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6 조회수1,428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6일 (금) -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은 예수께서 곧 다가올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선별된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 앞에서 당신의 신적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축일은 예수께서 부활 후에 받게 될 영광의 모습을 선취(先取)한 자기계시적 사건으로서 공관복음서 모두가 보도하고 있다.(마태 17,1-9; 마르 9,2-10; 루가 9,28-36) 오늘 축일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6세기경부터 동방교회에서 기념하기 시작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1457년 교황 칼리스토 3세(1455-1458) 때에 보편 교회의 축일로 제정되었다. 이는 1456년 터키 이슬람교도와의 벨그라드 전투에서 거둔 승리에 대한 감사로 제정된 것이었다.

[오늘의 복음] 루가 9,28b-36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였다.>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30) 그러자 난데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2) 그 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거기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떠나려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3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뒤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버렸다. 35) 이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6)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복음산책] 기도하는 자만이 침묵 가운데 누리는 하느님의 영광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은 복음서상의 실제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관복음서 모두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역사적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마르 9,2-10; 마태 17,1-9; 루가 9,28-36) 마태오와 루가는 마르코복음의 원전을 놓고, 일단 그 내용과 구조를 따르면서 고유의 특성을 살려 이 대목을 편집하였다. 공관복음서가 예수님의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건의 주요내용은 같을 수 있으나 제각기 약간의 수정, 변질, 첨가, 삭제 등의 편집방식으로 조금씩 다른 의미를 주고자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놓고 세 복음서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으나, 이 사건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전례력에 따라 <가해>에는 마태오복음에서 <나해>에는 마르코복음에서 <다해>에는 루가복음에서 이 대목을 복음으로 봉독하는 것이다.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의 복음이 어느 복음서에서 봉독되든 간에 이 축일의 핵심사상은 부활하신 예수와 지상 삶의 예수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하느님으로써 누리는 영광은 이미 지상 삶의 예수 안에 묻혀있다는 말이다. 그 영광은 사실 모든 인간의 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예수께서 그 영광을 애써 숨기시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에게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 능력은 첫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미 박탈되었다. 예수가 가지고 있는 메시아적 능력은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하여 적어도 제자들로부터 검증되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가 곧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아직 그들에게 감추어져 있다. 이렇게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의 하느님으로서의 영광이 드디어 몇 명의 제자들에게 체험되도록 허락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체험이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허락된 것은 아니다. 변모사건 전에 사전준비가 있었다는 것이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세 복음서 모두가 변모사건을 위해 일련의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은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①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 ②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 ③ 예수 추종의 길 -> ④ 종말의 시기에 관한 토막어 -> ⑤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의 순서가 바로 그것이다.(마태 16,13-17,9; 마르 8,27-9,10; 루가 9,18-9,36)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했다. 그러나 베드로의 고백이 겉으로는 정확하고 장황하였으나 그 실속은 형편없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통하여 자기들이 고백한 메시아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 것임을 알아야 했고, 그 길이 곧 자신들 또한 가야할 길임을 알아야 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서 고통 받고 죽어야 하며,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하느님 지존의 영광을 드러내는 주님으로 우뚝 서게 되실 것임을 제자들에게 순서대로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그 영광을 미리 볼 수 있는 특권은 단지 몇 명의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그렇다면 루가복음만이 전하는 주님 거룩한 변모사건의 고유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따로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고, “기도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물론 기도에 관한 이야기는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에는 없다. 둘째는 변모사건직후 예수께서 세 제자들에게 당신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자신들이 체험한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함구령(緘口令)이 없다는 것이다. 루가는 제자들 스스로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고 말한다. 기도와 침묵, 이 두 가지가 바로 루가복음이 변모사건에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그렇다. 루가는 늘 예수님의 기도를 강조하였다. 루가는 예수 친히 자주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셨고, 믿음을 보존하고, 유혹을 이기며, 장차 재림하실 인자를 맞으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도는 자신뿐만 아니라 원수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며 예수 친히 자신을 처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음(23,34)을 전하고 있다. 누군가는 “기도하지 않으면 타락한다.”고 했다. 기도하는 자만이 세례의 은총을 유지하며, 오직 기도하는 자만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기도하는 자가 체험한 것을 기도하지 않는 자는 알 수도 없다. 말해준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는 자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루가는 예수께서 애써 함구령을 내리시는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기도하는 자가 체험한 것은 침묵 속에 간직된 그만이 누리는 하느님의 영광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