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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연중 제 12주간, 금) 복음산책
작성자이순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25 조회수1,226 추천수1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


신부님께 청하지도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무례하게,
성가와 성화를 삽입하여 신부님의 글을 퍼다가 올렸습니다.
모든 교우분들께 도움이 되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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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5일 (금) - 연중 제12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8,1-4 ....< 주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8, 1)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뒤따랐다.

2) 그 때에 나병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님, 주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3) 예수께서 그에게 손을 대시며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대뜸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4)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정해 준 대로 예물을 드려 네 몸이 깨끗해진 것을 사람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 산상설교와 나병환자를 고치심 >

[복음산책] 깨끗함은 사랑의 기본조건이다.


산상설교의 대단원을 마치신 예수께서 하산(下山)하신다.
산상설교의 청중이었던 제자들과 군중 모두 벅찬 가슴을 억누르며 가르침의 정신과 뜻을 따라 살기로
결심했으리라 믿는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의 가르침에서 보이신 율법학자들을 능가하는 권위(7,29)를
이제 행동으로 보이실 것이다.
가르침의 놀라운 권위를 인정한 군중과 제자들은 이제 실제로 구원을 가져오는
예수님 행위의 증인들이 될 것이다.

이에 마태오는 복음서 8-9장에 10가지 이적사화를 집성해 놓았다.
마태오는 10가지 이적사화 중간 중간에 유다인의 멸망예고(8,11-12), 예수추종의 자세(8,18-22),
세리 마태오의 소명과 식사공동체(9,9-13), 그리고 단식논쟁(9,14-17)을 곁들여
기적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자칫 기적을 통한 열광주의나 기적만능주의에 빠질 수도 있을 제자들과 군중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것이다.
나병환자의 치유는 소경, 절름발이, 귀머거리의 치유와 죽은 사람의 소생,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수용과 함께 근본적인 메시아 사명(이사 29,18-19; 35,5-6; 61,1)을
성취시키는 표징에 속한다.

왜 그럴까 ?
우선 소경, 절름발이, 귀머거리에 대한 메시아 사명의 성취는 "다시 봄, 다시 걸음, 다시 들음"이라는
구원의 첫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병환자의 치유는 "부정함"을 씻고 "정함"을 베풀어줌으로써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마련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의 깨끗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의 소생은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창조하는
메시아의 궁극적인 사명에 속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우선적으로 겨냥된 이유는 진복선언의 첫 번째 진복자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들이 하느님나라를 차지할 것(5,3)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이 가장 선호하는 제1의 청중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계획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나병환자의 치유는 이해되어야 한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원전(마르 1,40-45)을 옮기면서 이야기의 규모를 상당히 줄여버렸다.
허나 핵심적인 내용은 같다.
"주님, 주님은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2절)
예수 앞에 절을 하며 무릎을 꿇은 나병환자의 애달픈 간청이다.

이는 가족과 사회와 종교로부터, 나아가 하느님에게서까지 버림받은 소외된 자의
마지막 절규요 마지막 희망인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손을 대시며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대뜸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3절)

예수님의 손길은 나병환자의 부정(不淨)함을 정(淨)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예수께서는 일어난 일에 대하여 엄중한 함구령을 내리셨다.
다만 율법이 정한대로(레위 14,2-32) 곧장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공적으로 인정을 받은 후
예물을 드림으로써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명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미루어 볼 때 사실상 이런 증명은 필요 없다.
그러나 치유 받은 자의 공적인 사회복귀를 위해 필요한 절차임을 마태오가 알려주는 것이다.

아무튼 예수님의 손길 하나가 절망에 빠진 자에게 희망을, 소외 된 자에게
화친(和親)을 다시 선물했다.
그런데 희망과 화친의 조건이 깨끗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깨끗함이 없이는 사랑도 희망도 화목도 헛된 기대와 시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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