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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59) 신부수업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12 조회수1,58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4년8월12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성녀 요안나 프란치스카 드 샹탈 수도자 기념 ㅡ에제키엘12,1-12;마태오18,21-19,1ㅡ

 

                신부수업

 

 

ㅡ갚아드릴 수가 없는ㅡ

그 해 가을은 깊어서 물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단풍잎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뼈속까지 파고드는 이탈의 순간에 놓여 청량리역에 배웅 나오신 원장 수녀님의 사뿐사뿐한 걱정들이 마리아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청아한 소망을 안고 수녀원 뜰안의 가족이 되어 살고있다는 사실 하나만의 행복을 제외한,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할 필요가 없었던 기쁨들을 두고, 어느 날 그곳이 그녀의 주님이신 분의 뜻이 아니어야 하는 믿기지 않은 현실 앞에서, 그녀는 쓰러져 쓴물을 토하실 어머니 보다 더 간절하게 떠오르는 얼굴들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오래된 고향의 성당에서 신부님 수녀님들이 많이 배출된 탓으로 그 성덕의 공로를 깊이 새기는 신심 깊은 교우들에게 마리아의 수녀원 입회소식은 한 점 거부감 없는 기쁨으로 전달 되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본적인 소품에서 속인의 세계에서 사용하지 않아서 손수 만들어 가야하는 비품까지 많지도 않은 크고 작은 준비물들은 여간 번거로우면서도 기대와 희망에 찬 기쁨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가족들은 그것들을 마련하기위해 서로 분담하기도 하고 힘을 합하기도 하며 순서대로 하나하나 마련해 갔다.

그런데 입회 날이 다가 올수록 숨은 손님들의 조심스런 방문이 살금살금 이루어졌다.

 

마냥 자랑스런 미소와 겸손한 미소를 동시에 잃지 않으셔야 하는 어머니의 어정쩡한 모습이 몹시도 어색했지만 그래도 별다른 말 없이 그런 방문을 받으셨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어김없이 마리아의 손을 잡았다.

 

"꼭 성인 수녀님 되거라.

꼭 기도허마. 잉!" 라고 하시거나

"어쭈꼬 그런 결심을 다 했디야?!

너무너무 대견시럽고 자랑시럽다. 잉!" 라든지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농촌의 교우들은 볼품도 없는 마리아의 손을 부여잡고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며, 신을 향한 한없는 기원을 그녀의 가슴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분들의 눈빛이 왜 저렇게 애절한지, 그분들이 그녀 때문에 왜 저렇게 기쁘셔야 하는지 어머님께 그 한 분 한 분의 사연들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5일마다 각기 다른 장터를 따라 이동하시는 참빗장수 할멈은 자식을 생산하지 못 해서 소박을 맞고 떠돌다가 자식이 주렁주렁한 홀아비 참빗장수가 가여워 영감님을 삼아 마을에 정착하여 사는 뜨네기 부부였다. 마음 같이 자라주지 않는 영감님의 자식들을 거느리고 속앓이를 하면서 하느님을 믿었기에 지탱할 수 있었던 한을 지니신 외로운 할머니셨다. 문명이라는 시대를 따라서 잘 팔리지도 않는 참빗 하나를 팔아 무슨 이익이 얼마나 남는다고 속곳 고쟁이 속에서 삼천원을 꺼내 놓고 가셨다는 것이다.

 

"수녀님들이 뭣을 쓰시는지 몰라서 필요헌 것 장만해 가라고 마련헌 성의인디 적어도 받어둬!

우리동네서도 수녀님이 나먼 얼매나 큰 축복 이것능가? 잉!"

거절할 수 없는 정성이었다고 어머니는 꼬깃꼬깃한 그 지폐를 보여주셨다.

 

그런데 하루는 어머니의 표정이 몹시 어두우셨다.

"읍네 사거리 이불집으로 이불감을 끈으러 갔었지 않허냐.

좁은 바닥이라 소문이 파다허니 퍼져서 다 알고 이불감을 돈 한 푼 안 받고 공이로 줘뿌리드라.

너무 액수가 많으니께 그러믄 안된다고 해도 어주꼬나 완강허든지 이놈에 것을 어찌께 감당을 해야 헐지를 모르것다."

 

그 무렵 그 이불집에도 사연이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가게 앞에서 놀다가 커브를 도는 커다란 덤프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처참하게 떠난지 몇 달이 되지 않았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반은 미쳐다니다가 성당에를 다녀 보려고 마음을 먹었다며 꼭 마련해주고 싶었노라고 내어 놓으니 어머니의 난감함은 쉽지가 않았었다.

 

여러가지로 마리아는 모든 것이 부담스러웠으나 그런 그녀에게 어머니는 이르셨다.

"이런 분들을 위해 기도 열심히 하고 살아야 한다."

마리아에게는 "네!"라는 답을 제외 하고는 달리 응답 해드릴 말이 없었다.

 

목장집 아주머니는 며느리 삼으려고 했다 하시면서도 바느질을 도와 주시며 마리아가 알 수 없는 액수의 금전을 어머니께 전달하시느라고 실갱이를 하시는 눈치셨고, 주일 미사에 가면 교우들과 마주하는게 겁이 날 만큼 꼬부랑 할머니의 덕담에서 부터 알수없는 성의 표현이라는걸 부둥켜 안아야 했었던!

 

마리아가 고향으로 가는 본가행 기차를 타지 못하고 큰언니가 살고 있는 춘천행 기차를 타야하는 이유도 그 간절한 얼굴들에 대한 미안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자를 양성하시느라고 늘 엄격하셨던 원장 수녀님께서는 그 날 만큼은 어머니와 같은 걱정에 쌓여서 이것저것 말이 많으셨지만 그분의 걱정은 그녀가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는 순간 끝이날 것이었다. 마리아에게는 앞으로 풀어내야 할 문제들이 눈 앞의 시험지처럼 놓여있었다.

 

그녀를 보고 까무러칠 큰언니가 걱정이 되지도 않았다.

가족은 함께 살면서 묻혀져 흠없이 끌어안아 치유하는 신비를 지녔기에 언니는 그녀의 언니요. 어머니는 그녀의 어머니였다.

수녀원에서처럼 어떠한 경우라도 이유삼아 그녀를 내보낼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가족의 상처는 걱정되지 않았고, 실제로 가족들의 아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늘 그 애절한 그림자를 먼저 생각했다.

 

연분홍 향기 같았던 고요한 성역의 아침을 마지막으로 채우던 그 날!

골절을 의지해 두 발로 서 있는 것 조차 절망스러운 그녀에게 젊고 싱그런 수녀님 한 분은 어디서 꺼내 오셨는지 곱게 접어 둔 사복 한 벌을 권하고 계셨다.

"갈아 입으시지요?"

마리아는 그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놀라시니까 입고 가서 어머니의 마음이 놓이시면 벗어서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굳이 수도복을 입고 나왔다. 그러나 춘천에 머무는 몇 일 동안은 미사에 오고가는 시선이 버거워 성당 입구의 시장 노점에서 싸구려 치마와 셔츠를 사서 입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본가에 내려 갈 때는 곳곳에서 마주쳐 놀라실 그 애잔한 사람들의 정성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은 절규였다.

 

그래서 그녀는 꼭 예비수녀복을 입고 귀향하리라 생각했고 그렇게 실행했다.

외출을 하거나 집 밖에 나서야 할 때도 그녀는 허물 같은 그 옷을 입고 벗었다.

그것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내심의 업보 같았다.

마리아는 본가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다 알지 못하는 그분들의 기도를 이루어 드리지 못 한 자책은 본가를 떠나고 싶은 십자가로 자리잡고 있었다.

성당에를 가서 앉아 있어도 고개숙인 자신의 뒷모습에 집중적인 시선으로 스쳐갔을 두려움은 그녀 홀로 감당해야 하는 크나 큰 슬픔이었다.

그 후로 마리아는 늘 고향으로부터 나그네 된 심정을 갖고 있다.

 

고향에 가면 갚아야 할 너무 큰 빚이 있다고.

그런데 그 빚은 영원히 갚아 드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세월이 흘러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다.

그러니 마리아는 독신의 숭고한 삶을 봉헌해야 하는 빚을 갚아 드리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자가 되어 버렸다.

 

올 가을에도 그 해 가을처럼 물들지 않으면 아니되는 단풍잎들은 곱게 마지막 몸부림을 할 것이다.

낙엽으로 이탈 되어져야 하는 뼈속 시린 아쉬움을 삶에 순응하며 거름이 되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리아는 그 뼈 아픈 사람들의 기도를 이루지 못 해 올 가을에도 열병처럼 청량리역을 기억 해 낸다.

 

<영화 신부수업을 보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생각을 접고 2000년에 써 둔 글들을 뒤져서 골라 옮겨 보았습니다.

  한 사제나 수도자가 이탈하기 위해서는 본인 개인의 고뇌보다 더 큰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그 고뇌로 인하여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기며 살아간다는 것도 말 하고 싶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남산위에 올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꿈은 허무였다고 말 하고 싶습니다.

  살아보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삶이었다는 것, 나는 오직 나에게 주어진 내 남편과 내 자식만을 바라보며 살기에도 급한 현실을 초연하기가 어려웠다는 것! 환속한 사제는 여자인 저 보다 이루어 책임져야 할 몫이 더 컸으리라는!

  

  개방이라는 사고력이 사제를 사는데도 수도자를 사는데도 그 극점을 추월하고 있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칫 그 영화로 인해, 겁없는 젊은 세대를 동시에 공존하시는 젊은 신학생들과 사제들 그리고 생기 발랄하고 탱글탱글한 아가씨들께서 모방 심리가 발동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기도가 성직자 한 분 한 분을 위해 봉헌 되고 있는지를, 감히 경솔한 짐작으로 가벼이 여기시면 결코 아니 된다고 알려 드립니다.

 

오늘 밤에 쓰는 이런 글로도 참빗장수 할머니의 3000원어치 기도에 버금갈 정성을 가늠 할 길이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빚을 다 갚을 때 까지 보석의 삶을 살으라 하시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마태오18,32-3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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