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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상?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2 조회수938 추천수1 반대(0) 신고

연중 제 18주간 월요일

독서: 예레 28, 1-17
복음: 마태 14, 13-21

 

철옹성이라 믿었던 예루살렘이 바빌론의 발아래(바빌론의 제1차 침공;BC 597) 유린당하고, 거룩한 성전까지 약탈당하는 수모를 겪은 백성들의 당혹감! '목자 잃은 양떼'와 같이 공포와 초조감에 휩싸인 가엾은 백성들은 이른바 정신적 공황기를 맞고 있었다.

 

내일을 점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백성의 불안을 가라앉히고 희망을 제시해 줄 영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러나 시드키야는 국가적 난관을 헤쳐 나갈 용기는 없는, 유약한 임금이었다.  이렇게 정치, 경제, 사회가 총체적으로 불안한 시국에, 하느님의 신탁을 전해주는 예언자의 말 한마디는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겠는가?

 

마침내 시드키야 제4년(BC.593) 오월의 어느 날, 예언자 하나니야는 외쳤다!
"만군의 주님께서 바빌론 왕의 멍에를 쳐부수기로 하였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약탈해간 성전기물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쏟게 되리라. 기껏해야 이년, 이년만 참고 기다려라."

 

이 얼마나 멋들어진 말인가? 이 얼마나 고대했던 말인가?
백성들은 모두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했다.

 

"허허허, 그렇게 된다면 야 오죽이나 좋겠소 만 지금은 그런 환상을 꿈꿀 때가 아니요. 오히려 자중하고 바빌론의 처사대로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니 어쩌겠소." 아니 이게 웬 산통 깨는 소린가? “내가 이제 그대와 온 백성의 귀에 똑똑히 일러 줄 터이니 잘 들어주시오. 예전부터 우리 선배 예언자들은 많은 지방과 강대한 나라에 전쟁과 기근과 염병이 있겠다고 예언하였소.”

 

또 예레미야다. 이번에는 목에 가죽끈을 두르고 나무 멍에를 매달고 나타나 분위기도 모르고 함부로 지껄인다. 하나니야는 번번이 헛소리로 비위를 긁어대는 그 못된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니야는 예레미야의 목에서 나무 멍에를 벗겨 부숴 버렸다. "똑똑히 봐 두어라. 주님께서 이 년만 있으면 바빌론 왕이 모든 민족에게 씌운 멍에를 이렇게 박살을 내주실 것이라고 약조하셨다." 백성들은 하나니야의 말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고, 예레미야는 아무 말 없이 부서진 멍에 조각을 집어들고 자리를 떴다.

 

예레미야가 돌아왔을 때, 지엄하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니야를 다시 찾아가 이번엔 나무 멍에가 아니라 쇠 멍에를 만들어 모든 민족에게 메워주겠노라는 말씀을 전하라. 그리고 백성에게 헛된 희망을 불어넣어 안심시킨 죄로 올해 안으로 너는 죽게 될 것이라고 바로 그의 면전에 대고 말을 하라’. 하나니야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두 달쯤 지나 죽었다. 때는 시드키야 제 사 년 칠월.

 

지금 당장 속시원한 비젼과 쌈박한 희망을 제시해 주는 지도자라고 다 올바른 지도자는 아닌가 보다. 당장 내 보일 것이 없어도 솔직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가르쳐주고 더욱 절제와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 그러면서 자신도 백성과 아픔을 같이 하고 고통을 함께 견디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정으로 용기 있는 지도자일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바로 예레미야다. 신세 편한 예언자가 어디 있을까마는 가장 처참한 역사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예레미야만큼 백성과 똑같이 고통을 겪었던 하느님의 사람이 또 있었을까? 예레미야를 예수님의 예표로 보는 이유는 바로 그런 점에서 일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는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들으시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시는 예수.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점점 다가오는 예수의 수난. 복음사가는 예언자의 운명을 암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밀려드는 운명의 그림자처럼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군중. 그들을 고쳐 주시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그들을 마을로 보내 먹을 것을 해결하자는 제자들의 제안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으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엥?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인데?'

 

나머지는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어찌 어찌해서 어떻든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만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고 한다. 풀 위에 앉아 배불리 먹고 만족해하는 사람들. 병도 고치고 배도 부르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호숫가의 풍경도 기가 막히다.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것을 바라보는 예수. 그리고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유유히 사라지시는 모습에서 사심이라곤 도통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참된 지도자란 자신보다는 백성을 돌보는 일에 여념이 없는 지도자다. 백성을 ‘측은히 여기고’ 백성과 함께 고통도 기쁨도 함께 나누는 지도자다. 백성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발적으로 풀어 내놓게 하고 그것을 다시 백성을 위해 효과적으로 쓸 줄 아는 지도자다.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지도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 속에서 서로의 부족을 채워나가게 하는 지도자다. 사심이 없이 머물고 사심이 없이 떠나는 지도자다. 하늘을 우러러 항상 지혜와 권능을 비는 겸손한 지도자다. 그래서 없는 것도 만들어 내고 싶게 만드는, 그래서 대대손손 기릴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지도자다.

 

오늘 예레미야와 예수의 모습 속에서 그를 만난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런 지도자 한 명을 만날 행운은 정말 없을까?
이것도 환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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