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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연중 제13주일, 교황주일) 복음산책
작성자이순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27 조회수4,046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 예수님 !

신부님께 청하지도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무례하게,
신부님의 글을 퍼다가 성가와 성화를 삽입하여 올렸습니다.
죄송한 줄 아오나, 모든 교우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신부님께서 즐겁게 봉사 마치시고 건강하게 다시 오시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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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6월 27일 (일) - 연중 제13주일 (다해) ....▣ 교황주일



[오늘의 복음] 루가 9, 51 - 62

<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9, 51)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은 길을 떠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53)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54) 이것을 본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 하고 물었으나

55)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고 나서

56)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57)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59)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60)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61)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



[복음산책] 내가 스승을 따르는 방법은 ?


오늘 복음으로서 예수님의 전교활동은 일대 전환기를 맞게된다.

루가는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진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로
결심한 시점을 근거로 갈릴래아 활동기(루가 4,14-9,50)의 막을 내리고,
예루살렘 상경기(루가 9,51-19,28)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한 새로운 여정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9,44) 직후에 시작된 것은
사람의 아들은 다른 어떤 곳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필히 죽어야 하며,
이곳에서 필히 부활해야 함을 암시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에 이르기 전까지 펼쳐질 예수님의 새로운 선교여행을 예고하는 것으로서,
분량으로 볼 때 루가복음의 1/3을 차지한다.
여행의 목적지는 분명 예루살렘이지만 이 여행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가 지도를 놓고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를 설정한다면,
당연히 갈릴래아 호수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직선경로 추정되는
"갈릴래아->티베리아->사마리아->세겜(그리짐산 근처)->베델->라마->예루살렘"의 경로를 택할 것이다.
예수님의 일행도 같은 노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발대를 먼저 사마리아 지방으로 보내어 묵을 곳을 찾게 하신다.(52절)
그런데 의외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의 일행을 노골적으로 거부한다.(53절)

사마리아 지방이 어떤 곳인가 ?

솔로몬의 통치 말기, 기원전 933년경에 히브리의 단일민족국가는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수도:사마리아)과
남쪽의 유다왕국(수도:예루살렘)으로 쪼개진다.(1열왕 12,19)
이스라엘왕국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의 침입으로 패망한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히브리족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곧 야훼신앙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혼혈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짐산에 새 성전을 세워 혼합종교를 신봉하였다.
따라서 정통성을 고수하는 유다인과 변질된 사마리아인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서로 냉대하고 적대시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예수의 일행을 거부한 처사는 당연한 귀결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고 했던가 ?
예수님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냉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늘에 청을 드려 불을 내리게 하여 저들을 불살라 버리자는 것이다.(54절)
이 대목은 구약의 엘리야가 북쪽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신을 섬긴 것 때문에 오십인 대장과
오십인 부대를 두 번씩이나 불살라 죽인 사건을 떠올려 준다.(2열왕 1,10-12)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그들에게 붙여진 "보아네르게스"(천둥, 또는 폭풍의 아들들)라는
별명답게 다혈질적이고 강한 질투심과 명예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격답게 이왕 가는 길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결판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차례의 수난과 죽음예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성공적인 상경과
예루살렘에서의 영광과 왕관이 번득이고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이 두 제자의 야박한 마음과 잘못된 생각을 꾸짖으신다.(55절)
이 꾸짖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경로는 수정을 가져오게 된다.(56절)
실제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바로 관통하지 않고,
당시 데카폴리스 지방과 사마리아 일부 지방, 베레아 지방을 두루 지나(17,11) 예리고를 거쳐(19,1)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어떤 경로를 택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길을 가느냐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대목에서 그 방법이 드러난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다른 길을 택하신 예수께서 도중에 만난 서로 다른 세 사람을 통하여
그 방법을 보여 주신다.


① 첫 번째 사람은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57절)고 했다.
예수께서는 직접 따르라고 부른 적도 없는 이 사람이 자발적으로 따르겠다는 열성적인 태도에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58절)고
말씀하셨다.

이는 제자들을 거두어 줘야 할 스승조차 마땅한 거처 없이 떠돌아 다녀야 할 처지를
자각하라는 말씀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 아래, 땅 위의 모든 곳이 예수께서
거처하시는 곳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아무튼 어느 곳이든 편안한 곳에 안주하는 자는 결코 예수를 잘 따를 수 없다.


② 두 번째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직접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부친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그 다음에 따라 나서겠다고 한다.(59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60절)는
말씀은 듣기에 혹독하리만큼 단호하고 냉정하다.

복음선포가 장례식을 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떤 신부라 할지라도 부모의 상(喪)을 제쳐두고 선교를 떠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상(喪)이 나면 어떤 일에서도 면제를 받는 게 우리의 풍습이지 않는가.
그래도 항상 우리 머릿속엔 하느님나라와 그 복음의 선포를 제일 가는 일로 심어놓아야 할 것이다.


③ 세 번째 사람도 자발적으로 예수를 따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집안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먼저 하고 오겠다는 것이다.(61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냉철하기 짝이 없다.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62절)
부친의 장례까지도 허용하지 않으신 예수님이 아니신가 ?

언감생심(焉敢生心), 작별인사를 먼저 하겠다니, 이 또한 어림도 없는 일이다.
누구든 예수를 따르고 그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것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미련도 동정도 금물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며, 어떤 자세와 태도로 예수님과 함께 고통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방법은 아니다.

오늘 복음이 말씀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신의 처지에 맞게
응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위의 세 가지 방법은 그 근간이 될 것이다. ◆ [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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