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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전인수의 마음을 바꾸기"(7/18)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17 조회수1,021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 16 주일 (다해)

             창세기 18,1-10ㄱ     골로사이 1,24-28      루가 10,38-42

     2004. 7. 18. 퇴계원

주제 : 아전인수의 마음을 바꾸기

찬미 예수님!

기상청 일기예보에서는 오늘로 장마는 끝나고 내일부터는 더워진다고 했습니다.  경제는 어렵고 삶은 힘들다고 말은 하더라도 산으로, 들로 자연을 찾아 나설 시기는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몸과 마음이 산과 바다를 향하여 있기 쉬운 이 무더운 여름을 지내더라도 우리가 하느님을 잊고 살지 않도록 함께 힘써야 할 일입니다.


제가 말씀은 이렇게 드립니다만, 산으로 가든지 들로 가든지 놀러갈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일과 건강이 우선이라고 아주 적당한 핑계를 댈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 창세기 독서와 루가복음서의 내용을 듣는다면, 아전인수(我田引水)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판단은 우리들 각자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대한 판단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 판단으로 인해서 생길 결과에 대한 것도 우리는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뜻은 ‘자기 논에 물 대기라는 뜻이며, 그 의미는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사전은 설명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필요성은 크게 강조하고 싶고, 다른 사람이 겪는 같거나 비슷한 상황은 나와 비교해서 훨씬 가치가 못하다고 판단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는 격언입니다.  이 말대로 세상일을 아전인수 방법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에 매번 구체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혹시라도 삶에서 성실하게 산다고 할 사람들은 그런 하느님에 대해서 실망할 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소홀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됐든 세상에 사는 사람이 드러내기 쉬운 ‘아전인수의 태도’는 아주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오늘 창세기 독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이 말은 ‘귀로 듣지 어떻게 듣기는 뭘 어떻게 들었느냐고 묻는 것이래?’라는 말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자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옳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당신 맘에 드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복을 베풀기 싫어서 모든 것을 꼭 움켜쥐고 있는 분’으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보든 다르게 보든 달리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격언을 기억한다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얻기 위하여 이웃들을 불러서라도 억지로 특별대우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은 없어야 할 일입니다.  삶의 축복이란 내 삶을 보시고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이지, 내가 일부러 얻자고 덤벼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복음서에 나오는 마르타가 예수님의 꾸중을 들은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란 내가 성실한 삶을 보내고 난 다음에 오는 결과이지, 다른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행동을 앞세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가 삶에서 드러내기 쉬운 본말을 바꾸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 삶에서 마르타처럼 발을 동동 구르면서 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마르타처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분명 세상에는 필요한 사람입니다.  마리아처럼 현실을 무시하고 ‘나 몰라라’하는 사람들이 환대받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복음을 후다닥 듣고, 짧게 생각하여 ‘예수님은 왜 마리아를 옹호하고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을까, 그리고 마르타에게 질투하지 말라고 하셨을까?’라고 알아들어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조화를 이루는 생활이지, 자기 삶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판하거나 헐뜯는 것은 아니라고 알아들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삶으로 드러낼 것은 내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도 올바른 순서에 따라서 할 일입니다.  우리 삶을 축복하시는 하느님은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삶을 우리에게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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