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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신부와 '조폭'의 공통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20 조회수1,127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21일 (토) -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 비오 (1835-1914) 10세 교황


  1903년 교황선거를 위해 왕복표를 구입하여 베네치아를 떠나 로마로 향했던 요셉 사르토 대주교는 결코 돌아오지 못했다. 스스로가 교황에 선출되었던 것이다. 당시 성인은 자기를 뽑은 추기경들에게 눈물로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면서 물려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의 트레비소 근처 리에세에서 가난한 우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파두아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를 하고 1858년 사제가 되어, 1875년 트레비소 주교좌 주임과 1884년 만투아의 주교를 거쳐 1893년 베네치아의 총대주교에 올랐다. 겸손하고 부족한 마음으로 교황직을 받아들인 비오 10세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라는 모토를 내걸고 전례, 교회법, 성서신학 등 많은 분야에 쇄신작업을 시도하였다. 당대의 새로운 사조였던 ‘근대주의’의 오류들에 대항하여 교회의 보고(寶庫)를 수호하였고, 그의 인자함과 순수함은 비신자들을 감동시켰다. 비오 10세 교황은 1914년 8월 20일 세상을 떠났고, 비오 12세 교황(1939-1958)에 의해 1954년 시성되었다.◆


[오늘의 복음]  마태 23,1-12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면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바란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복음산책]  말은 실행하되 행실은 본받지 말라.


  마태오복음 21장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가 보도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는 즉시 성전정화(21,12-17)를 통하여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예수의 이런 권한을 놓고 심하게 논쟁을 벌이셨다(21,23-27). 이어서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21,28-22,14) 등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을 단죄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람들과의 세금논쟁(22,15-22)과 부활토론(22,23-33)을 통하여 그들의 감탄을 받아냈으며,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 또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로서 사랑의 이중계명이 새롭게 선포되었다.(22,34-40) 예수께서는 자신이 육(肉)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영(靈)으로는 다윗이 이름 불러 칭송했던(시편 110,1) 주님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유다교의 공적 지도자들 앞에서 계시하셨다.(22,41-46) 이 계시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마지막 자기계시이다. 이제부터 예수님은 메시아 그리스도로서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최후의 격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은 유대교의 지도층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총체적으로 책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청중은 갈릴래아 활동기에서와 같이 군중과 제자들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새로운 정의를 선포하셨다. 오늘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잘못된 정의를 책망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정의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책망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존경과 비난을 동시에 표하신다. 그들이 예수의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는 모세의 율좌(律座)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막중한 권한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위선자(僞善者)’들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예수님의 입술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오르게 될 것이며, 이들에 대한 일곱 가지 불행이 선포될 것이다.(23,13-33)


  ‘위선자’는 원래 연극용어로서 배우들을 지칭한다. 배우들은 자신의 실존을 철저히 가면 뒤에 숨기고 각본과 배역에 따라 연기한다. 자기 자신은 그렇지 않더라도 배역이 주어지면 각본에 따라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동은 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 된다.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결론이다.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 무거운 짐을 백성에게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마나 팔에 성구(聖句)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도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잔치에서 맨 윗자리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거리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며, 사람들로부터 스승이다, 지도자다 하는 말을 즐겨 들으려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교회 안에 성직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오늘 바리사이와 율사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난이 그들에게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진정한 스승과 지도자는 그리스도 당신 한 분뿐이시며 믿는 이들은 모두 한 형제자매임을 가르치신다. 예수님만이 가르치시는 선생(先生)이며 우리는 모두 배우는 학생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계속 전해야 하고 다시금 가르쳐야 하는 사도직을 수행해야 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그들 또한 스승이신 예수님 앞에 늘 학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11-12절)는 오늘 복음의 역설을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마음에 써 넣어야 하는 것이다. 남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거나 남 앞에 자주 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위선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고, 말이 많으면 행동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료로부터 신부(神父)와 조폭(組暴)의 세 가지 공통점을 듣고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세 가지 공통점인즉, 첫째는 ‘검은 옷을 주로 입고 다닌다.’는 것, 둘째는 ‘밥 먹고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아무한테나 반말한다.’는 것이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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