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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생의 마감에는 빈손으로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7-31 조회수940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1일 (일) - 연중 제18주일 (다해)

▣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1696-1787) 주교 학자 기념 (없음)


  1696년 나폴리 왕국에서 태어난 알폰소는 자신의 총명한 두뇌와 지혜로 1713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나폴리대학에서 교회법과 민법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왕국의 법률가와 검사로 활동한다. 1726년 알폰소는 자신의 화려한 직업을 청산하고 사제의 길을 택한다. 그를 사로잡았던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루가 4,18) 구속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였다. 구속자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복음선포의 열정으로 알폰소는 1732년 “지존하신 구세주 수도회”(Congregatio Sanctissimi Redemptoris: C.Ss.R.), 즉 “구속주회”를 창설하고, 이 수도회를 영원하신 도움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한다. 알폰소와 모든 회원의 이름에 마리아가 붙은 것은 그 때문이다. 구속주회의 기본정신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알폰소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온 이탈리아를 두루 다니며 그들에게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다. 1762년 산타 아가다 교구의 주교에 임명된 알폰소는 교구민 전체의 종교적 쇄신을 위해 힘쓴다. 1775년 교구장 직분을 사임하고 파가니(Pagani) 수도회로 돌아가 삶을 정리한다. 알폰소 성인은 71세부터 목이 구부러지는 불치의 병인 류머티즘을 얻어 육체적인 고통과 구속주회의 내분(內紛)으로 정신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비교적 불행한 말년을 지내다 1787년 8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알폰소는 좋은 설교뿐 아니라 영신수련, 교의신학, 윤리신학, 사목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설교와 저서에는 한결같이 구속주에 대한 사랑이 쓰며들어 있다. 알폰소 성인은 구속주회, 고해사제, 윤리신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한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인을 윤리신학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것은 성인께서 생전에 얀세니즘(Jansenism, 네덜란드의 가톨릭 신학자 K. 얀세니우스가 주창한 학설로서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에 반대하여 엄격한 윤리에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인간본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비관적 입장을 보였다)의 엄격주의에 맞서 윤리신학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기 때문이다. 알폰소 성인은 율법에 얽매인 엄격주의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친절을 더 강조하였던 것이다. 성인께서 남긴 저서 중 ≪마리아의 영광≫과 ≪축복 받은 성찬에의 초대≫는 대단한 걸작에 속한다.


[오늘의 복음]  루가 12,13-21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13) 군중 속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자 14) 예수께서는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하고 대답하셨다. 15)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하시고는 16)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17) ‘이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하며 혼자 궁리하다가 18)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 창고를 헐고 더 큰 것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넣어두어야지. 19)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리라. 영혼아,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너는 이제 몇 년 동안 걱정할 것 없다. 그러니 실컷 쉬고 먹고 마시며 즐겨라.’ 하고 말했다. 2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 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셨다. 21)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복음산책]  생의 마감에는 빈손으로 그분 앞에 서야


  루가복음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기도에 관한 가르침 다음으로 중요한 관심사는 부자(富者)와 빈자(貧者), 소유(所有)와 포기(抛棄)에 관한 문제이다. 때마침 오늘 복음이 이 문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해준다. 가르침은 군중 속의 어떤 사람이 예수께 유산의 정당한 분배를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칙적으로는 율사들이 민사소송의 판결을 내리는 법이다. 허나 예수께서 이미 율사들의 가식(假飾)과 위선을 크게 나무라시면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리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11,45-52) 율사들이 예수께 유산의 정당한 분배를 요청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는 아닌 듯 하다.(13절)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당신을 재판관이나 재산분배자로 세웠냐는 반문으로 요청을 일축(一蹴)하셨다.(14절) 이는 예수께서 그 사람의 요청을 막연히 피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그 요청 안으로 파고들 심산(心算)이셨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 가르침의 핵심은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15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재산이 오히려 탐욕을 불러와 생명을 더 위태롭게 할뿐만 아니라, 탐욕이 극에 달하면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를 들어 잘 가르쳐 주신다. 예화에 등장하는 부자의 어리석음은 자기 밭에서 얻은 많은 소출을 전부 자기만의 것으로 생각한데 있다. 부자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의 소유자이다. 부자는 소유와 저장을 바탕으로 인생을 만끽할 계획을 세우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계획으로 끝나버린다. 이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바로 그날 밤 부자의 숨을 거두어 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인이라도 그렇지, 좀 심한 처사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달렸다. 주인이신 그분이 원하시면 그렇게 도로 가져가시는 것이다.


  없는 것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어도 더 가지려 애를 쓰는 욕심은 인간의 본능에 속한다. 가진 것을 지키려 하고 좀처럼 포기할 줄을 모르며,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할 때면 그만큼의 대체소유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삶을 영위하는 데 다소 편안함과 풍족함이 있겠으나 그만큼 걱정이 많게 되고, 가진 것이 없으면 아쉬움은 많겠으나 걱정은 그만큼 적을 것이다. 소유는 집착과 탐욕을, 포기는 자유와 청빈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부자는 쉽게 물질과 육체를 따라 살게 되고, 빈자는 쉽게 정신과 영혼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는 재물로 삶의 고통을 이기려 하고, 빈자는 영혼으로 그 고통을 극복해 나간다. 재물을 따라 사는 사람과 영혼을 따라 사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하느님에 가까운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을 더 사랑하시는 것이다. 다행한 것은 세상에는 부자보다 빈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유교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는 오복(五福)이라는 말이 있다. 장수(長壽), 재부(財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 그것이다. 우리들 중에는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세상을 떠나는 고종명의 복을 빼고 다른 복을 상당히 누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 오늘 예화의 부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부자들이 빈자들보다 앞서 누리는 더 좋고 편한 것을 모두 자기 덕이나 자기 것으로만 생각하는 심보가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래서 빈자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감을 더 체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현실은 자신이 보장할 수 있으나 미래는 자신의 힘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아무도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대로 반드시 이룰 수 없으며 미래는 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빈손이 되어 그분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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