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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7/21)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0 조회수98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 16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예레미야 1.1.4-10            마태 13,1-9

      2004. 7. 21. 퇴계원

주제 : 하느님 앞에 나는 누구인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쉽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먹고사는 일도 힘들어진 것이 요즘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텔레비전의 뉴스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은 닮고 싶고 부러운 일들을 전하는 것보다는 무섭고 떨리는 일들만이 훨씬 더 많이 우리 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라크에서 우리나라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일, 지난해부터 시작된 살인사건에 범인을 잡았다는 일, 이라크를 침략한 전쟁에 대한 미국 대통령 부시의 정보조작과 음모 그리고 우리나라의 파병에 이르기까지 속 시원하고 기분 좋은 내용들은 그다지 들려오지 않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얻기 힘들어서 세상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전제조건을 생각한다면 내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서 대답을 쉽사리 얻을 수 없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바꿔 이야기하면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서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응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에 앞서서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을 이야기합니다.  능력이 부족함을 이야기합니다.  본당이라는 공동체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쉬운 일입니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 각자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는 하느님의 말씀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허락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능력을 내가 얼마나 되는 것으로 생각하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삶의 자세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나 돌밭인지, 가시덤불이 자라는 곳인지는 우리들 각자가 가장 잘 아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느님 앞에 나는 30배의 열매를 맺을 자세로 사는지, 60배의 열매를 맺을 자세로 사는지, 혹은 100배의 열매를 맺을 자세로 사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물론 이 현상은 하느님만이 아시는 것은 아니고 우리들 각자도 자기 삶만큼은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은 현재 내 삶을 올바로 살펴보고 합당하게 응답하며 사는 일입니다.  남들의 눈이 무서워서 눈치껏 사는 것도 삶의 방법일 수는 있습니다만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은 우리들 각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다가왔던 하느님의 축복을 우리가 실제로 얻는 방법은 현실의 내 삶을 사랑하며 사는 일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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