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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3 조회수1,046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4일 (수)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1786-1859)


  아르스의 성자(聖者) “세례자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1786년 5월 8일 프랑스의 리용 근교에서 태어났다.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 시기에 그는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혁명으로 말미암아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살해되고 추방되는 가운데 비안네는 비밀리에 첫영성체를 받았다. 18세 때 부친의 허락을 받고 에퀼리 본당 발레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개인적으로 사제직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기초 교육이 부족하고 수학 능력도 많이 뒤떨어져 패색(敗色)이 짙었다. 그러나 발레 신부의 도움으로 신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신심과 성품을 인정받은 비안네는 1815년 8월 13일 그르노블에서 시몽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비안네 신부는 본당 발레 신부의 에퀼리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신부 생활을 거친 후 1818년 신자 230명의 작은 마을 아르스에 부임하게 된다. 아르스 마을의 사람들은 포악하고 못된 것으로 이름나 있었다. 당시 총대리 신부가 내린 임명장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비안네 신부님을 아르스의 본당신부에 임명합니다. 아르스는 사랑이 부족한 곳이니 신부님의 사랑을 그들과 함께 나누시길 빕니다.” 아르스에 도착한 비안네 신부는 가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에겐 마을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참회뿐이었다. 수년간 감자만 먹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사랑을 실천했던 비안네 신부를 통해 사람들은 변해갔다. 그는 밤낮없이 고해소에 앉아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다른 지방의 사람들도 아르스에 몰려와 그의 영적 설교를 듣고 참회하며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의 모범적 사제활동은 범교구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였고, 1855년 정부에서도 그에게 지방기사작위를 수여했다. 비안네 신부는 1859년 8월 4일 세상을 떠났고, 교황 비오 11세 (1922-1939)에 의해 시성되었다. 비안네 신부는 겉으로 보기에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신부였다. 그러나 그는 내적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성인은 사람들과 나누었던 것이다.◆


[오늘의 복음]  마태 15,21-28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2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이 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으니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24)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2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26)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28)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복음산책]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강아지’도 교회의 일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이 하느님 야훼로부터 간택된 백성이며 자기들만이 구원 받으리라는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구원관에 사로 잡혀있었다. 비참했던 바빌론 유배 생활을 몸소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는 노예생활로부터 자기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시리라 기다렸던 것이다.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로마 군인들이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판을 치며 자기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유를 박탈해 갔을 때 더욱 고조되어 갔다. 자유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빨리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나타나 로마 제국을 무찔러 자기들을 해방시켜주고 메시아 친히 자기 나라의 왕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메시아는 비천한 마구간 출신의 나자렛 평민으로 등장한다. 그분은 백성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천상의 왕국을 선포하시며, 로마 군인들을 내어 몰기는커녕 가난하고 구박받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지상의 행복 보다는 천상의 행복을 약속하신다. 그분은 스스로 “나는 왕으로 군림하러 오지 않고 오히려 봉사하러 온 종이다.”라고 하신다.(마태 20,28; 마르 10,45) 모세의 율법에만 얽매여 형식만을 중요시하던 백성의 지도자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사람들, 정치적인 메시아만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고, 그분을 참된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예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 마다 꼬투리를 잡고 올무를 걸어 씌우고 모함하여 결국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로 고발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 십자가형을 받게 하고 만다.


  이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신 예수께서 오늘은 갈릴래아 지방을 떠나 멀리 지중해 연안의 이방인들의 도시인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고향을 떠나와 이곳에 사는 한 가나안 여인을 만나신다. 마귀가 들린 딸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이방인의 도시 구석에 사는 가엾고 불쌍한, 남편도 없어 보이는 한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들이 갖지 못한 눈과 귀를 가졌다. 그것으로 보면 그녀는 누구보다 부자다. 예수를 알아보았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의 주인공이다. 예수께 대한 그녀의 태도는 선민(選民)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비난 받던 한 이방인 여인의 전 생애를 건 마지막 희망이기에 이는 참된 믿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예수께서 분명히 구해주시리라는 확실한 믿음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가나안 여인의 계속적인 애달픈 간청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예수의 차가운 모습을 우선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그 분은 좀더 지체하시면서 그 여인의 마음과 믿음을 살피신다. 자꾸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는 여인을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자들이 예수께 언질하자,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하며 맞장구를 치신다. 예수의 이 말을 곁에서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 사뭇 기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도 이스라엘만이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계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의도는 다른데 있다. 예수께 다가와 꿇어 엎드려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차가운 말씀을 던지신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약속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말인 것이다. 예수의 부정적인 이 말씀 가운데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나누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바로 이어지는 여인의 장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인의 믿음에 찬 항구한 간청이다.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 보잘것없는 한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장한 믿음에 탄복한 예수는 그녀의 소원대로 딸을 치유해 주신다.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심으로써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선민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을 받으리라는 배타적인 구원관을 뒤집어 엎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참 메시아로 모시고 그 분께 믿음을 두는 자는 하느님의 백성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또한 이들에게 예수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보잘것없는 한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항구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세례를 받고 미사 때마다 그분의 식탁 주위에 앉아 있는 우리들이 바로 새 이스라엘 백성이며,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다. 이를 우리는 교회라 부른다. 오늘부터 이 교회에는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강아지도 속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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