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저승에 가시어?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19 조회수1,012 추천수4 반대(0) 신고

독서: 미가 6,1-4.6-8ㄴ
복음: 마태 12,38-42

 

요나와 솔로몬,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가장 흥미있어하는 구약성서의 인물들일 것이다. 요나의 이야기 전체는 한편의 재미있는 만화같고, 아기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실랑이하는 두 여자 이야기는 솔로몬의 지혜를 대변하는 흥미있는 꽁트이다.

 

성서 안에는 이처럼 흥미있는 이야기형식의 글들이 많이 있다. 이는 근동 사람들의 언어관습에서 기인한다. 그 사람들은 어떤 것을 알려주고자 할 때 직접적인 명령이나 권고, 설명을 하지 않고 "이야기"를 통하여 암시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곧 그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의미 즉 "이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지?"를 더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솔로몬의 에피소드나 요나의 이야기에서도 그 안에 들어있는 교훈을 들으라는 것이고 청중도 자신이 어린이가 아닌 이상, 그 안에 들어있는 메시지를 파악해야하는 것이다.  

 

전에 어떤 신부님과 오늘 복음의 대목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할 수 없이 니느웨를 가게 되었지만 거기에서 요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선포하는 척만 하였을거라고 말씀드렸다.

 

요나서의 후반부, 온 도시가 회개하고 하느님의 징벌을 피한 것에 너무나 화가 난 요나. 그런 요나가 <신나게>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였을리 없지 않은가. 요나는 처음부터 니느웨와는 전혀 반대쪽, 가장 먼 다르싯으로 떠날려고 했다. 원수 나라인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그곳은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쳐서 없어져버렸으면 좋을 곳이 아닌가. '그런 곳을 구하라니...' 요나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하느님의 말씀을 온몸으로 거부하였다.

 

결국 자기 의지와는 반대로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기는 했으나, 그 성공에 기뻐하기보다는 분노와 슬픔에 지친 요나. 세상 만사가 싫고 하느님도 싫고, 그 일을 수행한 자기 자신도 싫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사흘간이나 들어갔다 나왔어도 사실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요나서의 후반부에서 그런 요나를 따듯이 어루만지며 깨우침을 주신다. 마치 돌아온 동생을 보고 화가 나서 잔치에 들어가지 않는 큰 아들을 어루만지는 자상한 아버지 같이...

 

신부님은 이 이야길 들으시고 요나서 전체의 한줄 한줄을 모두 풀어, 8장에 걸친 아름답고 감동적인 묵상글을 보내주셨다. 신부님의 철학과 인간 이해, 신구약의 성서 이해가 모두 펼쳐져있는 엄청난 묵상이었다. 이렇게 성서의 이야기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그릇에 맞춰 가득한 양식이 되고도 열두 광주리의 잉여분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든 그분의 묵상글에도 있듯이, 니느웨의 회개는 요나보다는 어쩌면 니느웨의 임금이 더 공헌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흘간이나 들어갔다는 그 물고기의 뱃속은 우리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깊숙한 우리의 심연, 죽음과도 같은 고독일는지도 모른다.

 

주님이 죽으시고 사흘동안 내려가셔야 했던 그 저승도 바로 '실체도 없는' 물고기 뱃속과 같은 어둠이 아니었을까? 그곳까지 내려가 빛을 전달하셔야 했던 분. 자신의 거부, 또는 세상의 거부로 인해 하느님마저 손댈 수 없었던 절대 고독의 영역. 천국은 분명 아닐 단절된 세상, 그곳에서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의 그들에게까지 구원을 전달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배 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분이 저승에 가서 사흘이나 계셔야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요나는 자기 의지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요나는 자발적으로 자기 사명을 수행한 것이 아니다. 요나는 원수들이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달랐다.

그분은 당신 사명에 충실하셨다. 그분은 자기를 못박는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그분은 자발적으로 저승에 내려가셨다. 그리고 그곳에 빛을 전달하셨다. 그랬기에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위대하게 여기던 요나라 할지라도, 솔로몬이라 할지라도 그분과 비교될 수는 없다는 말이 바로 그래서다. "심판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의 사람들과 함께", 아니 <저승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들고 일어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이 바로 그래서다.

 

 

그러므로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마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