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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세속적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예수를 따른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16 조회수1,332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16일 (월) -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9,16-22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다 팔아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16) 한번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7) 예수께서는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참으로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려거든 계명을 지켜라.” 하고 대답하셨다. 18) 그 젊은이가 “어느 계명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19)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0) 그 젊은이가 “저는 그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다시 묻자 21) 예수께서는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22) 그러나 그 젊은이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풀이 죽어 떠나갔다.◆


[복음산책]  세속적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예수를 따른다.


  갈릴래아에서의 선교활동을 마치신 예수께서는 유다지방을 두루 거쳐 예루살렘으로 상경하고 계신다.(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 마태 19,1-20,34) 예수님을 따라 열두 사도들은 물론, 여인들까지 포함된 큰 제자단과 많은 사람들, 그리고 어린아이들까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 사람들은 예수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며, 마지막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마태오는 지난 토요일,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신 내용의 복음(19,13-15)에 이어 오늘과 내일 복음으로 ‘예수추종’에 관한 가르침(19,16-30)을 들려준다. 예수추종에 관한 대목의 가르침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① 부자청년이 재산을 버리지 못하여 예수추종을 거부했다는 이야기(16-22절), ②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단언(23-26절), ③ 예수추종에 대한 보상에 관한 대담(27-30절)이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주제와 한 가지 결론을 담고 있는데, 처음 것이 나중 것에 종속되고, 예수추종으로 종결된다고 하겠다. 그 과정은 부자청년의 질문을 계기로 전개된다. 첫 번째 주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준수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주제는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으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다. 원전(原典)이 되는 마르코복음의 같은 대목(10,17-22)과 비교하여 보면 마태오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원전을 약간 수정하였다. 이야기의 발단은 한 젊은이가 예수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선행(善行)에 대하여 질문한다.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조건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서, 십계명(출애 20,12-16; 신명 5,16-20) 중에서 부모를 공경하라(제4계명), 살인하지 말라(제5계명), 간음하지 말라(제6계명), 도둑질하지 말라(제7계명), 거짓 증언하지 말라(제8계명),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열거하신다. 마지막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레위 19,18)은 마르코에 없는 것을 마태오가 첨가하였다. 그 이유는 이미 산상설교(마태 5-7장) 안에 들어있다. 산상설교에서 이웃사랑이 직접 언급된 바는 없지만, 이웃사랑은 예수님의 대당명제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충분히 부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율법학자와의 대담에서 하느님사랑(신명 6,5)과 이웃사랑(레위 19,18)의 계명을 율법서의 가장 큰 계명으로 천명할 것이다.(마태 22,34-40)


  청년이 이 모든 계명들을 어릴 적부터 잘 지켜왔다고 하니, 그에게 영원한 생명은 보장된 셈이다. 그러나 영생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일까?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20절) 라는 청년의 질문이 계속된다. 마르코는 이 대목에서 예수께서 청년을 보시면서 “너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10,21)고 말씀하신다. 유대교에 의하면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때 완전하게 된다. 예수께서도 산상설교에서 6개의 대당명제 끝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고 말씀하셨다. 여기서의 완전함은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며, 예수께서 제시하시는 율법의 근본정신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시는 인간의 완전함은 단순한 계명 준수를 뛰어넘는 것이다. 즉, 계명 준수와 함께 선행과 추종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복음에서 보듯이 부자청년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난 뒤에 예수추종을 요구받는다.(21절) 그러나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풀이 죽어 떠나가 버린 것으로 오늘 복음은 끝난다.(22절)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 우리는 재산을 많이 가진 부자로서 계명을 지키며 살아 갈 수도 있고, 큰 재산 없이 가난한 자로서 계명을 따라 살아 갈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한번 계명을 지킨 것으로 영생을 보장받거나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푼다고 해서 당장 완전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계명 준수와 선행은 종말론적인 영생과 완전함을 위해 평생을 두고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덕행이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과 완전함은 미래지향적이다. 부자청년은 지금까지 계명을 잘 지켜왔다는 결과로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듯하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계명을 준수해야 하는 조건이 남아 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도 신나는 일이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신나는 일이다. 완전함은 최종적으로 예수를 추종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추종은 또다시 역으로 세속적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요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속적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만큼 예수를 추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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