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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성심에 자신의 마음을 묶은 어머니 마리아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19 조회수1,353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19일 (토) -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기념일

 

[오늘의 복음]  루가 2,41-51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1)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42) 예수가 열 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 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어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46) 사흘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예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0)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 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그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복음산책]  예수의 성심에 자신의 마음을 묶은 어머니 마리아

 

  "너희들은 불쌍한 죄인들이 가야 할 지옥을 보았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이 세상에 불러일으키려고 하신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는 것을 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며, 또한 평화가 올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계속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다면, 머지않아 더 참혹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어느 날 밤 이상한 빛을 보게 되거든 이것이 세상의 많은 죄악에 대한 징벌 곧 전쟁, 기근, 교회와 교황에 대한 박해가 다가왔다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징표인 줄 알아라. 이를 막기 위하여 내가 오리니 사람들은 이 세상을 나의 티없는 성심에 의탁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도록 하라. 만일 내 청이 이루어지면, 소련은 회개할 것이며, 평화가 이루어지리라. 그렇지 않을 경우 소련은 그 오류를 온 세계에 전파하고 전쟁과 교회에 대한 박해를 유발할 것이며, 착한 많은 사람들이 치명할 것이며, 또 교황은 많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고, 여러 민족들이 멸망하게 될 것이다. ...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나의 티없는 성심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7월 13일 메시지) 이는 성모 마리아의 파티마 발현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13일에 세 명의 어린 목동, 루치아나, 히야친타, 프란치스코에게 총 6차례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매번 메시지를 통하여 죄로 인해 상처받은 하느님의 성심과 이를 또한 아파하는 마리아의 성심과 사랑을 드러내 보여 주셨다.

 

  오늘은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 기념일"이다. 예수성심대축일 다음 날인 오늘 교회는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을 마음을 공경하고 경축한다. 전례개혁이 있기 전에는 8월 22일을 그 기념일로 지냈지만, 1970년에 개혁된 로마전례에서 예수성심대축일 다음 날로 이 축일을 결정하였다. 일찍이 많은 교부들이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을 예수성심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서 묵상하여 왔다. 교황 비오 7세(1800-1823)께서 성모성심에 대한 신심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비오 12세(1939-1958)는 1944년 전세계 교회에 이를 선포하였다. 이는 1942년 10월 31일 파티마에서 거행되었던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성심에 인간성을 봉헌하는 행사"를 계기로 선포된 것이었다. 이로써 교회는 인간마음의 상징적 의미에 따라 하느님과 아들에게 봉헌한 마리아의 사랑을 전인간을 위한 모성적 사랑으로 공경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성심과 더불어 성모성심을 공경하는 이유는 성모의 마음이 천주성을 지닌 예수의 마음에 전적으로 매어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루가 2,41-51)은 예수의 유년시절에 관한 보도이다. 이 보도의 배경에는 "눈을 감은 채, 그러나 미소를 머금은 밝은 얼굴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무엇인가를 간직하려는"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려 주고 있다. 그녀가 간직하려 하는 것이 당장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예수의 성장과 함께 하나씩 밝혀질 것이며, 마지막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그녀의 마음 전부를 채울 것이다. 12살의 예수는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예루살렘 상경 길에 올랐다. 축제기간이 끝나고 사람들은 제각기 고향으로 향했지만, 예수는 의도적으로 가야할 고향 길을 접어버렸다. 3일 동안 예수는 "아버지의 집"(49절)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 랍비 등의 학자들과 함께 말이다. 예수는 그들 사이에서 듣고, 묻고, 피력하는 가운데 자신의 기지(奇智)를 모두 발휘하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지능과 그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였다고 한다.

 

  예수는 서서히 부모와 선생들과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유대교를 벗어나 다른 의식(意識)에로 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기의 때는 오지 않았다. 아직 메시아로서의 결정적인 도래는 멀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의 자의식(自意識) 속에 메시아로서의 의식이 아직 충만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흔히 방금 태어난 "아기 예수" 안에 온전한 하느님의 신성(神性)과 인간으로서의 인간성(人間性)이 내재(內在)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만약에 그렇다면 "아기"일 수 없다. 아기 예수 안에는 아기로서의 신성과 인간성이 내재할 뿐이며, 이 두 가지 본성(本性)은 온전하고 충만한 신성과 인간성을 향한 잠재력이다. 어린 소년 예수는 바로 그 완성을 향하여 매일 노력하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나자렛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이 순종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기 삶 전체를 세상에 내어놓을 그런 순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은 아직 오늘 일어난 사건과 소년 예수의 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 이성의 능력이나 통찰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예수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머리 속이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것이다. 이 점은 하느님의 신비가 머릿속에서 파악되기보다는 마음 안에서 충만하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마리아가 예수를 찾아 헤맨 "3일간"(46절)은 나중에 "파스카 신비의 3일" 안에서 그 참 뜻이 밝혀질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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