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가라지란 놈!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4 조회수1,041 추천수4 반대(0) 신고

독서: 예레 7,1-11

복음: 마태 13,24-30


'이런 묵상은 아무도 못할 거야!' 생각지도 못한 신선한 묵상이 떠오르면 즉시 따라 올라오는 생각이다. '역시 내 강의가 좋긴 하지!' 강의실이 넘치도록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또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솟아오르는 마음이다. '그러면 그렇지!'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을 꿀맛처럼 달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또 한 학기를 이끌어주심에 다소곳이 감사드리다가도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 곧바로 근질근질 목구멍으로 기어올라오는 소리다. (이것도 또 자랑이다)


아, 요것이 나의 한계다. 내 마음 밭에는 언제나 이렇게 밀과 가라지가 한시도 떨어져있을 날 없이 붙어산다. 한가지 그럴 듯한 일을 했다고 칭찬 받을 만하면 곧바로 그것을 다 까먹고도 남을 만치 곤두박질하는 것이 바로 나다. 그래. 마음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찌 다 나의 것이고 내가 한 것인가.


매 주일 과분할 정도로 칭찬해주시고 홍보해주신 신부님의 은덕이다. 뒤에서 묵묵히 추진해주고 뒷받침해준 협조자들의 공덕이다. 부족한 사람을 언제나 믿고 사랑해주는 많은 사람의 기도 덕분이다. 새롭고 신선한 묵상이라고 자랑칠 것도 사실 하나 없다. 성서 봉사한다고 십여년 동안 본 수많은 책들에서 언젠가 보았고 어디서 주워 들었던 것들이 무의식의 어느 구석에 묻혀있었다가 이제야 싹을 틔었을 뿐이다.


사람이 많이 오는 것도 다 희한한 내 이력 때문이다. 암이 걸렸다 살아난 사람이라는 것도 그렇고 오십 넘은 나이에 신학교를 들어간 것도 그렇고, 또 거기서 장학생이라는 사실도 다 흥밋거리다.(그것도 별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태반이고 공부할 시간도 나는 넉넉하다) 그러니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길 하는지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사실은 많을 것이다. 그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가. 잠시의 <구경거리>는 되어도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가.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남들은 몰라도 너는 너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한다. 눈에 보이는 실적, 네 앞에서 하는 잠시의 칭찬들, "그런 빈말을 믿어 안심하지 말고 너희의 생활 태도를 깨끗이 고쳐라."는 말씀. "살려 주셔서 고맙다고 하고는 또 갖가지 역겨운 짓을 그대로 하고" 있다가는 영원히 당신 성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오늘 독서의 말씀을 너는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 내 마음의 가라지! 그것을 몽땅 뽑아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뽑아도 뽑아도 다시 올라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내 마음에서 무시로 솟아오르는 가라지의 정체를 늘 깨어 주시하는 것뿐이다. 그 가라지가 나를 주님의 성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놈이라는 사실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 매력적인 놈이 바로 나를 불길 속으로 이끌고 가려는 꼴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 끈질긴 가라지의 세찬 생명력 때문에 나는 주님이 언제까지나 필요하다. 그 놈 때문에 나는 언제까지나 주님께 엎드려 그분의 정화의 능력을 청해야 할 존재이다. 그렇다. 인식하기에 따라서 그 가라지란 놈은 나를 겸손으로, 그분 앞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가라지가 난무하는 내 마음의 밭, 나는 언제나 그 모양 그 꼴이지만 그분은 지금 당장 나를 요절내지는 않으신다잖나.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그런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가라지 무성한 거친 밭을 아름답고 유익한 밑밭으로 만드는 길.

가라지를 발견할 때마다 그것마저도 그분의 성문으로 인도하는 길잡이로 삼고

내가 완전한 밀밭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하며

그런 나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저 감사해서 그저 고마워서 밀씨를 자꾸 자꾸 뿌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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