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실처럼 가늘게..새털처럼 가볍게...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17 조회수1,054 추천수5 반대(0) 신고

복음: 마태 19,23-30

 

어제의 복음에서 부자청년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오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추종의 소명을 받아들일 수 없어 풀이 죽어 떠나갔다.

 

이에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 얼마만큼 어려운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깜짝 놀라 묻는다.("그러면 구원받을 <부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 않는 점에 주목하자)  
예수님의 말씀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자’로만 오해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우리 중 어느 한 사람도 부자 아닌 사람이 없다. 루가복음에서의 부자란 ’속옷 한벌을 가진 사람에 비해 속옷 두벌을 가지고 있는 사람’(3,11)이다. 우리가 넉넉히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의외로 많을 수 있다.
돈일 수도 있고 지식, 힘, 재능, 시간, 마음일 수도 있다.

 

어떤 점에선 우린 가난하지만, 어떤 점에선 부유하다. 그렇다면 부유한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바로 예수 추종의 길이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렇게 나누고 덜어내다 종국에는 우리 자신을, 바늘귀를 통과하는 실처럼 가늘고, 새털처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적인 표현이다.

 

모든 물욕과 소유욕, 명예욕, 애욕을 떨구어내고 예수와 같은 무소유의 대 자연인이 되라는 말씀이다. 우리같은 보통사람에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또 풀이 죽으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말씀하신다.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네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들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어제도 이야기했듯이 ’내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그분’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 그분이 해주시는 은총으로 우리도 새털처럼 가벼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면, 만일 그것이 말이나 이상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면 그 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이며 언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부분의 신앙인이 가는 영적 여정의 길은 어떤 날,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것이 아닌 것같다. 우리의 신앙 여정은 의심과 변명의 유아기적인 과정이 있는가하면, 응답과 시험을 반복하는 청소년기도 거친다. 그리고 부자청년처럼 계명의 준수와 외적 행위에만 힘을 쏟는 장년기도 있는가하면, 내면적인 소유마저도 하나씩 발견해내고 털어내게 되는 원숙의 중년기도 거쳐가는 것이다.

그분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점점 더 자신에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겉껍질이, 위선이, 욕심이, 하나 하나 민감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점점 더 변명도 자랑도 줄어들고 오로지 침묵과 겸손, 영적인 가난함만이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마침내 ’오른 손이 한 일도 왼손이 의식하지 못할 만큼’(6,3), ’제가 언제 주님을 위해 그런 일을 했습니까?’(25, 37-39)라고 의식도 못하면서 주님의 체질로 변화되는 그 날까지... 그분은 당신의 은총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

아직도 미성숙의 단편들을 발견하여 때로는 상심하고 우울하지만, 그래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이나마 여기까지 오게 해주신 그분의 은총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은 여정에 희망을 걸고 용기를 내게 된다.

 

이젠 그분이 하시는 일에 어떻게 하면 빨리 힘을 빼고 순응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그래서 나는 믿는다. 그분이 나를 실처럼 가늘게 군살을 빼주실 것을... 그분이 나를 새털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게 해주실 것을...

 

주님, 이제까지도 그러셨듯이 앞으로의 남은 여정도 은총으로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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