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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움'도 선물인가?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10 조회수1,215 추천수4 반대(0) 신고

독서: 이사 6,1-8
복음: 마태 10,24-33

얼마전 성령 강림 대축일 미사에서의 일이다.

봉헌하러 나가는 길에 성령의 선물을 하나씩 받아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천사복을 한 어린이가 들고 있는 바구니 안에는 하얀 비둘기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골라 가지고 왔다.

자리에 돌아와 펴보니 "통달"이라고 써 있었고, 그 의미가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그 많은 비둘기의 날개에 일일이 반짝이를 붙인 성의와, 그 하나 마다에 글을 써 넣은 정성에 감동하여 옆 자매를 바라 보았다. 자매도 자리에 오자마자 비둘기를 열어보았는데 갑자기 얼굴 빛이 흐려지더니 얼른 책갈피에 넣어버렸다.

의문은 잠시 후에 풀렸다. 자매가 다시 비둘기를 꺼내 읽는 것을 슬쩍 보았더니 거기엔 "두려움"이라고 써 있었다. 두려움에 대해 무어라고 풀이했는지는 미처 읽지 못했지만, 흐려진
자매의 마음을 해결해준 것 같진 않았다. ^^*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위엄 가득찬 거룩하신 하느님을 뵙고 두려움을 느낀다.
"큰일났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신다.
도대체 두려워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어째서 선물이 되는가?

'두려움'은 첫째로 '무서움', '겁에 질림', '공포' 처럼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반응이다. 그러나 우리가 교리 시간에 배우기론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 '경외심' '공경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그것이 '두려움'의 두 번째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도 '선물'이라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두려움이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밖의 뜻은 없을까?
우리말 '두려움'의 원어는 히브리어로 '야레', 희랍어로는 '포보스'이다. 이 단어들이 어떠한 때에 쓰였는가를 알면 그 뜻이 더 명확해질 것이다. 즉 위의 두가지 개념 말고도 <타락하지 않도록 삼가 두려워 하는(잠언 14,16) 마음>, 또 <악에 대항하도록 도와주는 의지>(사도 2,43; 5,5; 로마 11,20), 경건함(히브 12,28)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두려움'이란 항상 자신을 경계하는 마음, 즉 주자학에서 말하는 경(敬)의 사상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경(敬)이란 쉽게 말해서 외면적인 용모와 행동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사려와 감정까지 항상 삼가 조심하는 것을 말한다. 심신을 방종하게 풀어놓지 않는 항상 깨어있는 상태가 바로 경(敬)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敬)의 마음은 하느님께 순일(純一)하게 향해 있을 때에 비로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사상이니, 성령께서 이런 마음을 주신다면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있겠는가?

'두려움'이 좋은 선물인 이유는 또 있다. 성서 안에서 '하느님을 두려워 한 결과'와 '사람을 두려워한 결과'를 비교해보면 좀 더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즉 사람을 두려워 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창세 26,7).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고(1사무 13,10-12) 미친 시늉을 하고(1사무 21,13-14) 예수님을 부인했다(마태 26,69-74). 또한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지 못했으며(요한 12,42) 가식적인 행동을 하였다(갈라 2,12-13).

그러나 하느님을 두려워 한 사람들은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은 다른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한다(사도 9,31; 히브 12,28). 그래서 두려움 속의 기쁨(마태 28,8; 사도 2,43)과 두려움 속의 성화(2고린 7,1)가 그들에게서 나타났다. 오늘 이사야도 두려움 속에서 정화되지 않는가.

자, 이제 성령께서 주시는 '두려움'이 얼마나 좋은 선물인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왜 당신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두려워 정정당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비겁하고 위선적인 삶을 살 것인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경(敬)의 마음으로 삼가 조심하며 한 평생 떳떳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오늘의 말씀은 당신의 모상으로 정성들여 빚어준 그 본연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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