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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 1초라도 주님의 평화 속에서 살다 가는 삶!
작성자임성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10 조회수1,230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복음 : 밀알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같이 있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이실 것이다."


1. 우리는 살아 가면서 2개의 가치관이 혼재하는 속에서 분별하기 힘들 때가 있다. 하나는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을 위해서는 성숙한 자기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은 남을 위한 삶이기에 어떤 수모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평화로이 인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둘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어떤 경우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 존중 self-esteem이 없으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사랑은 십자가처럼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심지어 그 목숨 바치는 행위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까지도 용서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까지 바치는 것이다.

 

2.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기 자신도 존중하면서 남을 위한 사랑의 삶을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선택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위하면서, 남도 위하는 삶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보다, 양자 택일의 경우가 많다. 즉, 미워 할 것인가? 사랑 할 것이가? 빛의 삶을 살 것인가? 어둠의 삶을 살 것인가? 성령을 따라 살것인가? 세속의 논리로 살것인가? 주는 삶을 살 것인가? 받는 삶을 살 것인가?말할 것인가? 침묵 할 것인가?

 

4. 썩는 밀알 처럼 산다는 것은 이러한 혼돈의 가르침에 하나의 지표가 된다.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의 생각, 욕구, 생명을 버리고 100%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것을 말한다.

 

5. 문제는 100% 남을 위한 삶을 산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100%버리지 못함으로써 완전히 사랑하는 삶도 아니고, 또 완전히 자신을 위한 건강한 삶도 살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렇게 허덕이다가 한 생을 보내는 것이 대부분의 우리 삶이라 하겠다.

 

6.이런 삶이 싫지 않는가? 분명한 것이 좋지 않겠는가? 화를 내는지, 미소를 짓든지, 차든지, 따뜻하든지, 하느님도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것은 싫어 하신다.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듣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노력을 해도, 수많은 수양을 한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이웃을 위한 한알의 썩는 밀알으로 살고 있는 모습보다, 여전히 사랑과 미움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7.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밀알으로 살고자하는 생각과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한 현실 사이의 모순된 괴리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게 풀어서 참으로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현실 속에서 살 수가 없을까? 이 미움의 구조, 죽음의 문화, 경쟁의 구조를 사랑의 구조, 생명의 문화, 협조의 구조로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8. 아마 살아오면서, 또 살아 가면서 유일한 해답은 침묵이 아닌가 싶다. 피정하듯이 일상의 대침묵을 통해서 이 모든 미움의 구조에서 새로운 사랑의 구조로 나아가는 방법을 발견 할 수 있지 않을 가 싶다. 즉,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대침묵이 유일한 대안이 되지 않겠는가? 침묵 속에서 이 모든 혼돈의 구조를 뛰어넘는 새로운 구조가 발생되지 않겠는가?

 

9. 침묵의 힘없이 진리는 사랑과 충고의 의미를 잃어 버린다는 말처럼, 침묵함으로써 우리를 혼돈케하는 모든 구조와 세속의 문화를 가라않히고, 침묵함으로써 새로운 고요함이 내면에서 솟아 올라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구조를 초월하여 새로운 구조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여기서는 더 이상 슬픔도, 미움도 없는 오직 고요함 만이 침묵속에서 펼쳐지는 평화의 신세계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10. 침묵을 통한 하느님 현존에 머물며, 단 1초라도 평화롭게 살다가 가는 삶만이 참된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 속에서 사는 1초가 갈등과 분열의 100년보다 더 낫지 않겟는가? 단, 1초의 주님 평화, 단 하루 만이라도 주님이 주시는 평화 속에서 살다가 가는 것이 그렇지 않은 삶을 오래 사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겟는가? 그렇게 평생을 미사하면서 평화를 갈구하고, 평화를 빌면서 살아 왔다면, 이제 좀 평화 속에서 평화를 전하는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 때도 되었지 않은가? 평화를 전하는 삶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고, 밀알로서 썩어가는 삶의 목적이 이 땅에 평화를 전하는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묵숨걸고 전하는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 십자가의 삶이고, 단 1초라도 늘 함께하시는 주님 평화 속에서 사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1)침묵 -

2)임마누엘 하느님 현존 -

3)주님의 평화 -

4)평화를 전하는 밀알의 삶 -

5)단, 1초라도 주님의 평화 속에서 살다 가는 것 - 새로운 삶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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