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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48) 취중 진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6 조회수99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4년7월26일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ㅡ예레미야13,1-11;마태오13,31-35ㅡ

 

         취중 진담

 

 

별명이 대쪽일 만큼 곧은 성정 때문에 순둥이였던 나를 순둥이로 알으셨던 부모님들 조차도 힘들어 하실때가 있었다.

곧다는 것은 그 만큼 심지가 단단하다는 것이고, 좀처럼 잘 변하지 않는 외골수라는 것이고, 책임감이 강하다거나 참을성이 대단하다는 것인데,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때로는 눈꼴 사나운 작태를 허용하지 못하고 진노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어려서 일하는 사람이 많은 집에서 고명 같은 막내딸로 자랐으니 호강도 받고 자랐지만 못 볼 것도 많이 보고 자란 것 같다.

일하는 사람중에 주먹을 잘 쓰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아저씨가 술에 만취가 되어 작업장도 아닌 우리집 안방에 누워서 입에 버큼물고 자는 꼴을 본 적이 있다.

그 아저씨는 3년동안이나 어르신께서 너무너무 귀여워하시는 막내딸의 미움을 받았으니 얼마나 힘들어하셨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덕택에 그 아저씨의 술버릇이 확실하게 고처져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로 친정집을 벗어나 독립을 하였을 때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 속만 본다.

 

남편의 직업이 장돌뱅이인데다 시댁의 구성이 배움이 없다보니 동생들이 형을 도와서 살아간다.

그러니 경제업무의 최종 결제자인 내 입장에서는 골치아픈게 너무 많다.

빗을 내서라도 동생들은 살게 해 줘야하는 책임이 있고, 내 속은 죽어도 겉으로는 큰소리 뻥치고 살아야하는 맏이이며, 사고를 쳐도 손해를 봐야하는게 큰형수의 자리다.

 

일찍이 번화한 집에서 사람 많은 경험속에 성장하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처세술을 눈여겨 학습해 두지 않았다면 못 살았을 팔자다. 그 만큼 내 치마폭이 넓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상표다.

대대로 못 산다는 것, 배움이 없다는 것, 경험이 적다는 것은 생각이 우물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속이 썩어문드러 질 대로 문드러 지고, 손바닥을 쳐서 남은 먼지까지 다 털어서 입으로 불어 버린 후에도 시동생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날개 자르듯이 하나씩 잘라버렸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나 하고 연결이 안된다는 것은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참으로 신간편한 일이었다. 보기싫은 꼴 안봐서 좋고, 말 안듣는데 말 들으라고 언성 높이지 않아서 좋고, 내 피 말르면서 동생들 살게해야 한다는 책임감 없어서 좋고....

그러나 남의 집에 가서 일당일을 하는 동생들이 먼저 내게 무릎을 꿇었다.

"형수님이 하란대로 할랍니다."

이 사회가 배운거 없고 가진거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알고 취한 자세다.

 

"그동안 서류를 정리하라고 해도 7년동안 살림 맡겨준 뒤로 단 한 번도 서류정리 없이 삼춘마음대로 결제나는 짓을 할거라면 나는 더 이상 삼춘에게 내 살림을 맡기지 않을테요. 형수는 등신이 아니거든요! 형이 거렁뱅이가 되다시피 하는데 삼춘이 절대적인 동조자란 걸 알고 있거든요. 형수란 여자는 간이 큰여자거든요. 내가 한 가지만 포기하면 속 안썩고 일할 자신이 있거든요. 삼춘도 삼춘인생 큰소리치고 살아보세요. 삼춘 주무기가 술 먹고 주정해 버리면 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삭히는 거 이용하는 거잖아요?! 그 무기 또 써 먹게요? 이 세상에서 형님같이 불쌍한 사람한테 술먹고 객정 부리면 그 꼴 못 보는 형이 지잖아요?! 나는 더 이상 술을 먹는 사람하고는 상종을 그만 할라요."

 

그래도 남편하고 사는 죄로 박절하게 못하고 형수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비는 시동생을 외면하지 못 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새벽이면 시장에 간다. 결제하러!

처음 시집이라고 와서 짝궁을 가르치듯이 다시 시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잘 틀린다.

그래서 대쪽같은 성미가 용서를 못하고 말았다.

곧다 못해 서슬이 퍼런 양날칼 같은 예리한 정신력으로 어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배추장사 문서때기 처리하듯이 하는 꼴을 용서를 못 한다.

그 동안 그런식으로 하며 쓸거 다 쓰고 남은 돈 던져주는 식에서 10원 한 장도 적어서 밝혀야 되는 정산 업무가 시동생의 마음에 안드는 것은 당연하다.

 

시댁이라는 특수성이 내가 망해가면서도 이겨낼 수 없었던 부분이다.

장남이라는 남편의 무거운 짐 때문에 침묵 해버리는 순간이 이렇게 긴 세월을 곪을 대로 곪아서 굳어져버린 상처를 이제야 수술을 하고 있으니 그 갈등과 번민의 몫은 또 짝을 이룬 내 몫이다.

 

나에게는 감당하기에도 무거운 빚이 있다.

갚아야 하고, 아들 공부도 시켜줘야 하고, 집도 조금만 더 넓은데로 이사도 가야한다. 또 어머니 생활비도 다달이 드려야 하고, 삼춘 몫을 따로 저축해서 내가 망하더라도 인건비를 감해먹는 악덕 형수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친정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일한 품삯을 떼 먹는 놈을 고르라고 가르치셨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수 없이 반복 된 좌절에도 1원도 동생들 몫에 해를 끼친 적이 없다. 시댁의 도리를 외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생들은 형수는 돈이 남아 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가 아무렇게나 계산하고 아무렇게나 입금시키는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을 익혀버린 것이다

 

몇 일을 두고 틀린 것을 밝혀내기 위해서 고문 아닌 고문을 실시했다.

어쩌면 오랜 불신임이 나에게 더 가혹한 냉정의 무게를 동원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어제 저녁에는 집으로 오시라고 해서 다시 처음부터 계산을 시작 했다.

새벽까지 계속 되었다. 돌아갔다.

미처 다 해결하지 못 한 시동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 작업을 계속 했다. 그리고 동이트는 시간에 전화를 했다.

"삼춘! 거기 시장이에요? 집이예요? 몇 월 몇 일 누구 입금표좀 확인해 주세요."

장부를 보고 전화를 한다고 끊었다.

 

전화가 왔다.

"형수님! 제가 지금 술을 한 잔 해서 잘 모르것으니까 다음에 허시면 안 되요?"

술을 한 번만 먹으면 당장 해고 라고 엄포를 해놔서 얼마동안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에다 대고 주정이다.

 

조카가 보는데서 형수님한테 찍혀갔고 꼼짝 못해 보이는 자신이 챙피해서 술을 마셔버렸다는 것이다.

옛날에 세상물정 모를 때 형수님 말 안들은거 다 인정하는데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어버린 조카가 있는데 그 녀석 앞에서 온갖 죄를 다 들추는 것 같아서 정말로 챙피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이도 먹었고, 조카가 곧 대학생이고, 자신의 아이들이 커 가는데, 옛날처럼 가벼운 행동을 해서는 아이들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어서빨리 형이 복귀를 해서 가게를 운영해야 산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형수님! 우리형수 너무 완고해서 보기 싫은 때 많았는데요. 형수님 만나서 우리형님이 그 나마 기펴고 사는거 이제는 알아요.

잘 할께요. 절대로 사고 안치고 이제는 진짜 잘 할건데 형수님이 내 맘을 몰라주네요. 믿어주세요. 또 속는다고 생각하고 제발 좀 믿어주세요. 형수님이 하란 대로 할 거고, 형수님이 시킨 대로 할거고, 그러니까 조카보는데서 틀리다고 하지 말고 이제는 제발 믿어주세요. 이제는 조카가 커서 그 놈이 무섭다는 생각이 드요. 그러니까 형수님이 한 번만 믿어주세요. 

술 먹으면 해고라고 해서 형수 본데서 술 못 먹고 형수집에서 나와서 마셔부렀오. 술 먹었은께 술 핑계대고 형수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 보는거요. 형수가 이런 실수를 용납이나 허는 양반이요?! 다시 열심히 할랍니다. 형수님!"

 

오늘의 복음은 겨자씨가 자라나서 큰 숲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큰 숲을 망가뜨리고 이제야 나무 한 그루 심을 준비를 하는 심정이다.

복음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내 속이 썩고 문드러지고 녹아버려서 분노할 것도 없어져버린 무관심의 선택을 해 버리고, 무슨 누룩이 되고, 무슨 씨가 되었다고 할 것인가?

나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렸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관계를 유지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세상을 향해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므로 차지하려고 연연할 것이 없었다. 놓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짝궁이 가진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간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놓았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겸손 할 차례인가보다.

둑만 내시던 어머니도 늙어버렸다.

시동생도 형만큼 돈을 주는 일자리도 없었나보다.

 

나 한 사람이 겨자씨 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의 입장에서는 숲을 잃어버리고 이제야 땅에 터파기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나는 취중의 진담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한 번이 그 동안의 절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요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도 나는 시장에 가면 삼춘을 쥐어짜고야 말 것이다.

 

"술 먹고 객정 부릴꺼면 당장 그만 둬요. 미친 개새끼나 하는 버르장머리를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하니까 하기싫으면 관둬! 아직도 모르는게 있어요? 아직도 이런걸 가르쳐 줘야 되요? 언제까지 가르쳐야 되지요? 술 정신에 진담이라고 말 하는 놈이 미친 놈이지 그게 사람이여! 그 따위짓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하기 싫으면 관둬!"

 

다시 암울한 불신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고삐를 늦출 수가 없다.

짝궁도 살아야하고, 내 아들도 살아야하고!

시동생도 살아야하고, 그 식솔들도 살게 해 줘야 하고!

어머니도 편케 해 드려야 하고!

가난한 종가 맏이의 짐은 결코 작은 보퉁이가 아니다.

하늘이 내게 준 가장 가까운 이웃에 대한 선행이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 지소서!"

오늘은 마침 성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과 어머니 안나의 축일이기도 하다.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마태오13,3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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