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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리막길?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4 조회수932 추천수3 반대(0) 신고

(7/23 어제 말씀인데 올리지 못해서..오늘 올립니다)

 

독서: 예레 3,14-17
복음: 마태 13,18-23

 

오늘 복음에서 유난히 내 눈길을 오래 잡아두는 곳이 있으니 "백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구절이다. 왜 공관복음의 다른 두 복음과 달리 이 복음에서만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의 결실을 내리막길로 표현하고 있을까? 문맥상 다른 밭에 떨어진 씨앗과의 비교할 수 없는 대조를 부각시키려면 다른 복음에서 처럼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순서로 올라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더구나 마태오 복음사가가 마르꼬 복음을 참고했을 것이란 이출전설(二出典說)을 가정한다면, 이 구절을 왜 이렇게 바꾸었는지 더 궁금해진다.

 

예수님은 공생활 기간 중, 어느 시점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원 주제는 겉으로 보기엔 하느님 나라의 선포가 실패로 보이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걷어들일 엄청난 결실을 기대하고 예수님은 말씀의 씨앗을 뿌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중간 시기를 넘어 말기에 이르러서일 것이다.

 

처음엔 파격적인 말씀과 행적, 놀라운 기적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위에 몰려들어왔지만, 점점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고 마음에 혼란을 일으키는 말씀들 때문에 하나 둘 떨어져나갔다. 급기야 도처에 적대자들까지 생기면서는 제자들마저(12제자 이외에도 많았다) 하나 둘 떠나갔다고 요한복음(6,66)은 말하고 있다. 드디어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에게도 "자,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 가겠느냐?"(요한 6,67)하고 물으실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 비유는 이런 상황, 즉 겉으로 보기엔 대 실패인 상황에서 꺼내신 말씀일 것이다. 즉 당신은 이 실패를 실패로 보지않고 당신의 하던 일을 계속하실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를 꼼꼼히 따져보면, 예수님은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의 결실만 염두에 두는 것도 아니다. 사실 팔레스티나의 농경법은 우리와 달라 먼저 흩뿌리기 하고 나서 밭을 갈아엎는 것이 순서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듣는 사람들도, 돌밭, 가시덤불, 길바닥(건조기때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에 떨어졌던 씨앗들의 가능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지금 당장 당신을 배척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끝까지 포기의 대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 독서에서 야훼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배반하고 떠나갔던 자들아, 돌아오너라. 똑똑히 들어라. 내가 너희의 가장이다. .... 그날이 오면 너희는 이 땅에서 불어나 번성하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그렇다. 인간의 눈엔 도저히 안될 것같은 길바닥, 돌덩이, 가시같은 사람들도 주님의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은 한 술 더 떠서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의 결실에도 실은 집착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소수의 좋은 제자들이 내는 결실도 어쩌면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상승선이 아니라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하강선이 될지도 모른다. 맞는 말 아닌가?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 갈수록 좋은 일만 생기고 기쁜 마음만 들고 엄청난 결과만 내는 것이 아니다. 내리막 길도 있고 슬럼프에도 빠지고 도로묵 같은 기분이 시시때때로 들지않는가? 그러니 오늘 좋은 밭이라고 자만할 것도 없고 말고 오늘 돌덩이처럼 마음이 굳어졌다고 절망할 것도 없다. 오늘 마음이 기쁘고 평화롭다고 다 이룬 것처럼 들뜰 것도 없고 오늘 분노와 욕정으로 얼룩졌다고 자포자기할 것도 없다.

 

신앙이란 그런 외형적인 것에 연연치않고 주님의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끈임없는 <훈련>일 것이다. 삶이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진행되듯, 우리 마음 밭도 우리의 행적도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변화될 것이다.

 

끝까지 가자. 온갖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끝까지 가자. 온갖 성공 속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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