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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베드로의 의심 - 우리 신앙의 현주소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2 조회수1,048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3일 (화) -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4,22-36

<저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22) 예수께서 곧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 동안에 군중을 돌려 보내셨다. 23)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거기에 혼자 계셨다. 24) 그 동안에 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역풍을 만나 풍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새벽 네 시쯤 되어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26)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오시는 것을 본 제자들은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베드로가 예수께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29) 예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밟고 그에게로 걸어갔다. 30) 그러다가 거센 바람을 보자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31)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리고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다. 33)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4) 그들이 바다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을 때에 35) 그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그 부근 지방에 두루 사람을 보내어 온갖 병자들을 다 데려왔다. 36) 그리고 그들은 병자들이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만진 사람은 모두 깨끗이 나았다.◆


[복음산책]  베드로의 의심 - 우리 신앙의 현주소


  마태오, 마르코 그리고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다음에 일제히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기적과 예수께서 풍랑에 시달리던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즉시 풍랑이 가라앉은 기적을 보도하고 있다.(마태 14,22-33; 마르 6,45-52; 요한 6,15-21) 물론 구체적인 내용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다. 원전(原典)으로 통하는 마르코복음(6,45-52)에 의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의 북동쪽에 위치한 베싸이다로 보내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혼자 산에서 기도하신다. 그 동안 날이 저물어, 즉 밤이 되었는데도 배는 역풍을 만나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었지만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신다. 시간은 흘러 새벽 4시쯤이었다. 이에 제자들이 유령을 보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른다. 모두가 겁에 질렸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도 그쳤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이는 빵의 기적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복음서는 보도하고 있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이렇듯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권능이 부각되고 있다. 물위를 걸으시고, 예수님 앞에 풍랑도 복종하는 이변(마르 4,35-41 참조)을 통해 명실공히 예수님은 인간과 자연 위에 군림하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저 놀라고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음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미성숙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6,16-21)은 원전의 내용을 대폭 줄였다. 빵의 기적이 있었던 그 날 저녁 제자들만 배를 타고 호수 북쪽 가파르나움으로 가고 있었다. 어둔 밤이 되었음에도 예수께서는 돌아오지 않으셨고, 배는 거센 풍랑을 만나게 된다. 그래도 배는 힘들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 때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의 배로 다가가신다. 이에 제자들이 겁에 질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 안에 모시려 하는 순간, 그들은 어느새 목적지에 가 닿았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6장을 통해 ‘생명의 빵’에 관한 새로운 신학을 모색하고 있는 바,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을 그 가운데 삽입함으로써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 라는 구약의 하느님 현존(출애 3,14)을 예수님께 적용시키고 있다. 


  이제 마태오복음을 살펴보자. 이야기의 소재는 같지만 마르코복음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거의 같다.(22-25절) 그러나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겁에 질려 엉겁결에 “유령이다!”(26절) 하며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예수께서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27절)라고 하신 말씀은 마르코, 요한복음과 같다. 마태오복음의 독창적인 부분은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다.(28-31절) 이는 마태오가 원전에 덧붙인 것으로써 교회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마태오복음 공동체의 교회적 상황과 미래 교회의 교회론적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모두들 유령을 보는 것으로 여겼지만, 예수께서는 “나다.” 라고 하셨다. 이 말씀으로 제자들은 일단 안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베드로와 예수님 간에 펼쳐지는 기막힌 사건을 목격하면서 믿음을 가중시킨다. 베드로와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도 그친다. 이 때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33절) 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다. 그 사이에 베드로도 깨달은 것이 있다. 자기도 물위를 걸어 예수께로 갈 때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거센 바람에 시선을 두는 순간 물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즉각 손을 내밀어 “주님, 살려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지르는 베드로는 구해주신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뼈에 새겨야 했다. “왜 의심을 품었느냐?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31절)


  마태오복음 공동체는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공동체를 배 한척에 비긴다면 그 배는 지금 거센 풍랑에 시달려 목적지를 잃고 세상이라는 바다위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이다. 그 앞에, 아니면 이미 배위에 예수께서 계시지만 그들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환난과 박해의 풍랑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 속의 베드로 같은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희미한 가운데 예수님의 현존을 바라보지만 그것도 잠시뿐, 세파에 밀려 신앙을 잃고 물속에 빠져든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도 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베드로의 의심과 나약함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현주소이다. 교회는 우주만물 위에 군림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지만, 그 구성원인 신자들은 세상의 고통과 어려움 때문에 그분을 보지 못한다.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그분을 보더라도 그분께 시선을 두지 않고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면 교회는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할지라도 세속의 풍파에 빠져들게 된다. 오늘 복음은 신앙과 세속 사이에서 온갖 유혹과 어려움을 겪는 우리에게도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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