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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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 존재의 이유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0 조회수1,010 추천수3 반대(0) 신고

이순의님, 정말 끔찍했겠네요. 보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징그러운

지네와 함게 동거동락하셨다니 사람이 환경에 얼마만큼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합니다. 아마 나같았으면 전후 돌아다 볼

여지없이 그냥 보따리 싸들고 그 섬을 나와 버렸을겁니다.

저도 열아홉살 때까지 시골 초가집에서 살았는데 추녀끝에서 노래기

지네가 떨어져 기어다니는 걸 심심찮게 보며 살았답니다. 얼마나 무

서운지 등골이 서늘해지곤 했지요.

 

그런데 그 지네 말린 것이 관절염이나 뼈 아픈데 특효약이 된다는

민간요법을 들어보셨는지요? 그렇답니다. 특히 제주도 지네 말린것

이 효과가 좋다고 그걸 구하는 사람을 보았답니다.

제가 십오년전 두드러기가 심해 병원치료를 받았는데 아무리 병원

을 다녀도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약과 주사를 끊으면

두드러기는 더욱 심해졌죠. 병원에서 의사가 못고치는 병에 대해

환자가 느끼는 좌절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셨는지요? 정말 절망감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우연히 찾은 한의원에서 침과 한약으로 기적

처럼 두드러기를 고쳤는데 그 한약속에 말린 매미가 통채로 들어 있

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어린시절 제 별명이 굼벵이였답니다. 행동이 느려터지다고 아버지

가 붙여준 별명이었지요. 전 그 별명이 정말 싫었습니다. 감자밭에

도 배추밭에서도 굼벵이를 보면 너무 싫었습니다. 그런데 훨씬 후에

그것이 매미의 유충이란걸 알고 혐오감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여름날의 찌는 더위를 청아한 울음소리로 씻어주는 청량제같은 매미,

고음으로 한껏 울어젖히다 멋지게 하강곡선을 그으며 딱 소리를 멈출

때의 바이브레이션을 들을 때면 망사같은 매미의 날개가 파르르 떨리

는 것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매미는 그렇게 살았을때 시원한 울음

울음소리로 사람들을 위로해주더니 죽어서도 사람의 병을 고쳐주더

군요. 암에 걸린 어떤 아주머니는 굼벵이가 암에 약이 된다고 시골로

굼벵이를 구하러 다니는걸 본적도 있습니다. 의학적 근거의 여부를

떠나서 그렇게 굼벵이는 유충으로, 매미는 성충으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서 이 세상에 있는걸 보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문필가가 쓴 글에서 읽은건데 그 사람의 할머니는 뜨거운 물을

수챗가에 버릴때는 늘 쉬이 쉬이 하고 소리를 내며 버린답니다.

그 근처에 혹시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미물들이 놀라 도망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랍니다. 미물들도 살아있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거죠.

그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훈훈하던지요.

어릴때 시골에서 세수하러 냇가에 가면 가끔 풀섶에서 바짝 고개를

세우고 있는 사마귀를 보면 오싹하던 기억이 납니다. 세모난 대가리

에 길다란 다리로 우뚝 서 있는 그 곤충이 이상하게 교활한 치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자연은 아름답지만 또한 싫은 것들 무서운 것

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노래기 지네, 소나무

의 송충이, 배추벌레, 벗나무의 맹청이, 뱀등등 징그럽고 무서운 것

들이 너무 많아 겁이 많은 나는 늘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보기싫은 것들에 대한 혐오

감이 엷어지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것들은 하다못해 천적을 위해서

라도 존재할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쥐는 고양이를 위해서, 개구리

는 뱀을 위해서, 뱀은 몸보신을 끔찍히도 생각하는 혐오식품 애호가

를 위해서, 노래기 지네는 그 독성이 오히려 약효가 되는 치료제로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깨어지면 환경의 파괴가 온다고 하지요?

자연속에는 아마 일정한 생존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인위적으로

깨뜨리면 질서의 혼란이 오게 되겠지요. 그래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

은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거기에,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 보기 끔찍했던 지네도 다른

것들에 대한 거부감도 동거동락까진 못하더라도 조금쯤은 혐오감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네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묵상의 시간 가져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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