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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아우구스티노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28 조회수1,258 추천수4 반대(0) 신고
 

◎ 2004년 8월 28일 (토) -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 성 아우구스티노 (354-430)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nes》를 통하여 우리는 성 아우구스티노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그 속에서 성인은 자신의 방랑생활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찬미하고 있다.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아버지 파트리치오와 어머니 모니카의 첫 아들로 태어난 성인은 마두우라와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공부하였고, 로마를 거쳐 384년부터 밀라노에서 문하생들을 가르쳤다. 여기까지 성인은 마니교의 이단에 물들어 윤리적, 사상적으로 대단한 방탕생활을 향유하였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오를 만남으로써 성인의 긴 암흑생활과 최상의 진리추구를 위한 그의 여정은 일단락된다.


  어머니 모니카의 하염없는 눈물과 끊임없는 기도 덕분이었던가? 387년 부활절에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은 성인은 14년간 동거했던 여인과 모든 소유를 청산하고,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유사수도생활로 덕을 쌓아간다. 391년 히포의 주교가 성인을 발견하고 사제반열에 올린다. 397년 히포의 주교가 되어 ‘나는 여러분을 위해서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33년간 모범적 주교생활을 통하여 《고백록》과 《신국론》외에도 수많은 철학, 신학논문들, 성서해석서, 강론집, 편지들을 저술하였다. 당대의 ‘도나투스’ 이단에 항거하여 신앙을 수호하였고, 플라톤의 철학을 재조명하여 서구의 철학과 신학의 사부로 손꼽히며, 성인의 영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노는 33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36세에 사제가 되었으며 41세에 주교가 되었다. 죄인에서 성인이 된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는 데 아주 열성적이었다. 죄인으로 살 때도 그랬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인으로 살 때도 그랬다. 거기에 어머니의 정성어린 눈물과 끊임없는 기도와 암브로시오 성인의 관심과 교육이 있었고, 성서 안에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죄인의 삶을 성인의 삶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고백록》에 실려 있는 한 편을 글을 함께 들어보자.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아 당신의 아리따운 피조물 속으로 더러운 몸을 쑤셔 넣었사오니!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같이 아니 있었나이다.

당신 안에 있잖으면 존재조차 없을 것들이

이 몸을 붙들고 님에게서 멀리했나이다.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이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사 눈멀음을 쫓으시니,

향내음 풍기실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매 위 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

(성 아우구스티노, 최민순 역, 고백록, 10권 27장)◆


[오늘의 복음]  마태 25,14-30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14) “하늘나라는 또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었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돈 다섯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가서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 19) 얼마 뒤에 주인이 와서 그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주인님, 주인께서 저에게 다섯 달란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2) 그 다음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님, 두 달란트를 저에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래서 주인은 그에게도 ‘잘하였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제 내가 큰일을 너에게 맡기겠다. 자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하고 말하였다. 24)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6) 그러자 주인은 그 종에서 호통을 쳤다. ‘너야말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다. 내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면 27)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28) 여봐라, 저자에게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 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복음산책]  비교는 불행을, 감사는 행복을...


  오늘 복음은 종말과 심판에 관한 비유 4편(24,45-25,46) 중에서 달란트의 비유(25,14-30)에 해당된다. 우리는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은 너희가 생각지도 않을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24,44)는 말씀에 따라 종말비유의 특징을 ‘늘 깨어 준비함’으로 규정하였다. 늘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는 종말의 시간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는 종말 후에 세워질 신국(神國),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불시(不時)에 들이닥칠 종말을 깨어 기다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종말로 시작되는 하느님나라의 시민(市民)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살아 있는 동안에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로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으로서 연중시기에 듣게 되는 마지막 복음이다. 우리는 지난 연중 제10주간 월요일부터 오늘 연중 제21주간 토요일까지 마태오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공생활 가운데 있었던 행적과 가르침을 평일미사의 복음으로 묵상해 왔다. 이제 연중 제22주간 월요일부터 한해 전례력의 마지막 날인 연중 제34주간 토요일까지는 루가복음(4,16-21,36)을 평일미사 복음으로 묵상하게 될 것이다. 


  달란트의 비유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많은 종들을 부리는 아주 부자가 틀림없다. 주인은 먼 여행을 떠나기 전에 종들을 불러 각자의 능력대로 재산을 맡긴다. 루가복음은 금화의 비유(19,11-27)에서 열 명의 종에게 각각 금화 한 개씩(100 데나리온)을 맡기는데 비하여 마태오복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종들에게 맡긴다. 한 데나리온이 일꾼의 하루품삯에 해당하니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다. 따라서 세 명의 종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섯 달란트(30,000 데나리온), 두 달란트(18,000 데나리온), 한 달란트(6,000 데나리온)를 받는다. 그리고 주인은 떠났다. 종들에게 이 많은 돈을 맡기면서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없고 언제 돌아오겠다는 말도 없다. 따라서 맡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종들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주인이 떠나간 후에 종들은 각기 받은 달란트로 첫째와 둘째는 배가(倍加)시켰고, 셋째는 그냥 땅에 묻어 두었다. 느닷없이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밝히게 된다. 셈의 결과는 오늘 복음이 보여주는 바와 같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종말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깨어 기다리는 것’이다. 초기 교회가 당면한 ‘재림지체 현상’을 염두에 두고 ‘열 처녀의 비유’(25,1-13)와 ‘최후심판의 비유’(25,31-46)와의 맥락에서 달란트의 비유를 묵상하여야 한다. 출타한 주인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과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꼭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 사이의 긴장감은 일상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깨어 기다린다는 것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믿음의 마음을 굳건히 하고, 목적의식을 뚜렷이 가지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바로 두 번째 교훈이 들어 있다. 비유가 주는 둘째 교훈은 각자가 받은 달란트(Talent)를 종말의 시기까지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그릇에 맞게 능력을 주셨다. 비유에서 보듯이 받은 능력의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받은 것을 그냥 묻어두어서도 안 된다. ‘얼마나 많은’ 능력보다는 많던 적던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모든 불행은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양을 가지고 남의 것과 비교하는 순간 인간의 불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반대로 양에 관계없이 자기에게 맡겨진 능력을 신뢰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사용한다면 여기서 인간의 행복은 시작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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