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어떻게 죽을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10 조회수1,129 추천수6 반대(0) 신고

독서: 2고린 9,6-10
복음: 요한 12,24-26

 

오늘 복음을 보면 생각나는 사건이 있다. 예전에 교회에서 피정을 갔을 때, MBTI 성격유형 테스트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참가했던 두 팀 중에 나 혼자 유일하게 ENFJ형으로 나왔다. 강사는 나를 보고 "탁월한 중재자" 라고 설명을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다섯 형제중 가운데였던 나는 어릴 때부터 형제들의 다툼에 늘 중재역을 했었고, 시집 와서도 친정 부모님, 시부모님 모두 툭하면 우리집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오셔서  하소연을 하고 가신다는 말을 했다. 교회 안에서 단체끼리 부딪칠 때도 양쪽 다 좋게 해결을 한 경험이 몇번 있었기 때문인지 모두들 끄덕끄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이 되자 다른 팀의 몇 명이 나를 잠깐 보자며 팔을 잡고 어두운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기 팀의 웃 어른들이 서로 불편한 관계로 있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 때문에 자기들이 일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을 해결해줄 사람으로 내가 지목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나는 그 두사람 모두를 잘 알고 있었고 그 사람들의 일하는 성향도 조금 들은 바가 있었다.

 

그들의 고충을 들은 나는 내가 정말 그런 해결사의 직무를 잘 시행할 수 있는지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객기도 슬그머니 들어서 한번 해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술 한잔 하자고 두사람을 청해놓고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내 이야기인 듯 먼저 풀어 헤쳐놓은 실마리를 붙잡고 공동체의 어려움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모든 문제의 발단은 전임 공동체 장과 후임 공동체 장의 역할에 대한 입장차이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때 내가 해준 말이 바로 오늘 복음의 말씀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바로 그 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으려면, 썩으려면, 땅 속 깊이 자신을 감추어야 씨앗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으랴?

 

나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교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슬그머니 목에 힘이 들어간다. 자기 본당 만이 아니라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강의를 하다보니 여기 저기서 알아주는 사람도 많아진다.(이 얘긴 그 공동체의 전임 장도 교구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분이기에 일부러 꺼낸 이야기다.)  그러다보면 본당에서 일을 할 때 우습게 여겨지기도 하고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공연히 감놔라 배놔라 하고 싶기도 하다.(그분이 가만히 듣고 웃으셨다)

 

그러나 그런 말, 그런 행동을 목구멍으로 꾹 눌러 참는 것이 바로 땅 속 깊이 내려가는 것이다. 한 단체에서도 그렇다. 전임자였기 때문에 경험이 많아서도 아는게 많고, 책임있는 성격이다 보니 맡겨준 일도 잘 해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 일수록 후임자가 생겼을 때 더욱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새로 맡은 사람이 못마땅할 때마다 전임자에게 가서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며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내가 처음 맡았을 때도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라는 걸 잊어버리면 안된다. 이럴 때에도 목구멍 안으로 할 말을 꾹 삼켜야 한다. 그것이 밀알의 죽음이다.

 

밀알이 땅에 묻히는 척하고 자기 목을 치켜들고 '나 여기있다! 내가 여기 묻혀있다는 것만은 알아다오!' 한다면 백날 묻혀있어도 고생스럽기만하지 열매맺힐 일이 없다' 는 말을 액션을 취하가며 했다. 죽었다고 말만하고 걸핏하면 일어나 참견하고 걸핏하면 뒤에서 저건 아니라 하고 걸핏하면 일어나 자기 죽는다고 구경하라고 하면 그건 꾀병이고, 가사상태라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

 

그것이 어렵거든, 정 힘들거든, 그 공동체를 그만 떠나야 한다. 그 공동체가 나 없으면 쓰러질 것 같지만 그야말로 오산이다. 교회는 성령이 돌봐주시는 곳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증거다. 또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는 다른 일도 참 많이 있다. 다른 일도 모두 나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내가 교회에 무엇을 주는 것인양 착각할 때, 봉사를 하면서 온갖 공치사를 다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이사람 저사람 흉이나 보게 되는 것이다. 왜 봉사한다면서 더 큰 죄를 짓고 다니는가?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나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나 득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같다.

 

새벽이 밝아오자 우리는 예정대로 그곳에서 가까운 성지에 가서 기도를 했다. 다음 날, 그 단체의 후임자가 전화를 주었다. '과연 탁월한 중재자십니다' '그 양반이 그렇게 다소곳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전임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배려해야한다는 말과 함께 무엇이든지 그분과 상의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배제해버리려는 것이 느껴질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그런 관계이다. 그분을 든든한 후원자로 만드는 것도 능력일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사실 두분 다 너무나 좋은 분들이고 교회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과 열정을 때론 밖으로 표출하는 것보다 안으로 깊이 삭히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것과 그러기에 더 큰 사람의 몫으로 남겨주신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런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모든 권한을 양도하고 공동체엔 가끔 얼굴을 내밀다가 나중엔 아예 손을 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분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두 분은 진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 믿는다. 현재 두 분은 다른 곳에 가서도 더 큰 일들을 책임맡고 있다.

 

오늘 독서에서도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둔다고 했다. 넓은 경작지를 놔두고 왜 한곳에만 집착하고 있는가? 교회는 넓고 할일은 많다. 왜 공동체의 걸림돌이 되면서도 떠나지 않는가? 두렵기 때문은 아닌가? 다른 곳에선 자신을 알아줄 것 같지않아 걱정이 되는가? 결실을 자기가 거둬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씨뿌리는 사람이지 거두는 사람이 아니다. 어제는 없어선 안될 주춧돌이었지만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 오늘에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그리스도을 위해서 일했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잊혀지고 묻혀져도 좋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뽑혀져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밀알 하나의 죽음이다. 

 

아낌없이 봉사하자. 그리고 아쉬움 없이 떠나자. 그것이 사실은 더 큰 열매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참 많이 경험했다. 아낌없이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떠나고 나면 언제나 더 큰 것을 마련해주시는 하느님을 늘 만났었다.

 

"뿌릴 씨와 먹을 빵을 농부에게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뿌릴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몇 갑절로 늘려 주셔서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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