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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기억하며...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06 조회수1,141 추천수3 반대(0) 신고
 

◎ 7월 6일 - 성녀 마리아 고레티 동정 순교자

▣ 마리아 고레티 (1890-1902) 


  “설혹 그녀가 순교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성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일상생활이 너무도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마리아 고레티가 성인품에 오르자 이탈리아의 사로티 추기경이 이렇게 고백하였다. 성녀의 시성식에는 성녀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수많은 군중과 함께 참석하였고, 그 한가운데는 당시 12살의 마리아 고레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66세의 알렉산드로가 무릎을 꿇고 회개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890년 10월 16일 성녀 마리아 고레티는 이탈리아의 안코라에서 가난한 소작인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얼마 후 가족들은 네투노로 이주하여 세레넬리 지주의 땅을 경작하였다. 늘 격렬한 노동에 시달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성녀는 10살이었고, 7명의 아이들 중 3번째였다. 경제적인 가난으로 아무도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으나 가난이 그들의 단순하고 순결한 신앙심을 막지는 못하였다.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를 도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성녀는 12살에 첫영성체를 하였다. 1902년 7월 5일, 더운 여름 오후에 오두막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성녀는 그 날로 자신의 창창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지주의 아들이었던 18살의 알렉산드로가 그녀를 겁탈하려 했던 것이다. 그 순간 굴복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할 것을 각오한 성녀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치 않으세요. 이것은 죄악입니다. 당신은 이로 인해서 지옥에 갈 것입니다.”라고 그를 설득하면서 힘을 다해 반발하였다. 목적을 이루지 못한 알렉산드로는 분별력을 잃고 단도로 그녀를 마구 찔렀다. 출혈로 실신한 성녀는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가망이 없었다. 다음날 겨우 의식을 찾은 성녀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걱정하였고, 자신을 이렇게 만든 가해자를 진정으로 용서한다고 말한 후 세상을 떠났다.


  가해자 알렉산드로는 살해범으로 30년형을 선고받고 강제노동에 끌려갔다. 강제노동을 하면서는 그는 참회하기는커녕 날로 난폭하게 행동하여 요주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꿈속에 마리아 고레티가 나타났다. 마리아는 아름다운 꽃을 모아 말없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 후 알렉산드로의 삶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진정으로 참회하는 행동을 보였다. 결국 그는 형기를 3년 남기고 27년 만에 석방되었다. 석방된 알렉산드로는 곧바로 마리아의 어머니를 찾아가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였고 이에 어머니도 그를 용서하였다. 용서를 얻은 알렉산드로는 카푸치노 수도회에 입회하여 평수사로 기도와 노동에 전념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린 순교자 마리아 고레티에 대한 신심이 날로 커갔으며 여러 가지 기적도 발생하였다. 1947년 마리아 고레티는 시복되었고, 1950년 시성되었던 것이다. 시성식이 있던 그 날, 25만 명의 군중 속에서 66살의 카푸치노회 수사 알렉산드로는 누구보다 기쁨과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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