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보물과 진주에 비유되는 하느님의 나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7 조회수1,044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7월 28일 (수) -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3,44-46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4)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면 돌아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


[복음산책]  보물과 진주에 비유되는 하느님의 나라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예수께서는 군중을 떠나 다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다. 밀과 가라지가 성장기간에는 서로 섞여 자라지만 추수 때가 되면 철저한 추수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가라지 비유의 설명 안에는 마음의 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성장하는 동안에 주어지는 가능한 모든 여건과 조건을 잘 활용하여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경고와 독려가 함께 포함되어 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이다. 아무리 좋은 밀알이 좋은 밭에 뿌려졌다 하더라도 그 씨앗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추수 때 따로 묶여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가라지의 신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따라서 신앙인이란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잘 깨닫고, 깨달은 바를 실제로 실천하며, 그 나라를 세상의 무엇보다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또 그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마태 25,34)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강제나 의무는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강요되는 나라가 아니라 죄와 악으로부터 해방된 백성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선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의 두 가지 비유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비유설교의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비유에 해당하는 ‘보물의 비유와 진주의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마태오복음 고유의 비유로서 아주 짤막한 문장으로 비유가 원하는 명쾌한 뜻을 전달하고 있다.


  ‘보물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이 묻혀 있는 그 밭을 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하루의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가난한 소작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주(地主)의 밭을 갈다 보물을 발견하고는 다시 묻어둔다. 보물이 묻혀있는 그 밭이 자기 소유가 아니므로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자기 소유로 만든다는 것이다. ‘진주의 비유’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좋은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떤 장사꾼’은 앞의 소작인과는 달리 장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자일 수도 있다. 그가 늘 좋은 진주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구도자에 비유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보물과 진주가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언어(比喩言語)라는 것이다. 즉, 하늘나라가 보물이나 진주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참고로 비유(比喩)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원관념)을 다른 대상(보조관념)에 빗대어 나타내는 것을 말하며, 그런 방식을 비유법이라 한다. 비유법(比喩法)에는 직유법(直喩法), 은유법(隱喩法), 환유법(換喩法), 제유법(提喩法), 대유법(代喩法) 등이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직유법은 “대나무처럼 키가 큰 사람”, 은유법은 “내 마음은 호수다.”, 환유법은 “나는 괴테를 모두 읽었다.”, 제유법은 “바다에 돛이 떠 있다.”, 그리고 대유법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백의의 천사” 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비유를 대하면서 조심해야 할 점은, 자칫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를 귀한 보물이나 값진 진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하느님을 그런 좋은 보물이나 진주, 즉 귀한 물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나라를 그런 보물과 진주에 빗대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과 바꿀 수 있다고 하셨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은유법(隱喩法)임을 알아야 한다. 하늘나라와 보물(진주)은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보물이 귀한 것이고 좋은 것이므로 하늘나라를 보물에 비길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결코 인간의 소유가능한 대상물이 아니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소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더욱 더 그렇다. 하느님은 사물(事物, res)이 아니라 위격(位格, persona)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위격이시라는 말은 마치 인간이 가진 인격(人格)과 흡사하다. 인격은 인간에게서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성격이나 경향, 또는 자아의식으로서 하느님의 위격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이 돈으로 몸을 살 수 있어도 마음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위격도 그런 것이다. 하느님의 위격은 오직 그분과의 친밀한 공동체를 이룸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공동체 안에서 그분의 하늘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느님의 나라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고 소중하게 깨닫고 사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을 얻은 자는 가난한 소작인처럼 보물을 발견하고 그렇게 기뻐하면서(44절)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