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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녀 모니카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27 조회수1,401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27일 (금) - 성녀 모니카 기념일


▣ 성녀 모니카 (332-387)


  “한 어머니의 이렇게 많은 눈물에 망할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고백록 제3권 제12장) 이는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눈물과 기도로 지내던 어머니 모니카에게 어느 주교님이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성녀 모니카에 대하여 알고 있는 바는 아들 성 아우구스티노가 그의 고백록에 기록한 내용이 전부다. 성녀 모니카는 332년 북아프리카 지방 타가스테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에 이교도 파트리치오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으니, 맏이가 아우구스티노였다. 성녀는 가족의 회개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덕분에 370년 시어머니와 남편이 세례를 받았다. 371년 남편의 죽음으로 모니카는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따라 로마로 밀라노로 옮겨 다니면서, 당시 교수였지만 마니교에 물들어 비도덕적인 생활로 허덕이는 아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눈물로 지냈다. 성녀는 아우구스티노가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387년 부활절 직후 중병으로 오스티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한 어머니의 생애였다. 성녀 모니카도 나를 위해 애쓰시는 바로 우리 어머니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오늘의 복음]  마태 25,1-13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1) “하늘나라는 열 처녀가 저마다 등불을 가지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것에 비길 수 있다. 2) 그 가운데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3)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4)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5)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아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6) 그런데 한밤중에 ‘저기 신랑이 온다. 어서들 마중 나가라!’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7) 이 소리에 처녀들은 모두 일어나 제각기 등불을 챙기었다. 8) 미련한 처녀들은 그제야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기름을 좀 나누어다오.’ 하고 청하였다. 9)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 것을 나누어주면 우리에게도, 너희에게도 다 모자랄 터이니 너희 쓸 것은 차라리 가게에 가서 사다 쓰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10)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문은 잠겼다. 11) 그 뒤에 미련한 처녀들이 와서 ‘주님, 주님, 문 좀 열어주세요.’ 하고 간청하였으나 12) 신랑은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며 외면하였다. 13)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복음산책]  아뿔싸, 준비한 기름이 없네.


  마태오복음의 종말과 심판에 관한 설교(24-25장)에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에 따른 준비와 최종적인 심판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광경이 많은 은유(隱喩)를 통한 비유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에 관한 일들이 비유 속에 묘사되는 것처럼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은유를 이용한 비유의 맛은 그 속에서 영적인 교훈과 도덕적 지침을 얻어내는 데 있다. 마태오가 수고를 들여 편집한 네 편의 비유를 연이어 수록한 이유도 바로 그런데 있는 것이다. 네 편의 비유를 다시 한번 언급하면, 충성스런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24,45-51), 열 처녀의 비유(25,1-13), 달란트의 비유(25,14-30), 그리고 최후심판의 비유(25,31-46)이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두 번째를, 내일 복음에서 세 번째 비유를 듣게 된다. 참고로 네 번째 비유는 <가해>의 그리스도왕 대축일과 부활시기를 제외한 다른 시기의 장례미사 복음으로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열 처녀 비유는 마태오복음만이 전하는 독자적인 고유전승이다. 비유에서 신랑은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뜻하며, 열 처녀는 신랑을 맞을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열 처녀의 손에 쥐어진 등잔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선사받은 신앙을 의미한다. 그 신앙의 강도와 열매는 준비된 기름에 비유된다. 따라서 열명의 처녀 중에 슬기로운 다섯은 복음의 말씀을 충실히 따르고 지키며 사는 신자들이요, 어리석은 다섯은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신자들이다. 무릇 ‘선인과 악인’이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신랑인 그리스도의 오심이 늦추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처녀들이 등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이 이내 왔다면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신랑의 오심이 늦어지면서 등불을 위한 기름이 얼마나 준비되어 있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신랑이 당도하는 시간이 지체되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틀림없이 신랑이 온다는 사실이다.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청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애절함과 나누고 나면 양쪽 다 모자라니 가게에 가서 사다 쓰라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야속함이 상충된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 버렸다. 이것 또한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오실 것은 무엇인가? 허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때와 기회를 놓치고 나면 다시 얻기란 힘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에야 같이 도와가며 사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철저히 홀로 서야 함을 보여주는 비유가 아닌가.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마태오복음 공동체에도 그렇고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척에 있는 사건으로 믿었고, 개중에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재림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이 지체되면서 기다림의 열망은 식어가기 시작하였다. 기다리다 지치면 기다림에 대한 열망은 식어가기 마련이다. 오래 기다리다 보면 지치고 짜증나고 화가 나기도 할 것이며, 때로는 포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한 생을 살다가 죽는 순간이 바로 신랑이 오신 시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복음은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미지근한 열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다림의 의미를 주고자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일은 오늘 복음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다가 슬기로운 다섯이나 미련한 다섯이나 모두가 지쳐서 졸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5절) 얼마나 솔직한 표현인가? 그러나 기름준비의 여부에 따라 그 잠이 평화의 잠이 될 수도 있고 공포와 두려움의 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13절)이 쉼도 지침도 없이 뜬 눈으로 밤낮 긴장하여 살라는 말은 아니다. 주어진 하루에 예수님의 복음을 따라 최선을 다하여 살고, 하루의 마지막 시간에 평온한 휴식의 잠을 청할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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