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목자(정반대의 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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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임성호 | 작성일2004-07-23 | 조회수1,20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독서> 나는 너희 가운데서 성마다 한 사람씩, 갈래마다 두 사람씩 뽑아 시온으로 데려오고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세워 주겠다. 그러면 그 목자들은 알아서 너희를 잘 기를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이 땅에서 불어나 번성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복음>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
1. 누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인가? 하느님 나라에 가는 사람은 겸손과 순수라는 두 날개로 움직인다.(비오 성인 신부님 말씀)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는 겸손과 순수라는 두 개의 덕목으로 움직인다. 자본주의 사회는 끝임없이 남보다 앞서고, 남보다 더 높은 사회적인 지위를 향해서 끊임없이 경쟁하게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이 가르키시는 가치와 덕목과는 다르게, 아니 정반대의 가치와 덕목을 내면화 시킨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빠르게 살라고 가르키고, 전 세계적인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도 이러한 가치를 절대시하면서, 그에 맞추어 사는 것이 행복한 것으로 인간들을 사회화 시킨다.
그래서 남을 이기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절대 선인 것처럼 인간들을 몰아가고 있다. 그리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세상에서 잊혀진다. 이길 때 그렇게 쫓아다니는 기자나 TV카메라도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들이 지도자로 뽑는 세속의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오직 승자만이 조명을 받고, 패자는 더 이상 무대에 등장하지 못하거나, 뇌리에서 잊혀진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인 것처럼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이 모든 것을 받아 들이고 있다.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들도 만일 자기와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과 대화를 하면 알게 모르게 적대시 하거나 기분나빠하거나 한다.
사회의 지도자들도 마찬 가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가지면 금방 적대시 하거나 공격적이 된다.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 볼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그리고 얼마든지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의견을 조율해 갈수 있음에도 마치 전시처럼 치고 받고 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생활하는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도 점점 닮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래선 안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세워주는목자들도 그래선 안된다.
하느님께서 세워 주는 목자들은 참으로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스스로 즐겨 비천한 길을 가신 예수님이나, 프란치스코 성인 처럼 한없이 한 없이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가야하고, 이웃에 그 표양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없이 한 없이 지는 모습을 보이며, 이겨야 대접받는 사회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지고 또 져야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선의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를 쓰러 뜨리는 것이 문제인 것이고, 무조건 이겨야 대접받는 자본주의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지구촌의 역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섭리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이 땅의 천국이 경쟁과 적의로 가득찬, 그래서 가진자는 더 가지고 못가진 자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상한 방향으로 이 지구촌의 역사가 흘러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것이 현실인데, 뭐" 하면서 당연하거나 포기하면서 이 흐름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느님이 사랑하는 목자들이 이 땅에 나타나야 한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목자들이 나타나야 한다. 한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양들을 정화시키는 목자들이 나타나야 한다.
한없이 겸손하고, 한 없이 순수한 성인 목자들이 이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서로 높아지려고만 하는 이 자본주의 경쟁 사회 속 곳곳에서 이제 하느님께서 마음들어 하는 목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서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적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
경종을 울려야 한다.
우리 공동체가 나가야 할 방향이 적과 적의 투쟁이 벌어지는 공동체가 아닌 관용과 상호 인정과 이해의 공동체로 나아가야 함을 외쳐야 한다.
한없이 낮아지는 표양을 보이면서, 한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의 마음들을 정화시켜 가면서..... 그길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인도하는 목자의 나아갈 길이기에 그렇다. 이같이 하느님이 뽑은 목자들은 정 반대의 길을 가야한다.
그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한 없이 한 없이 낮아지는 길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높은 것보다 낮은 것을, 더 많이 가지려는 길보다 보다 덜 가지려는 길을, 승자의 길보다 패자의 길을, 고상한 것보다 비천한 길을 스스로 선택해 가야 한다.
이곳에 하느님의 섭리가 있다. 그런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영원히 역사 속에서 살아 남는다. 예수님이 그렇고, 성모님이 그렇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고,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렇고, 우리 신앙의 선조분들이 그렇고, 역사 속의 수많은 성인 성녀가 이 길을 간 것이다.
이런 분들은 모두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과 정반대의 길을 갔지만 영원히 살아 남는 길을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가신 분들이고, 지금 하늘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고 계신 것이다.
우리도 가치관이 정반대인 길을 가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이 길을 선택해 감으로써,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없이 한 없이 우리 자신을 낮춤으로써, 한 없이 한 없이 우리의 영혼을 순수하게 함으로써, 그래서 기쁘게 이웃의 밥이 됨으로써 하늘나라로 가는 열매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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