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묵상 노트 - 덤 1권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01 조회수1,506 추천수5 반대(0) 신고

- 강의 : 유광수(야고보)신부 -   

* 1980년 성 바오로 수도회 사제로 서품 * 로마 그레고리안 영성신학 대학원 수료 영성신학 신학원에서 "수도 생활 신학"교수 역임 * 성바오로 수도회 수련장및 준관구장 역임 * 1999년 말씀학교 설립 * 현재 말씀학교 책임자및 성 바오로 수도회 준관구장
* 저서: 『와서 말씀을 들어라』『하늘을 향한 땅의 소리』 『유광수 신부의 마가복음 묵상1 - 다가오시는 예수』 †. †. ♣ 렉시오 디비나[Legtio Divina]를 왜 하나? ♣ 렉시오 디비나 (Lectio Divina)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유럽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어져 있고 보편화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잔잔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활용되어져가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서서히 베네딕도의 고유한 묵상방법이 서서히 평신도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다섯 강의에 걸쳐서 LD(렉시오 디비나)에 대해서 강의를 하는데
1.왜 LD를 해야되는지...입문강의를 할 것이며 2.두번에 걸쳐서 어떻게 해나가는 것인지 단계로 나눌것이며 3.실제로 본문을 놓고 이론과 실기를 겸한 강의를 할 것이며 4.5회째는 종합해서 LD에 관해서 결론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바람이 있다면, 신앙인으로서 간절히 원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갈망이기도 합니다.
왜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가? 우리들이 하느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그리워하듯이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그리워합니다.
★ 하느님을 만나고싶은 갈망이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고향이십니다. 돌아갈 수 있는 곳. 피난처이기시에 안식처이시기에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쉬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갈망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무한한 욕망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요 하느님을 만나야만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우리의 갈망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만날때만이 이 갈망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 어떤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채워지니 만족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이 있는데 어디서 만납니까? 만나고 싶은데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이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최초에 하느님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지냈을 때 인간은 행복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쫒겨난 인간은 엄마품에 있던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 그리워하듯 늘 하느님을 찾습니다. (원죄 이후 인간의 모습입니다.)
성 아우그스티노의 신학에서는
★원죄 이후의 세 가지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어디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이다. 2. 잘못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 탐욕 3. 비록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나약함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디가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지,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알아야겠습니다.오늘도 아침부터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 이곳 저곳을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알면서도, 복음을 읽고서도,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함 그리고 자꾸 주저 앉는 나약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읽어야 하고 바로 성서를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곳에 하느님이 계시니까, 그곳에 행복이 있으 니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다른데 가지 말고 성서로 말씀으로 복음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를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다른데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첫째 성서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것도 굉장한 깨달음입니다. 사회의 똑똑한 사람도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깨달은 것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굉장히 성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성서가 뭔가 좀더 많이, 좀더 깊이 알면 좋겠습니다. [시편 40,7] 엎드려 아뢰었사옵니다."제가 대령하였습니다." 나를 들어 두루마리에 적어 두신 것, 당신 뜻을 따르라시는 것인 줄 아옵니다. `나를 들어`라 함은 나에 대해서 성서에 쓰여져 있기를... 나를 위해서 쓰여져 있기를...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에 대해서. 나를 위해 적혀 있기를. 나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와 다른 책과 다른 점입니다.
내가 나에 대해서 모르는데 나에 대해서 쓰여져 있는 책이라해도 나에 대해서 올바로 쓴 것이 아닙니다.
성서는 바로 나를 위해 쓰여져 있음에 나의 생각, 신념, 마음을 갖고 대하여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인데 나를 위해서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 대해서 알려면 성서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쓰신 분이신데 다시 말해서 발신인인데 하느님이 누구에게 보내셨습니까. 수신인이 바로 나 입니다. 나에게 보낸 하느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낸 하느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나에 대해서 쓴 편지이기 때문에 내가 읽어봐야만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낸 편지는 그 사람이 읽어봐야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수신인이라면 "나"에 대해서 적혀있는 것을 "나"가 읽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서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깨달음입니다. 이 강의를 듣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를 위해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내가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분만이 나를 알기 때문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그분만이 나를 아시기에 나를 위해서 적어놓은 성서를 봐야만이 나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나에 대해서 적어놓으실 수 있습니다.
두번째, 하느님은 써놓고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답장을 기다리십니다.
군대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놓고, 혹은 외국에 나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놓고 답장을 기다립니까. 하루종일, 언제나, 늘...기다릴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보낸 편지라면 하느님이 기다리시니까 답장을 써야합니다. 하느님은 기다리시는데 한 번도 읽어보지 않고 어떻게 응답을 드릴 수 있습니까.
읽어보지 않으니 답장을 보낼 일이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해질 수 있겠습니까.
사랑의 편지가 오고가야만이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 소식을 말씀 드려야만 되고, 내 안부를 드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서의 주제 즉 내용은 내 자신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록되어 있는 것이 나를 위해서 썼으니까 내가 소재이며 내가 주인공인것입니다. 바로 내 자신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의 주인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면 창세기에서 부터 묵시록까지 나의 역사가 있습니다.
나의 창조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멀어졌는지 어떻게 부르셨는지 어디로 가야되는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는데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겠습니까. 나의 과거와 그리고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할른지, 그리고 미래. 앞으로 어디로 가야되는지 어떻게 생활해야 되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이 나의 삶이요, 모세의 소명이 나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나"를 아는 것이고 하느님이 나에게 말씀하심을 듣게 됩니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하느님께 응답해야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은 없지만 성서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행동이, 말씀이 곧 나의 모습이요,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역사이기에....
네번째,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눈높이에 맞춰서 말씀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언어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나랑 무관한 말씀이 아니라, 내가 알아 듣게 하기 위해서 눈높이에 맞춰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해주시기 위해서 무척 노력하셨습니다. [히브리서 3,15] 성서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라."
[시편 95,7-8] 그는 우리의 하느님,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 이끄시는 양떼, 오늘 너희는 그의 말씀을 듣게 되리니
"므리바에서, 그 날 마싸 광야에서의 너희 선조들처럼,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굳히지 말아라. 읽어도 되고 안읽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를 나를 위해 쓰여진 이 성서를 알아듣도록 정성을 기울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성서를 통해서 나를 알아야 되기 때문에 말씀을 알아들어야 되겠습니다. 올바로 응답을 드리기 위해서는 올바로 알아들을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감히 이 조그마한 피조물인 나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인데 이를 무시해 버린다면 상대방에 대한 실례이고 모독이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마리아처럼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그러한 마음으로 성서를 매일 읽고 묵상하고 먹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나를 알게 될 것이고 하느님의 법을 알게되니 기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1,1-18]에는 인간이 어둠 속에 헤메고 있는 원인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빛이 어둠속에서 비추고 있지만 알아보지 못하였고 당신 땅에 오셨지만 백성은 맞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늘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생명이신 그분께 나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잘 알아들으려면 맞갖은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Lectio (독서) / Divina (거룩한) 한국말로 번역된 것으로는 성독 혹은 거룩한 독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각국 나라 언어로 번역하지 않고 보통 렉시오 디비나라는 고유명사로 사용합니다.
Divina(거룩한)는 형용사로서 Lectio(독서)를 꾸며주는 단어로 신적인 독서,하느님의 독서, 신성한 독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독서는 독서인데 신적인 독서입니다. 인간의 독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카리스마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읽는 독서입니다. 그래야만이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 독서는 인간의 지성만으로 해서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세계가,하느님의 역사가, 하느님의 능력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촛점은 하느님을 만나고 알아듣기 위해서 하는 독서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과 함께, 성령의 은총 안에서 합니다.
하느님의 독서니까 내가 하느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도 아니며 재미도 아닌것입니다.
독서의 이유가
하느님이 나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은총으로 알아듣기 위해서, 나 혼자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데로 하는 독서입니다. [요한 14,26]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는 말씀은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만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성서적 근거입니다. [루가 24,32] 그들은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하고 서로 말하였다. 마음을 열어주시는 분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진리를 알아듣게 이끌어 주시는 일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의 은총을 입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독서는 인간적 독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히 알아 들을수가 없습니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성령의 도움이있어야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 라는 단어 안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아 듣는다 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되는데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를 충실히 한다면 바로 성서 안에서 늘 내 곁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만날 수 있습니다. 늘 나에게 말씀하셨지만 내가 듣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것입니다.
우리의 온 정성, 온 힘을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령께서 이끌어 주시는데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읽으려고 하면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 이것이 렉시오 디비나의 목적이며 촛점입니다.
물론 렉시오 디비나의 묵상법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느끼고 해 온 방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5월에 깜짝직장을 퇴직하고 나서 그 후유증을 앓을 때 노트 정리하면서 마음을 다스렸지요.
하하, 왠? 깜짝직장이냐구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1$ (달라)를 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쥐, 인력낭비가 없는 미국 회사의 냉정함에 깜짝↗ 놀랐거든요.^^ 그리고 안나가 그렇게 짧게뿐이 근무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몬했지여~
가을이를 앞두고 벗 님들께 선물로 드리게 될 줄이야....*^^* 한 달 여정을 되돌아보니 모두가 주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이 불경기에 남편네 회사가 갑자기 바빠져서 일찍 출근하는 날이 많았던 것이며, 울엄니는 비디오에 푹 빠지셔서 저를 찾는 일이 드물으셨던것이며,...
안나는 하느님 말씀에 푹 빠져서 지난 몇일 간 무더위 40 C`를 더운지도 모르고 벗 들의 사랑 그득히 받고 있을 때! 골프 인생 10년 차인 제 옆지기가 드뎌 홀인원을 했구먼유~ ^&^
안나는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은 안나의 일을...해주셨어요. 그에게 큰 기쁨인 것은 저에게도 큰 기쁨이니까여... 제가 날마다 무엇인가를 띠디닥 또디닥 치면서 야곱의 우물을 나르고 있는지는 알지만여...
이렇게 진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요. 아기 신자라서...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지만, 앗!나는 그저 밥데기/..엄니 모시고 이 땅에서는 그의 천사(?)로 살아가 는 약간은 멍청한듯, 바보인듯 그런..아지매로 살아갈랍니다.^^
제가 몸살 날까봐...그것만 걱정하는 애처가인 남편에게!
안나가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하느님은 안나의 일을 또 한가지 해주셨습니다.애타게 기다리던 영주권이 곧 도착된다고 이민국에서 친절하게도(?) 편지까지 보내주었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수고를 나와 함께 하시는 아빠 아버지께!!드립니다. 주님! 찬미 받으소서! 주님! 영광 받으소서!!
부디 바람이 있다면 벗 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저 자신도 렉시오디비나와 함께 성서를 묵상하도록 할 것입니다.
인터넷 안에 좋은 글들이 많습니다.어느 글을 열어도 감동입니다. 그 좋은 글들로 자신의 삶을 한 켠에 나누면서 짧은 멘트라도 붙여서 올린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갈라디아서 6,10] 그러므로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합시다. 믿는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아멘] 우리가 수고하는 모든 손길들이 그 분의 사랑안에서 열매맺기를... 더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 하느님의 평화를 간절히 빕니다.†
끝까지 못말리는 푼수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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