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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광의 상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13 조회수1,259 추천수7 반대(0) 신고

 

어제 저녁에 딸과 둘이서 오랫만에 복음 나누기를 하고 나서 이어진 대화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소외감에 대해 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루가 15,11-32)에서 큰 아들이 갖는 소외감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였습니다. 

 

딸의 이야기는 "모든 것은 정지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작은 아들도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품에 안기면 다시 큰 아들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작은 아들, 큰 아들의 입장에만 서지 말고 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관계 안에서 상처 받고 서운해 하는 바로 그 요인이 내안에도 있는 것을 돌아보면서 받아들이고 인내 해야 한다."

 

또한 제 소외감의 근원에 대해 "아빠가 계시지 않기 때문이라며,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라고 나름대로 진단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솟아나는 눈물을 억지로 감추었습니다.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복음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지만, 제 믿음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제 곁에는 사랑스럽고 좋은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주님의 자녀라는 선물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비우지 못한 마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 20대인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대로 복음말씀에 대한 통찰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실제로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성으로만 조금 발달되어 있지 통합적으로 볼 때, 미숙한 면이 많다." 라고 성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복음 묵상을 하면서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요?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보시오!" (루가 23, 39)라는 귀절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묵상 안내서의 내용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양쪽 옆에서 십자가 형에 처해진 두 사람의 도적 중 한 사람은 경멸조로 잠시 처형을 연기받으려는 선택을 하고 다른 한사람은 용감하게 변화하겠다는 선택을 한다.  

 

우리는 이 두 도둑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본다.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긍정적인 도둑 편에 든다고 쉽게 단언한다. 그를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하기는 쉽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항상 열려 있으며, 성실하며, 신뢰하며, 착한 일을 하려고 열망하고 있다.

 

음흉한 도적을 받아들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사실상 그는 흔히 숨겨져 있으며, 아주 변장을 잘하고 있어서 우리가 그 본래의 모습을 알아보기란 가능하지 않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이 도적들, 즉 서로 반대되는 이 두 존재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새롭고 더욱 완전한 의식을 갖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의 내면에 서로 모순되게 존재하는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활기 있게 살아간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유를 체험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도둑의 말이 제게 다가온 것은, 제 안에 있는 어두움이 의식되었기 때문인것 같았습니다. 자신이나 이웃의 어두움에 대해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각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가지고 가야함을 깨달았습니다.

 

얼마전에 부주의로 녹차팩을 건지다가 살갗을 데었습니다. 물집이 잡히고 쓰라렸습니다. 아직도 화기가 다 빠지지 않아 살갗이 벌겋고 손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아물것입니다. 이 데었던 상처와 같이 제 마음의 상처도 주님 안에서 서서히 치유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상처를 통해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영광의 상처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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