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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33)자신에게 휘두르는 채찍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01 조회수1,20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4년7월1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ㅡ아모스7,10-17;마태오9,1-8ㅡ

 

          자신에게 휘두르는 채찍

 

 

간밤에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를 가진 피자집 메니저가 오셔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편하게 앉으시라고 해도 소용없이 끝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계셨다. 그 메니저의 최선에 대하여는 가산점은 주고 싶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도 있지만 별로 들어가는 것도 없이 비싸기만한 서양개떡에 대하여 못마땅하기 때문에 피자를 자주 시켜먹지는 앉았다. 자식놈이 어려서는 엄마의 설득에 수긍을 했지만 지금은 커버린 아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피자를 시켜 먹는다.

이미 6월달 피자는 시켜먹었기 때문에 유효기간은 7월이 시작되는 오늘이 되어야 유효하다.

 

그런데 오늘부터 기말고사 시험에 들어간 아들의 샐쭉한 얼굴을 보며 격려 삼아서 어제 저녁에 피자를 시켜주었다. 배달 된 피자를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들은 피자가 어떻게 생겼든지 상관하지 않고 잘도 먹는다. 마치 치마만 두르면 여자로 보이는 것처럼 피자상자만 보고도 잘 먹는다. 그러나 그건 피자가 아니었다. 시골집 어머니께서 급조해서 빚은 개떡만도 못한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지난 번에 시킬 때부터 피자는 달라져 있었다. 새상품이 나왔다고 권하는걸 거절하고 원래 먹었던걸 먹겠다고 했는데 배달된 피자의 면상은 엉망이었다. 항상 좋았으니까 이런건 어쩌다 생긴 실수겠지 라고 여기며 생각없이 맛나게 먹는 아들에게 아무소리도 안하고 먹였다.

그런데 어제밤에 배달 된 피자는 더 엉망이었다.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먹는 것 가지고, 내돈 내고 내가 먹으면서 추접스런 모욕감이 느껴졌다. 내 앞으로 배당된 두 쪽중에서 한 쪽만 먹고 한 쪽은 남겨두었다. 그 사이에 아들은 그 피자를 다 먹어치웠다. 그냥 엄마가 큰 인심을 써서 이달에 피자를 두 번씩이나 시켜준 사실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 공부하는 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참을 인자를 쓰며 몸부림을 했다. 워낙에 많은 양을 생산하다보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참을 인자를 쓰느라고 시간이 갔다.

 

그런데 남겨둔 피자 한 쪽을 보고있자니 지난번에 참고 먹은 피자생각에 자꾸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전화를 했으면 또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텐데...

전화를 했다.

전국이 하나로 전화 접수가 되는 수화기에 해야 할 말을 또박또박 전달했다.

"새상품이 나오면 홍보를 해서 팔아먹어야지 왜 기존의 상품을 쓰레기를 만들지요? 당신들도 새상품 팔아먹을려고 기존의 상품에 쓰레기쳐서 만두처럼 팔아먹습니까? 이건 아니지 않아요?"

라고 시작된 고발은 남은 한 조각이 있으니 수거해 가시라고 결론이 났다.

 

그리고 곧 배달한 지점의 메니저께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는 상품에 제동을 거는줄 알고 토를 달면서 가볍게 대처를 했다.

"지금 당신이 문제 제기의 심각성을 모르나 본데, 당신이 와서 이 피자를 먹어보세요. 경제도 어려운데 이 피자 한 판이면 일용직 근로여성들 하루 일당입니다. 하루 뼈가 빠지게 남의 눈치보며 일해서 벌어다 당신네 피자 한 판을 자식에게 먹이는데, 그 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와서 보세요."

 

그대로 다시 만들어서 배달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나를 가지고 놀아요? 당신들은 피자 한 판을 더 배달해 주는 것으로 이 심각한 사안을 매꿀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피자 한 판을 더 먹으려고 그러는 줄 알아요? 다음에도 또 시켜먹어야 하니까 지금 그 상품 그대로 해 오세요. 적은치수로 견본이 될만큼만 해 오세요. 더 고급도 싫고, 우리가 시킨 것처럼 큰 사이즈도 싫고, 견본으로 기존대로만 해 오세요."

그러는 중에 아들놈은 엄마입에 넣지 않고 남겨둔 피자를 여느 때처럼 생각코 남긴줄 알고 두입을 베어 먹었다. 얼른 빼앗아 호일에 싸 두었다.

 

메니저가 찾아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그러셨다.

"보십시요. 메니저님이 오셔서 저희의 사는 모습을 보십시요. 결코 피자 한 판을 가벼이 먹을 수 없는 생활이 눈으로 읽혀지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에게 피자를 사서 먹입니다. 그런데 피자 한 판을 우숩게 여기는 피자장사들은 고객을 속이려 합니다. 사람은 입맛대로 음식을 찾아갑니다. 그 음식이 맛있으면 또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 식당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기존의 피자를 쓰레기 취급해서 고객의 입맛을 속여가며 신 상품을 팔아먹으려 한다면 그게 만두사장하고 똑 같은거지요.

 

그리고 저희 동네의 골목에 가보시면 트럭을 놓고 열심히 즉석에서 피자를 구워 파시는 아저씨가 계십니다. 적은치수가 5000원이고 큰 치수가 7000원입니다. 불과 씨름하면서도 최선을 다 해서 피자를 구워냅니다. 굽는 동안에 기다리시는 손님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농담도 해 주시는 배려가 당신들 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가족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큰 것으로 세네 판을 시키고도 돈이 더 남는 그 피자도 맛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피자를 시켜먹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런 상품을 받아 먹으려고 너무나 비싼 기업의 상품을 찾는 것은 아니지 않아요?

 

서민가정의 특별식이기 때문입니다. 고객 스스로가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시킨 피자가 피자 장사꾼에게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천한 음식이 된다면 그것이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이 특별한 상품이라고 품격을 높여도 높아질까 말까한 음식을, 당신들 스스로 그 품위를 추락시키는 모순에 대하여, 한 달에 한두 번 먹는 특별식을 특별식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브랜드 없는 노점의 음식만도 못한 역겨운 모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피자입니다. 어미인 제가 아들인 제 자식에게 시험성적을 독려하기 위해서 의욕을 북돋아주는 정성으로 마련한 특별메뉴가 그 사랑을 송두리째 짓이겨버리는 상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네 피자는 더 이상 특별한 음식이 될 수 없습니다.

 

저희 동네에 전화번호가 없는 짜장면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은 먹고 싶은 사람은 와서 먹어라는 겁니다. 모두가 배달을 선호하고, 손님들도 편히 앉아서 배달해 주는 음식을 사 먹으려는 세상에, 번화가도 아니고 주택가에서 쪼금한 가게를 열어 놓고, 먹고 싶으면 와서 먹어라고 배짱내는 그 사장님이 건방지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그래도 모두들 찾아가서 먹습니다. 불평 안합니다. 장사 잘 됩니다. 그 이유는 그 집의 사장님이자 주방장이신 분이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 맛에 자신이 있을뿐만 아니라 손님에게 가장 맛있는 자장면은 즉석에서 먹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분은 한 그릇의 자장면도 손님이 보는데서 면발을 만들어서 끓여줍니다.

그게 상품을 만드는 사람의 자신감입니다. 떳떳함! 

 

새상품이 나오면 홍보해서 팔으십시요. 그 동안에 먹어 온 고객의 입맛을 망쳐 가면서, 기존의 상품에 폐품 이용한 만두꼴 내면서, 기업이라는 명애를 이용하지 말라는 이야기 입니다.

보십시요. 이 밀가루 개떡 한 판 값으로 쇠고기를 이 돈어치 만큼 사고 상추 1000원 어치만 사도 밥상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생각해 보십시요.

단 돈 10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면 짜장면이 세 그릇에 군만두 서비스에 거스름돈까지 생깁니다. 피자 한 판 값이면 자장면이 몇 그릇인지 계산해 보십시요.  누가 이딴거 사먹겠습니까?

제 아이가 아니라면 결코 지불할 수 없는 거금입니다. 자식이 있기 때문에 부모들이 하루치 일당을 들여서 피자를 사 먹는거지요.

 

아마 당신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수고한 종업원들의 댓가도 피자 한 판 값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량으로 쏟아지는 피자 한 판을 받아먹는 고객은 대량이 아니라 각각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당신들은 잊지마십시요. 오늘 한 번이었다면 넘어가려고 했으나 지난 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양이라는 굴레를 지고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누구도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오늘밤에 당신의 생계에 가해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남겨둔 조각이 있으니 가져가십시요. 주방의 조리하시는 분의 손이 가다가 말아버린 음식을 먹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지 상의해 보십시요. 가정에서 해 먹는 음십보다 잘 해 준다고 해도 대량생산의 음식은 위험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음식은 피자가 아닙니다. 피자를 판다고 해서 피자 한 판 값을 우숩게 여기지 마십시요. 거기에는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요구할 값이 충분히 들어있습니다. 한 판의 피자는 대량생산의 이유라고 핑계를 대서는 안 될만큼 비싼 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끔적을 못 하고 앉아서 남겨진 조각을 수거하고, 변명을 중단해버린 메니저의 최선은 안스럽기까지 했다.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난 자리에 남겨진 작은 피자 상자를 열었다. 아들의 한마디!

"우와! 그래 맞아! 이게 피자야! 에이씨! 진작 말하지 안먹고 있다가 싹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는건데..."

아들의 말을 차단했다.

"그러면 못 써. 그분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되는거야. 그들이 부족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우리가 파렴치범이 되려고 한 것은 아니잖아! 엄마는 이 작은 피자도 공으로 먹고 싶지 않아서 쿠폰 모은걸 드렸는데 안가져 가신거야. 그러니까 좀 억울하다고 해서 손해를 끼치면 더 나쁜 사람이 되는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건 정당한 일이 될수 없는 결과를 낳는거야." 

 

그런데 그 메니저분께 드린 나의 모든 말들이 밤 내내 나에게 채찍이 되어 되돌아 오고 말았다.

도대체 나는 세상을 향해 무엇이 떳떳한가?

누군가 나에게 그런 요구를 해 왔을때 나는 그분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피자 한 판을 자식놈이 모르고라도 잘 먹었으면 되었지 그걸 꼭 꼬투리를 잡아야 했는가?

왜 세상을 좀 둥글게 살지 못하고 자꾸 모가 나려하는가?

또 이것이 모가 나는 행동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 메니저분께는 아무런 잘 못이 없는데 내가 너무한 것이 아닌가?

피자 한 판에 가난한 사람의 주접을 떨은건 아닌가?

 

날을 밝히면서 생각하는 것이란!

나의 언행이 나에게 채찍이 되어 나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에게 한 것이 그대로 훈화가 되어 나의 심성을 다루는 밤을 보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회초리다.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스승이다.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너무나 통증이 심한 체벌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어찌하여 너희들은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느냐? '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마태오9,4-5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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