 있지는 않다. 이 단어는 17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오경(五經)에는 "증거판"(출애 31,18; 32,15; 신명 4,15), "훈계와 계명의 돌판"(출애 24,12; 25,16), 또는 "두 돌판"(신명 5,22)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새로운 의로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구약에 주어진 십계명(출애 20,2-17; 신명 5,6-21)의 참 뜻을 하나하나 새겨들어야 한다. 십계명은 유일(唯一)하고 참되신 하느님께서 그분이 선택하시는 백성과 맺으시는 계약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유일하신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을 의미하며, 인간의 응답에 대하여 하느님은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며, 이것으로 인간은 자신의 품위를 회복해 나가는 것이다. 십계명의 참된 의미에 대한 해설은 도서출판 "일과 놀이"가 펴낸 해설판 공동번역 성서를 읽어보도록 권하고 싶다.(116-119 페이지 참조)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십계명 전부를 열거하여 각각의 계명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해 주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행적은 십계명에 대한 충분한 풀이로 간주된다. 마태오복음 5장의 여섯 개 대당명제는 우선 십계명의 5계명부터 10계명까지의 새로운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4일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는 산상설교의 둘째 부분(마태 6장)이 봉독된다. 마태오복음 6장은 대당명제와 같은 비중의 율법(律法)에 속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으로서 지녀야할 성덕(聖德)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이는 "십계명의 응용"인 셈이다. 예수께서는 신앙인의 성덕으로 자선(慈善)과 기도(祈禱)와 단식(斷食)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제시하신다. 그렇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유대교 안에서 널리 수행되었던 덕목(德目)들이며, 예수님 당대에는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행(善行)을 쌓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단들이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움은 무엇인가? 일단 이러한 선행(善行)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1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행이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행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이미 상(償)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償)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선행지침을 엄수(嚴守)해야 한다. 즉,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3절)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할 것"(6절)이고, "단식할 때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할 것(17절)"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숨을 일까지 모두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내리시는 선행지침을 글자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모든 선행이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숨을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조그만 선행을 하고도 크게 불려서 나팔을 불며 떠벌리고, 남이 몰라주면 오히려 섭섭해하는 우리들이다. 자신의 선행을 남들이 알아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받을 상을 다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과 신뢰심과 겸손의 마음이다. 신앙인은 이웃에 대한 자선을 통하여 사랑을 배우게 되고,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신뢰심을 얻게 되며, 음식과 육정(肉情)을 절제하는 단식을 통하여 겸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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