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묵상 노트 - 덤 3권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01 조회수1,510 추천수5 반대(0) 신고


★ 렉시오 디비나 <심화과정> ★
[루가10,38-42]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 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마르타,마르타,너는 많은 일에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주님! 마리아가 택한 참 좋은 몫을 우리도 택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무엇이 가장 좋은 몫인지 실상 필요한 것 한가지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오늘 이 시간을 축복 해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유 신부님 기도) 렉시오 디비나 복음 묵상법에 관한 지난 두 강의를 통해서 감은 잡히십니까! 오늘까지 강의를 들으면 렉시오 디비나는 이런 것이구나... 복음 묵상법을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제 3 단계: 기도(Oratio) 첫째 단계에서 렉시오를 통해서 본문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들을 수집하고 둘째 단계에서 본문 안에서 보물을 찾고,되새김하고, 생활을 반성하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러면 내 안에서 외침이 터져나오게 되지요. 이 때가 바로 기도하는 때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외침이 있고 느낌이 있습니다. 자연히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그 전에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까마득한 기억이 나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든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주체할 수 없는 함성과 외침이 터져나오게 됩니다.그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란 무엇입니까!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음에서 부터 외침이 우러나올때 그 때가 기도하는 때입니다. ※ 기도는 하느님이 내 마음을 건드려 주셨기에 하느님께 응답을 드리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다.
※ 기도(Oratio)는 마음의 외침에서부터 시작될 때 진실한 나의 기도가 된다.
기도하자! 하고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됩니까. 기도문을 써서 기도하면 기도가 됩니까. 진실한 기도는 모두들 어려워들합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해도 마음에 느낌없이 입으로만 하기 때문인것은 기도문에 적혀있는 남의 것을 읽기 때문입니다. 묵상을 한 사람은 자연스레 마음 속에서 기도가 나옵니다. 정말 나의 기도, 내 진실한 기도를 바치려면 묵상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 기도를 구분한다면..
(1). 참회기도 [2사무12,1-15]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청함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까마득했던,잊어버렸던 기억인 자신의 불륜의 행위를 하느님께 고백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내가 잘못한 내 죄의 실상이 드러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통회의 기도가 나옵니다.'주여! 제 탓이었습니다',내 교만이었음을, 내 욕심에서 나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묵상을 하지 않을때는 내가 잘난것 같았는데 상대방이 잘못한 것 같았는데...
말로써의 통회의 기도뿐 아니라 통곡하면서 바칠 수 있습니다. 안에 쌓여있던 더러운 것들이, 전혀 생각치 못했던 상처들이 복받쳐오르는 통회의 눈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성인들은 매일 매일 통회의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묵상하다보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2). 청원기도 내가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전능과 은혜를 체험하면 내 존재가 보잘것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앞에 무릎 꿇고 도움을 청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주님께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아빠~~~!라고 말씀드리듯이. (3). 찬미, 감사의 기도 하느님이 내 안에서 이루신 놀라운 역사와 자비를 체험하게 될 때 저절로 나온다.대표적인 예가 성모님의 마니피캇이다. 나도 내 안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하느님의 업적을 바라보게 된다면 마리아의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나이다'라듯이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그때 나오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찬미의 기도입니다.
시편 맨 마지막에 보면 [시편 150,6] 숨쉬는 모든 것들아, 야훼를 찬미하여라.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지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업적을 다시 보게되면 찬미,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자연스럽게 이런 찬미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성 예로니모는 우리가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말씀을 읽을때는 신랑이신 하느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고, 내가 기도 할 때는 신부인 내가 신랑인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그러한 연인의 속삭임, 거짓이 없는 사랑의 속삭임을 하려면 마음의 진실함에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따른 응답을 할때만이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진실한 기도를 하게 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 4 단계: 관상(Comtemplatio)-꼰뗌뿔라시오
묵상을 통해 이르게 되는 최고의 단계로 지상 세계와 하느님의 세계를 동시에 넘나든다.
관상의 정의는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나와있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신비의 세계와 같은 관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관상을 말합니다. 렉시오 디비나 묵상법을 통해서 사다리처럼 한 단계씩 올라 하느님께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Cum(함께) + templum(성전))= 꿈+템뿔룸이란 합성어는 성전안에 머무는 것,성전안에 생활하는 것,성전안에 현존하는 것, 성전안에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성전이란 둥근 지붕을 연상하게 됩니다. 상징적인것으로 하늘을 이야기하는 것인데,단순한 하늘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다 포함 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뿐 아니라 이 세상 넘어인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세계 (하느님의 세계를 포함하는 하느님의 나라, 초월적인 세계)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관상 상태에 있다는 것은 하느님의 세계까지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하느님의 세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뛰어 넘는 것입니다.온 세계를 덮는 성전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 2,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성전이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르킵니다. ※ 관상이란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요한1,50-51]은 관상의 세계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요한1,50-51] 예수께서는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하시고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하늘이 열려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란 단순히 이 세상만이 초월하는 세계, 훨씬 넘어서는 세계를 말합니다. ※ 관상하는 삶의 사람은 더욱더 마음이 넓어지고 시야가 열리어 개방된 마음을 갖는다. 이 지상의 것을 포함할 뿐 아니라 저 넘어의 세계까지 보고 판단 하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관상한다는 상태는 그냥 혼자서 조용히 침묵 세계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역동적이며 훨씬 활동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정신세계가 굉장한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커집니다. 높나듭니다. 관상적인 삶은 관상적이지 않은 삶과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속에서도 파란색이면 파란것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하느님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 관상하는 삶의 사람은 이 지상에 살면서 절대로 고통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하느님께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당한다해도 좌절하지 않고 그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세계를 봅니다. 절망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끌어안습니다. 하느님의 세계를 바라보며 그 이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마음을 점점 닮아갑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들끓어오릅니다. 모든 것을 보면서도 그냥 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의 손길을,하느님의 현존을 봅니다.
바로 그곳에서 관상하지 않는 사람은 볼 수도 없는 것을 봅니다. 관상하지 않는 사람은 절망하고 괴로워하며 고통 중에서 헤어나지 못하나 관상하는 사람은 절망과 고통중에도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남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보기 때문에 삶이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의 것으로만 살지 않고 천상의 것과 어울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관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제 5단계: 위로(Consolatio)-꼰솔라시오 관상의 결과로 주어지는 열매이다. 제 4단계 까지가 보통 렉시오 디비나 복음 묵상법에서 말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서 오는 결과일뿐입니다.
관상에 이르면 모든 것 안에서 기쁨이 있습니다. 관상 단계에서 주어지는 열매들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로마서 8,31-39]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의 모습을 잘담고 있습니다. [로마서 8,31-39] 그러니 이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소하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죄를 선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단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우리의 처지는, "우리는 종일토록 당신을 위하여 죽어 갑니다. 도살당할 양처럼 천대받습니다."라는 성서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 남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관상 상태에 들어간 사람은 이렇게 바오로 사도처럼 외칠 수 있습니다. 제 6단계: 식별 (Discretio)-띠스끄레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는 지혜이다.
이것도 자연히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서 따라오는 단계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기쁘게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영적 식별을 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묵상하게 되면, 지혜를 알게되면,무장하게 되면 자연히 영적식별 능력을 갖게 되고 다른이에게 판단해 줄 수 있는 신앙 생활의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 식별입니다. 제 7단계: 결심 (Deliberatio) 뗄리뻬라시오
선택한 것을 행하여야겠다는 것은 내적 행동이다.
영적식별을 통해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고 알게 되었다면 구체적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
결심한다는 것은 선택한 것을 행하여야겠다는 내적 동의입니다.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렉시오 디비나를 알았으니 구체적으로 매번 굳은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 8단계: 행위 (Actio)- 악시오
내가 복음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실천하는 것이다. [마태오 7,21-23]에 잘 드러난다.
[마태오 7,21-23]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 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쫒아 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나에게서 물러가라.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복음 묵상의 결론은 내가 복음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자신이 복음화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관상 상태에 이른다해도 복음적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자신을 위한 방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참된 복음 묵상이 아닙니다.
복음적인 인간이 되는 것, 복음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복음의 정신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복음 묵상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8단계입니다. 어렵습니까! 꼭...이렇게 거쳐야 되나? 아닙니다. 순서대로 해야되나? 그렇지 않습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복음을 묵상하는 훈련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기본 방침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익숙하기 전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지요.익숙하게 되면 이런 단계들을 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니까 바로 묵상 할 수도 있고, 바로 관상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반복된 훈련을 하려면 적어도 매일 아침이나, 저녁에 30분이면 30분! 1시간이면 1시간을 순서에 의해서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십시오.
안되드라도 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다보면 하나씩 알아듣게 되고 또 하면서 배우고 응용하게 됩니다.
저도 렉시오 디비나를 설명한 책을 보면서 설명이 다 다르면서 또 같으니 나름대로 나의 방법을 짠 것입니다.
제가 해오고 있는 방법과 경험을 통해서 저 나름데로의 방법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의 방법을 익히고 찾아내십시오. ※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마태오 4,4]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하고 대답하셨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의 삶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어떤 방법이라도 될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이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전통적인 방법으로 이 방법에서 모두 변형되어 나왔기 때문에 거의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하는가? 왜 해야 하는가를 체계있께 한 단계씩 배우는 것입니다.
각자 그동안 해왔던 방법을 응용 보완을 한다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보충을 해서 완성 시켜나가면 우리의 삶이 빵으로 사는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인간, 영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 세삿에 살가가며 힘을 얻고 거기서 빛을 얻고 그렇게해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실망하지 않으며 좌절하지 않으며 잘못된 기로 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어 목적지를 향해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 결국 말씀을 묵상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무엇인가?
하느님의 자녀가 도달해야 하는 단계 갈라디아서 2,20절의 말씀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내 안에 산다고 고백 할 수 있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이제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영적인 사람들이,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되는 단계는, 도달해야 할 목표는,가장 올라가야 하는 단계로 노력을 해서 또 훈련을 해서 ...
이제는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 내 안에 산다고 외치는 상태가 되어야합니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어쩌면 한 번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러한 말을 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릅니다.노력하지 않으면 이런 단계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런 단계에 오를려면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노력하고 말씀을 받아 들이고 묵상하고 살아 가노라면 작은 겨자씨와 같은 말씀이 내 안에서 30배,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내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작은 겨자씨와 같은 말씀이 공중에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로 자란다는 것은 내 영성적인 삶이 성숙되어진다는 것입니다.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뿌리신 말씀의 씨앗이 잘 잘라고 그것이 자랄 때 더불어서 나도 영성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내 안에서 자랄 수 있는 좋은 땅이 되려면 복음 묵상을 해야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이러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참 좋을 것이라고... 알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강의를 정리해본다면 독서→ 묵상→ 기도→ 관상→ 위로→ 식별→ 결심→ 행위
마치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하여 돌듯이 말씀이 내 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단계를 돌고 돌아야 되는 것입니다.죽은 말씀이 아니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빛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과정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핵심은 무엇이냐?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다면 이러한 과정을 할 수도 없고 역동적인 생활을 할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돌게하는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용광로에 열이 들어가면 달아오르듯이 내 안에 말씀이 들어가면 말씀을 담은 내 마음이 달아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으로 살아가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고,기쁘게 살고 싶고,
정말 활기 넘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면 나름데로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복음 묵상을 하면 좋겠다... 또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렉시오 디비나 묵상법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 부족하지만 나름데로 8단계로 나눠서 여러분 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가톨릭의 영성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말씀이 빠지면 기도도 죽고, 전례도 죽고, 활동도 죽습니다. 말씀이 들어가야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게 되며 그때부터는 역동적이 힘이 내 안에서부터 벅차 오르고 그 힘이, 그 기쁨이, 하느님의 힘이 나를 휘어잡습니다.
아무튼 복음 묵상에 관심을 갖고 훈련을 쌓다보면 터득하게 되고 익숙하게 되어 응용할 수 있는 묘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여라! 이 말씀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통해서 찬미 받으시기 바랍니다. 복음 묵상에 관심을 갖고 해주 시기를 바랍니다.
긴긴 내용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강의 :유광수(야고보)신부 -
* 1980년 성 바오로 수도회 사제로 서품 * 로마 그레고리안 영성신학 대학원 수료 영성신학 신학원에서 "수도 생활 신학"교수 역임 * 성바오로 수도회 수련장및 준관구장 역임 * 1999년 말씀학교 설립 * 현재 말씀학교 책임자및 성 바오로 수도회 준관구장
* 저서: 『와서 말씀을 들어라』『하늘을 향한 땅의 소리』 『유광수 신부의 마가복음 묵상1 - 다가오시는 예수』
벗 님들을 늘~잊지못하는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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