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상사꽃과 막달라 마리아
작성자김현정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2 조회수1,061 추천수4 반대(0) 신고

교회를 다니면서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 일인데, 한 수녀님께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신앙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시는 특별한 이야기 주머니를 가지고 계신다. 그 수녀님은 나무, 꽃 이름을 잘 알고 계신다. 꽃이름의 유래와 나무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이름- 학명과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별칭-을 정말 잘 아신다.

 

어느 날, 그 분과 함께 큰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자매를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다. '덩치에 비해서 작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지나가는 나를 수녀님께서는 세우시면서,

"현정, 저 꽃 이름이 무엇인줄 알아요?"

하시면서, 잎이 하나도 없고, 통통한 줄기가 땅에서 종아리 길이 만큼 삐죽 튀어나온, 연보라빛 꽃이 4~5송이가 한꺼번에 피어 있는 식물울 가르키셨다.

"아니요."

라고 대답하자, '상사꽃' 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 '상사병' 할 때, 그 뜻인가요?"

하고 묻자, 그렇다고 말씀해주시면서 그 꽃이 사연(?)있는 이름을 가지게 된 습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간단히 써보자면, 꽃이 피기 전에는, 줄기도 없이 잎이 먼저 나오는 데, 줄기가 나오면서 잎은 시들기 시작하고, 줄기 끝에서 꽃이 필 무렵에는 잎이 완전히 없어지고, 줄기 끝에 꽃만 달려 있는, 어찌 보면 기형같은 모양으로 절정을 누리는 식물인데,  '상사꽃'이라는 이름은 잎과 꽃은 만날 수가 없고 꽃들도 서로 등을 맞대고 피어나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하셨다. 나는 대뜸,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네요."

라고 대답하였다.

수녀님께서는 말이 없으셨고 나는 계속해서 그 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 신앙인들은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을 성서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요한 복음 20:11~18)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에 찾아갔다가 그 곳이 빈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덤 밖에서 울며 서있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는데, 마리아가 들었을때, 야속할 만큼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고 있느냐?" (요한 20:15)라고 물어 보셨다. 마리아는 동산지기라고 추측한 그에게 용감하게 자기의 뜻을 요청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마리아야!"(요한 20:16 참조)하고 부르신다. 마리아는 즉시 "라뽀니" (요한 20:16 참조)하고 대답한다. 주석에는 '라뽀니'의 뜻이 '선생님'이라고 되어 있는데, 어느 신부님의 강론 중에 '랍비'가 선생님이고, '라뽀니'는 '그대여, 자기, 사랑하는 이여'라는 친근한 호칭이라고 설명해 주셨던 것이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때에 사랑하는 님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러나 존경없는 애정은 한낮 욕정에 불과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그녀의 마음을 알아 차리시고,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나는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자 곧 내 아버지이며 너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하신다. (요한 20:17)

 마리아는 얼마나 예수님께 위로받고,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하였다. 이순간 마리아의 사랑은 거룩하게 승화 되었다. 이제부터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소중히 품고 동료들에게 달려간다. 자신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이 더 보고싶어 질것이다. 또 더 그리워질것이다. 그리움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감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하다.  

 

상사꽃과 막달라 마리아-스쳐가는 만남으로 거리를 두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갈망을 요구하신다. '상사'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pining for each other' 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pine'은 갈망하다,연모하다, 라는 뜻)

예수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에는 확실히 수준 차이가 있다. 집착을 사랑이라고 믿기 일쑤이며 내 뜻과 다르게 좌절되면 바로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나의 어리석음이 자꾸 어린아이같은 응석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런 나의 모습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말씀하신다. '가서 나를 사랑하는 힘으로 이웃들을 사랑하여라.' 미사의 끝에서 우리는 안주를 버리고 변화를 요구 받으며 말씀을 믿고 떠나게 된다. 갈망하는 마리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모습 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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