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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신기루?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28 조회수704 추천수4 반대(0) 신고

독서: 예레 15,10.16-21
복음: 마태 13,44-46

 

"해방이란 어떤 것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 다른 것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얼마전 라디오에서 들은 말이다. 한참을 그 말 속에 머물렀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다른 것을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를 버린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가치를 붙잡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라면 오늘은 거기서부터 복음과 독서를 생각해보자.

 

복음은 자기의 전부를 버리고 하나를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그 하나(보물, 진주)가 자기가 가진 전재산과 비교해도 월등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한 재테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가 가리키는 그 하나가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나라가 눈에 보이는 ''보물''과 ''진주''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가치가 내가 지금 소유한 모든 것과 맞바꿀 만큼의 매력적인 가치로 환히 드러나 있다면, 그런 투자를 마다할 멍청이가 어디 있으랴?

 

불행하게도 그 보물은 실체도 없는 밭에 묻혀있고,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보물인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진주는 화려한 진열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고 높은 담장 안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보물을 차지한 사람의 일생은 오늘 복음의 두 사람처럼 수지맞은 기분에 매일이 기쁘고 신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처럼 손해 막급인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누가 선뜻 그 보물과 자기의 전부를 바꾸려할 것인가?

 

예레미야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원망할 정도로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여있다.
"아아,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습니까? 온 나라 사람이 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 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빚진 일이 없고 빚을 준 일도 없는데, 사람마다 이 몸을 저주합니다."

 

한 때는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달콤했던 사랑도 이제는 그것이 진짜였는지 믿지 못할만큼 번민에 가득 차 있다.
"만군의 주 하느님, 이 몸을 주님의 것이라 불러 주셨기에 주님의 말씀이 그렇게도 기쁘고 마음에 흐뭇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 손에 잡힌 몸으로 이렇게 울화가 치밀어 올라 홀로 앉아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왜 끝이 없습니까? 마음의 상처는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의 탄식은 급기야 의혹으로 가득 차 하느님마저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다.

"주께서는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이(원문: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잘 속이는 시냇물같이) 되셨습니다."

 

그렇다. 하느님나라는 때로는 예레미야가 오늘 탄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눈을 홀리는 가짜 시냇물, 목마른 사람을 속이는 신기루와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지금 극도의 소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때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여 사고 싶을 만큼 멋져보였던 그 생명의 샘이 실은 한낮 환상, 신기루였단 말인가?

 

그러나 하느님의 회답은 냉혹하기만 하다.
"너의 마음을 돌려 잡아라. 나는 다시 너를 내 앞에 서게 하여 주겠다. 그런 시시한 말은 그만두고 말 같은 말을 하여라. 나는 너를 나의 대변자로 세운다."

 

예레미야의 탄원과 원망은 묵살되고 불경스런 의혹과 번민에도 불구하고, 그가 받은 소명은 여전하리라는 일방적인 말씀만 이어진다. 즉 하느님의 대변자(예언자의 원뜻)는 슬픔도 번민도 의혹도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을 여전히 전달하는 자라는 것이다.

 

"백성이 너에게로 돌아와야지 네가 백성에게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백성과 같은 아픔, 같은 번민, 같은 의혹을 느낀다해서 그들처럼 하느님을 버리고 다른 길을 가는 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백성들을 돌려놓는 자여야 한다. 

 

이제 주님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그런 놋쇠로 든든하게 만든 성벽처럼 세우리니, 이 백성이 아무리 달려들어도 너를 꺾지 못하리라.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너를 도와 구하여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나는 너를 악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주며 악한들의 손아귀에서 빼내 주리라."

 

자신을 핍박하고 중상모략하며 고통을 주는 그 사람들이 다시는 그따위 짓을 못하게 해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여태까지 받은 수모를 한꺼번에 상쇄하고도 남을 가시적인 상황 변화를 마련해주시겠다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약속은 다만 그들이 또 그런 짓을 해도 그것을 견뎌내게 할 강한 힘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아,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터무니없이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당장의 복수, 우리의 선택이 정말 옳았다는 획기적인 상황 역전인데 그분은 우리의 기대에 사뭇 못미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를 짓누르는 십자가를 당장 치워주시지 않고, 다만 그 십자가를 들고 갈 강한 힘을 주시겠다는 그분의 미온적인 뜻이 어찌 항상 달갑기만 하랴? 어찌 한점의 번민과 갈등과 의혹도 없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으랴?

 

예레미야의 고백이 오늘 나를 위로하는 까닭은 그것이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보이지도 않는 보물과 실체없는 진주를 갖기 위해 나의 전부를 투자하는 것, 그 어리석은 행위가 바로 신앙이라지 않는가. "물이 마르다가도 흐르고, 흐르다가도 마르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도랑"같은 그분을 한결같이 따르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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