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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어야 할 믿음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07 조회수1,244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7일 (토) -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7,14-20

<믿음이 있다면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14) 그들이 군중에게 돌아오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15) “주님, 제 아들이 간질병으로 몹시 시달리고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그 아이는 가끔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17) 예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뚤어졌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하시고는 18) 마귀에게 호령하시자 마귀는 나가고 아이는 곧 나았다. 19) 사람들이 없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저희는 왜 마귀를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복음산책]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어야 할 믿음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마귀에게 사로잡혀 간질병으로 시달리는 소년을 치유하신 기적사화를 계기로 믿음에 관한 가르침을 들려준다. 간질병에 걸린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고쳐주시기를 청한다. 그러기에 앞서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다른 제자들에게 데려다 보였던 모양인데 별 효험이 없었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를 꾸짖으시고 마귀가 들려 고생하는 아이를 단번에 고쳐 주신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께 왜 자기들에게는 그런 치유의 능력이 없는가를 묻자 약한 믿음이 그 탓이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믿음이 있기만 하다면 엄청난 결과를 보게 될 뿐 아니라 못 할 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의 정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 자신의 거룩하게 변한 모습을 보여 주시는 동안(마태 17,1-13) 다른 9명의 제자들은 군중과 함께 산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산 아래 남아 있던 그 제자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마귀에 사로잡혀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데려온다. 그러나 제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제자들이 하나씩 돌아가며 예수께서 늘 하시던 구마행위를 흉내 내어 보았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윽고 예수께서 3명의 제자들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오셨다. 그러자 느닷없이 한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를 청하게 된 것이다.(14-16절)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르코복음(9,14-29)은 기적사화를 장황하게 보도하고 기적의 힘은 기도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총 16절의 긴 내용을 단 7절로 축약시키면서, 기적보다는 믿음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믿음에 관한 말씀은 마태오가 완전히 개작(改作)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는 세대와 제자들을 나무라신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께서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들을 탓하시면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11,17),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12,39.45; 16,4), ‘믿으려 하지 않고 비뚤어진 세대’(17,17) 등으로 표현하신다. 이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동족을 규탄하려는 마태오 자신의 표현일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 세대의 무리와 같게 보지는 않으신다.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진 믿음이 너무 작다는 것, 세상의 씨들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마태 13,32)보다도 더 작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제자들이 가졌으니 예수님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 없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에 관한 그런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과 자비에 관한 믿음으로 바로 ‘여기와 지금’(here and now / hic et nunc)에 있어야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바로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믿음이며, 바로 이 시간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어야 하는 믿음이다. 제자들이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치유할 수 없었던 것은 자기들 앞에 주어진 치유과제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는 ‘이 산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시는’, ‘못 하실 일이 하나도 없는’(20절) 지존의 권능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겨자씨보다도 작았기 때문이다. 비록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극히 작은 원인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누구나 큰 믿음을 갖고 싶어 하겠지만 그것은 작은 믿음에서 시작한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20절)부터 마음속에 간직하고 시작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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