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나음을 받았습니다.*^^* ♣ - 소명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8-30 조회수1,53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소명 ♣    

소명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소명(召命). 사명(使命). 성소(聖召)
이 말은 모두 '부르심'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 아빠
이신 성부의 부르심에 응답하셨다.

그 응답에는 엄청난 고통이 함께 했지만 의연하게 그 모든 소명을 이루셨다. 사람들은 폼나게 살기를 원한다. 폼나면서 좋은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
훌륭한 평가를 받으면서도 고통이 없는 그런 역할, 좋은 일이면서도 갈등이 없고 신나는 역할, 하느님의 뜻이면서도 어렵지 않은 역할을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소명에는 십자가가가 따른다. 십자가 없는 소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은 모두 십자가를 요구한다. 그 십자가를 피해 서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 이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삶에서 자명 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여기서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어차피 주어진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절망과 고통이 주어 진다면 그때가 비로소 하느님을 제대로 뵐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임을 확신하자.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이 들에게는 자유를 준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닌가.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04년 "야곱의 우물"에 나오는 매일 성서묵상 8월 30일자. 일본 시부까와 천주교회 김대열 신부님의 글입니다. 》 ※ 오늘의 복음: 루가 4,16-30절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 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에수에게 쏠렸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수군거렸다.
예수께서는 '너희는 필경 '의사여, 네 병이나 고쳐라'는 속담을 들어 나더러 가파르나움에서 했다는 일을 네 고장인 여기에서도 해보라고 하고 싶을 것이다" 하시고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잘 들어라.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이나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고 온 나라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는 과부가 많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보내시지 않고 다만 시돈 지방 사렙다 마을에 사는 어떤 과부에게만 보내주셨다.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나병환자가 살고있었지만 그들은 한 사람도 고쳐주시지 않고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는 모두 화가 나서 들고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끌어냈다.
그 동네는 산 위에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 뜨리려 하였다.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갈 길을 가셨다. [오늘의 잠언 30장 7-9절] "저에게는 당신께 간청할 일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을 제 생전에 이루어 주십시오.
허황한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마십시오. 먹고 살 만큼만 주십시오.
배부른 김에, "야훼가 다 뭐냐."고 하며 , 배은망덕하지 않게, 너무 가난한 탓에 도둑질 하여 하느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 † 오늘 성화는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이십니다 복음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며, 묵상글에도 중풍병자는 없습니다. 안나 아지매가 가을이와 함께 여행을 한다더니 더위 먹었나? ^&^ 작은 그림 안에 숨겨진 그림을 찾아보십시오.
안나도 보이고, 벗 님들의 얼굴도 보입니다. 안보인다구요? 저는 다 보이는데여...아이디를 말하라고 해도 나는 다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하, 무슨 소리냐고..계속 궁금하시지요.들어보세요.^^ [조 안나]가 벗 님들 덕분에 중풍병이 나앗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9,2]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에 누인 채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안심하여라,네가 죄를 용서 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마르코2,3-5] 그 때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 5,25-26] 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여《"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하고 말하였다. 하하, 무슨 소리냐구여... 그럼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 고심해봅니다. ★ 들으세요! ★ 내가 요구하는 모든 것은 당신이 들어주는 것 이야기하거나 무언가를 알려고 하지 말고, 단지 들어주세요.
충고는 값싼 것 12센트면 한 신문에서 인생 상담가와 목사님을 동시에 만날 수 있어요.
나 자신을 위하여 내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당신이 어떤 것을 해주려 하면 당신은 나의 두려움과 부당함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얼마나 불합리한가에 상관없이 내가 느끼고 있는 단순한 것을 당신이 받아 들어준다면, 나는 당신을 납득시키는 일을 그만두고 이 불합리한 감정 뒤에 감추어진 것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숨겨진 것이 분명해지면, 그 대답이 명백해지고 나는 충고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불합리한 감정은 우리가 그 뒤에 감추어진 것을 이해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이유, 어떤 사람들을 위하여 신은 때로 침묵하며, 충고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듣고 당신 자신이 해결하도록 놓아둡니다.
그러니 제발 들어주세요, 그냥 듣기만 하세요. 그리고 당신이 이야기하길 원한다면, 당신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그러면 내가 들어드릴게요.
- 작자 미상 -
이제 이해가 가시나요... 어떻게 나았냐구여.... 벗 님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안나를 위해서 날마다 짧은 댓글과 함께 기도해주셨지요...
오래된 중풍병이었습니다. 아파서 건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친정 어머님이 17년동안이나 앓으셨던 중풍병처럼 안나는 영혼의 중풍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아픈 자아가 못난 자아로 바뀌어가면서 뛰어 넘어야 할 벽을 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작은 아이가 숨어있는겝니다. 하느님과 안나 사이에 계산해야 할 빚도 많지만,우선 안나가 너무 아팠으니까여... 그 늪을 헤쳐 나올 힘조차도 없습니다.
먼저, 중풍병자인 나를 사이버공간으로 인도해준 몇 친구들 에게 감사를 드립니다.다움넷도, 케이블 컴터를 사용하도록 배려해준 별명이 바둑아찌인 내 남편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E-mail 안에서 '너나들이'하며 살아가는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어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울면서 기도해주었습니다.
야곱의 우물과 함께 묵상을 나누면,'야곱의 우물'내용보다 너가 나눈 묵상글에서 더 감동을 받는다고 용기를 주었지요. "하늘로 열려진 유일한 창" 이라며 타국에 살고 있는 형제가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아픈 상흔들을 들춰내며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묵상을 야곱이와 함께 나눈다면서 "기다려진다"는 짧은 댓글은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그렇게 머나먼 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었습니다.
그 때. 어디서들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성별도 알 수 없고, 나이가 몇 살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도무지 하나도 알지못하는 친구들이 하나씩 모여들어 내 이야기를 들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습니다.
300자로는 너무나 짧았으니 어떤 때는 ^^ 이렇게만도 남겨주며, 아멘!,샬롬!,등 아주 간단하게 남겨준 댓글들이 안나의 아픈부분 들을 만져주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삶도 열어보이며 기도해주는 천사들이 내 들것을 주님 앞으로 내려다 주었습니다.
아...오늘도 끝없는 수다가 또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서 오늘 묵상의 내용인 소명으로 돌아가야지요.*^^*
벗 님들도 소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찔리는데가 있으신가요.
우리 모두에게 예외 없이 주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임을 명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김 신부님의 말씀에 동의 하시나요. 아니라고 도리질을 한다면 다시 점검해봐야겠죠.
요즈음 야곱이와 함께 재능(달란트)에 대해서, 다시말해서 소명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명쾌한 답을 내려주는 멜이 왔습니다. 사이버에서 만난 수녀님이십니다. 살아가는 여정 동안 지도수녀님처럼 가르침을 받고픈 분이시지요. 재능...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다구요~ 안나님은 너무 많이 갖고 계셔서 푸지게 퍼 주어야만 살맛을 느끼실 겁니다.
[상처받은 치유자]에 대해서 헨리뉴엔 신부님이 말씀하셨지요.
상처로 인해 아파본사람만이 그리고 은총으로 치유된 사람만이 다른이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자격이 있는 거지요. 바로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
그는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넉넉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며, 다른이로 하여금 삶을 체험하도록 허용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대... 서로 자기 주장과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들어주는 사람의 몫이 꼭 필요합니다.
들어줌 그 자체가 사랑이요, 그자체로서 하느님의 치유와 현존을 느끼게 할테니까요.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그 자체로 족한것이지요. 우리는 서로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불목하게 되지요.
들음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첫째 조건입니다. 들으라 이스라엘....! 쉐마 이스라엘~ 신명기를 읽다보면 크게 눈에 띄는 대목이지요.
우리의 조건은 듣는데에서 시작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치유자의 몫은 들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고 다른이들을 일깨우는 역할이 되겠지만, 참 치유자의 시작은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요.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잣대나 편견이나 판단을 버리고 깊은 존경심안에서 상대방을 듣는 것...........! 얼마나 어려운 소명인지요.
그 소명을 안나님이 느끼셨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서서히 길이 보이실 것입니다.
아니 보이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 그렇게 이끌어 나가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형제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섬세함을 선물로 받으셨으니,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의 큰 귀를 청하시길 빕니다.
늘 열심히 사시는 안나님께 사랑과 평화를 보내며,
글을 읽으며 제 마음에 떠올랐던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못난이를 너무나 사랑하시나 봅니다. 좀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으셔서, 제 영혼에 불을 질러놓았으니, 그 불속에서 깜깜한 시간을 보냅니다.
속은 타는 것 같은데, 워낙 불순물이 많아서인지, 매쾌한 연기만 오르는 가 봅니다. 연기땜에 눈물이라도 나면 좋으련만, 모든 감정의 뿌리까지 몽땅 살라버리시려나봅니다. 눈물방울도 나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신앙으로 가는 길입니다. 마음가득 희망안고 가는 길입니다. 사랑으로서만 완성되는 길입니다. 바로 우리가 가는 하늘길........ 우리 아버지를 만나는 길입니다. 이렇게 속 깊은 영혼의 모습을 드러내놓으시는 수도자를 보셨습니까. 안나는 이제서야 만났습니다. 내 영혼의 주소를 정확하게 짚어주시고 안나의 이야기들을 들어주셨습니다.*^^* 비단 안나에게만 들려주시는 말씀이 아니리라 생각듭니다.
벗들에게도 분명 같은 소명이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하하, 물귀신처럼 다 끌고 들어가고 있는게지요. 분명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묶인 이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이들을 보게 하고, 억눌린 이들에게는 자유를 준다. 말 그대로 기쁜 소식, 복음이 아닐 수 없다. 한 영혼에게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준다면 분명 그 사람에게는 은총의 해가 시작되어 갈 것입니다. 21세기는 사이버 선교시대입니다. [로마서 10,13-14]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가슴이 떨리지 않습니까! 한 영혼이 나음을 받고 돌아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어린 양 한마리가 길을 잃고 헤메다가 아버지 앞으로 돌아와서 자기 삶에 치렁치렁 감겨졌던 멍에를 벗어내는 일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미사를 드리면서 야곱의 우물을 나누는 모든 분 들을 지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나음을 받았음에 감격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체를 모시고 가는 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외짝 교우가 되면 성체를 모실 수 없다는 가톨릭 교회법으로 조당에 걸렸다는 것이 너무나 싫어서 저는 멀리멀리 도망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교회법으로도 나를 가둘 수 없다고 하면서.. 뚜벅뚜벅 걸어나가 성체를 모셨습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려옵니다. 미사 끝나기를 기다렸다가...빈 성당에 앉아서 주님께 고합니다.
'조당에 걸렸음에도 성체를 모셨다는 것 때문에 저를 죽이신다고해도...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제가...너무너무 주님을 사랑하거든요. 당신의 사랑에 목말라서 죽겠습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당신을 내 안에 모시고 죽겠습니다. 죽. 여. 주. 십. 시. 오.!' 라고 외치며 목을 놓아 울었습니다.
하하, 오늘은.... 성체를 모시지 않아도 내 영혼은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가톨릭 교회법도 이제는 얄밉지 않습니다. 내 병이 나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상처가 깨끗이 나아서...내 몸을 빠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집니다. 이제는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나를 옭아매었던 이 세상의 어떠한 법도 나음을 받은 나에게는 거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보이시나여... 여기서 하나의 결론이 나온다. 어차피 주어진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절망과 고통이 주어 진다면 그때가 비로소 하느님을 제대로 뵐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임을 확신하자.묵상글 중에서... 네. 저도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말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절망과 고통이 주어 진다면 그때가 비로소 하느님을 제대로 뵐 수 있는 은총의 시간임을 확신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3년. 엄마 잃은 병아리가 고국을 떠나 타국만리에서 또 다른 삶의 애환을 겪으며 느꼈기에 오늘 묵상하면서 동감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다가...삶 전체로 받아들인 이야기들을 이렇게 길게 길게 눈물 콧물 흘려가며 써내려간 오늘의 묵상나눔입니다.
그동안 안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기도해신 분들. 그리고 바쁜가운데서도 짧은 댓글을 남겨주셨던 모든 분들. 감사한 마음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젠 안나가 들어드릴 차례입니다. 저의 멜 주소는 01130430@hanmail 입니다. 저의 옆지기 생일은 1월 13일이고,저의 생일은 4월 30일입니다. 복잡하지만,그 어떤 의미보다도 태어난 날에 대한 감사이겠지요.
내일은 벗 님들께 가을 초대장을 보내겠습니다. 글에서만 만났던 벗 님들을 이제는 만나보고 싶습니다. 손도 잡아보고, 글이 아니라 얼굴도장을 찍고 싶습니다.
만나게 될 우리는 짧은 만남 가운데 아무것도 물어볼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것처럼 그냥 얼굴만 마주보고 바라만봐도 괜찮습니다. 주름살이 많으면 어떻습니까. 머리가 희끗희끗.../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습니까.
사이버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 이웃에게 말하는 언어로 말하고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안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천사들이 머무는 곳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하하, 이렇게 많으냐구요...? 아니요. 더 많습니다. 고향처럼 느끼는 영세받은 성당하며, 성가대였던 형제자매들이 열어놓은 카페도 있습니다.
또 지금은 조회수가 0 이지만 먼훗날 출소해서 읽게 하려고 올려놓는 [해바라기선교회] 카페도 있습니다... 카페 정문에 걸어놓은 오늘 야곱이 음악을 주십사 청했을 때 선물로 준다는 [기도향기방]도 있습니다.
내가 사이버 안에서 받은 상처들로 힘들어 할 때에... 몸을 낮추어 머물던, 68명의 회원이었던 [예뜰마당]도 있습니다. 예뜰의 주인장 안젤라 님은 안나가 야곱이 물동이 던지고 직장에 들어갔을 때에 계속 이어서 날라다 주신 분이십니다. 저는 한 달동안 그분의 도우미였지요. 9월 1일 부터는 안젤라님이 계속 길어 올릴 것입니다.
음악으로 치유함을 받았던 [어둠 속에 갇힌 불꽃]카페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댓글을 달아주었던 [천주교를 사랑하는 분들], 형님처럼 사랑이 많은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카페,
오라버니 처럼 삶의 한 모퉁이를 같이 걸어가는 [가톨릭동호회]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항기)]카페,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었던 [호스피스 사랑방]카페.
5만명도 넘는 회원이 있지만, 성령의 말씀방은 작디 작은 [너에게 편지를] 카페하며, 성모님 사랑이 가득한 [울엄마]카페, 길벗들이 함께 산책하는 [평화의 길]카페 또한 빼놓을 수 없지요.
[사랑과 평화 가톨릭 마을]카페 주인장은 메쥬고레 성모님 성화랑 네잎 클로버를 이 멀리까지 보내주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간단하지만 행하기는 넘 어려운 일입니다. 이쁜 아지매가 안나를 기다리면서 개인적인 E-mail을 보내주었지요.
조금은 무대가 넓었다고 생각하는 가톨릭인터넷 굳뉴스에 우리들의 묵상방은 무덥던 이 여름이 더 더웠을 것입니다. ((*^_ _ _^*)) 이곳저곳 돌아보니 가톨릭 신자들인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곳이 많았습니다. 저는 렉시오디비나 묵상법으로 성서의 말씀을 나누는 곳에 가입했습니다.
안나는 말입니다... 사람의 인연처럼 글에도 인연이 있고, 전혀 안보이는 사이버공간 이지만 서로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스쳐갈 수뿐이 없는 만남이 또한 사이버 만남임을 압니다. 그래서 '만남은 은총이요 축복' 이라고 외칠 구호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좋은 글들이 넘넘 많습니다. 안나처럼 이렇게 수다스러븐 아지매의 글도 있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글들이 늘 양식이 되어주는 인터넷 공간입니다.
태평양보다도 더 넓은 인터넷 바다에서 모든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 몇 사람을 위해서일지라도 홀라당 옷을 벗겨내려가며 부끄럼도 잊은체 삶의 긴 여정을 써내려간 2004년의 8월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루가 5,25-26] 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여《"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하고 말하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제는 사랑한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이 말은 보이는 곳뿐 아니라 그의 내면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사랑한다는 말이겠지요. ☎ 천사들이 모여 사는 주소들입니다. ☎ 이곳중에 어느 곳을 찾아가셔서....벗 님들의 이야기를 해보세요. 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들이 살고있거든요. 혹, 삶의 한 켠을 올리셨다면 E-mail로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찾아가서 이제는 안나가 들어드릴께요. 카페 이름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bulkot
카페 이름 : 평화의 길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peacefulway
카페 이름 : 울엄마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thflakdmf
카페 이름 :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ra8el
카페 이름 : 예뜰마당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angellee5030
카페 이름 : 호스피스 사랑방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hospice4u
카페 이름 : 고향으로 (그리스도의 향기)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awg
카페 이름 : 천주교를 사랑하는 분들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cjk
카페 이름 : 가톨릭동호회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catholic
카페 이름 : 너에게 편지를 카페 주소 : http://cafe.daum.net/spdprprvuslfmf
가톨릭 인터넷 굳뉴스에 [우리들의 묵상]방입니다. http://www.catholic.or.kr
어느 곳도 벗 님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이트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바람이 있다면 가는 곳곳마다 음악방을 들어가셔서 우리 영혼을 따닷하게 녹여주는 음악들을 많이 만나십시오. 음악도 성서만큼이나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도 역시 못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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