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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138)Re:(복음산책) 그리스도의 얼굴이 없는 교회는?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10 조회수777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래 전의 일입니다. 독일에 있을 때 오스트리아에서 열렸던 종교 심포지엄에서 이화여대 종교학 교수님(?)의 말씀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로만 그리스도교적이고, 가슴으로는 불교적이며, 신장으로는 유교적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오늘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7월9일) 중국의 자오롱 사제와 그 동료 119명의 순교자 성인들을 경축하면서, 방대한 영토만큼 복잡한 중국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 선교의 역사를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교도 분명히 하나의 문화입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근거로 발전하고 확장되며, 사람들이 이를 더 이상 보존, 전수하지 않으면 쇠퇴하여 소멸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같은 경험의 <삶의 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발생한 문화를 잘 보존, 전수합니다. 이럴 경우 문화는 계속 확장되는데, 그 문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는 다른 곳으로 퍼져갑니다. 그 때 그곳에도 이미 다른 문화가 있습니다. 문화는 통상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영향력이 있는 문화는 몇 안 되며, 이를 일컬어 "모(母)문화"라고 합니다. 그래서 문화와 문화는 서로 만나서 교류하고, 수용되며, 타협하고, 융합되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합니다. 종교도 분명 문화이지만 종교는 강제적이고 의무적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종교의 거의 모든 내용을 신화가 내포하고 있지만, 신화는 강제성과 의무성을 띠지 않으며, 오직 상상력만 요구합니다.(이윤기 참조)


  그리스도교는 어떤 문화의 길을 걸어갔습니까? 부활하신 예수께서 열한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과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 끝까지 전하라고 "유언장"을 내렸을 때, 그들이 단번에 나가서 그 유언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진리이신 성령의 깨우침과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무장된 첫 증인들이 선교 길에 올랐고, 성과와 박해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 다음 구약성서가 그랬듯이 신약성서가 기록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동시에 복음은 박해를 무릅쓰고 로마제국과 희랍의 정신세계에도 선포됩니다. 이 과정을 복음이 이들 문화권에 적응한 것, 또는 보편성에로의 적응이라고 말합니다. 마치 레슬링 경기의 <그레코-로망>형 적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적응과정에서 로마제국에의 적응으로는 <교계제도>가, 희랍 철학과 정신세계에의 적응으로는 <신학>이 발생하여 그리스도교 문화의 큰 축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복음은 신학으로서의 연구대상도 아니오, 교계제도상 소수 고위층만의 소유물은 더더욱 아닙니다. 복음은 만백성의 것이고, 알아보고 들을 눈도 귀도 없는 자연의 것이기도 합니다.


  목요일 복음산책의 글 중에서 "오늘날 선교방법이 선교대상의 문화적 수용과 더불어 타협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선교대상 문화의 수용과 타협이 복음정신을 결코 훼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복음선포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동시에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첫 대상이 바로 나 자신이며, 복음을 선포하러 가야 할 자가 또한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특히 이준균님과 이순의님의 폭넓고 곧은 의견에 감사드리며, 생각으로 함께 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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