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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 신앙과 인생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03 조회수1,214 추천수6 반대(0) 신고

제가 아까 올렸던 (신앙과 인생) 이란 글이 그만 제 실수로 삭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셨던 많은 분들께, 추천해주셨던 분들께도 꼬리글 달아주셨던 분들께도 너무 죄송하단 말씀 올립니다. 꼬리글 답변을 하다 잘못되어 그걸 지우고 다시 쓴다는게 본 게시물이 그만 삭제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컴퓨터가 서툰게 원인이죠. (200)이 넘는 조회숫자가 몽땅 날라가 버렸네요.

아이고 ! 아까워라! 그 순간 그만 엉엉..... 땅을 치며 울고 싶었답니다.

다시 올리겠습니다.

 

          (신앙과 인생)

종교란 무엇인가?

모태신앙이나 아주 어릴때부터 종교적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 아니고 뒤늦게 찾은 신앙인이라면 자신이 가진 작금의 신앙에 대해서 한두 번쯤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도 우여곡절 끝에 천주교에 입문하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종교에 대해서 지극히 배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성격이 너무 이성적이어서 과학적인 사실외엔 믿지 않았고, 논리적이어서 쉽사리 종교에 빠져들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릇 종교란 어느정도의 모순과 불합리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친구따라 강남가듯 종교를 선택하며 일종의 친교의 장으로, 사교의 장 정도로 종교를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랬던 내가 왜 스스로 종교를 찾게 되었는가?

그것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은 자기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것, 전혀 예기치않은 일이 뒷통수를 친다는 걸 한참 나이 들어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종교의 필요성을 느꼈고 종교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찾게 되었습니다. 절실하게 위로받기를 원하던 내마음은 하느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믿음의 밭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신앙의 불모지에 그 뿌리를  내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적엔 매달리고 그 고비가 지나가면 멀어지고 다시 매달리고 멀어지고 수없이 반복되는 기복신앙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앞에 앉아 있는 자신이 낯설고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내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수시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어느날부터 그 불안한 자리마저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적 기쁨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핑계로 주님 곁에서 영영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식이 위험한 상황에서 수술받게 되었을 때 심장이 오그라드는 절망과 초조속에서 나는 6년간 잊고 살았던 주님께 성모님께 매달리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주님께선 분명 은총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전에도 여러번의 은총을 받았음에도 그것을 은총으로 느끼지 못하고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렸다는 걸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난 주님과 성모님께 약속했던 대로 주님 앞에 돌아왔습니다.

세상을 떠돌며 헤메이다 돌아온 탕자처럼.......

첫번째 보던 미사에서도, 두 번째 보던 미사에서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낯설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일년반이 지난후에 나는 견진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영세받은지 십년만에 받는 견진성사였습니다.

주교님께서 '카타리나는 특은을 받으시오.' 하시며 이마에 성유를 바르는 순간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며 입술은 경련을 일으키고 정신이 아득해져 '아멘'이란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보좌신부님이 (아멘,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을 온전하게 마음속에 받아들인 감격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어릴적 십대의 사춘기 때 옆자리의 짝꿍과 지나가는 말로 난 이담에  커서 수녀가 될거야 했던 기억도,

이십대가 되어 그때 생각을 했지만 쥐꼬리만큼 알고 있던 성서지식에 공감할 수 없어 잊어야했던 기억도,

철학책에서 읽은  "종교를 이성으로 분석하지 말라, 그러면 거기엔 모순과 불합리 뿐이다. 역설에 불과할 뿐이다.무조건 믿는것 만이 신앙이다." 라는 말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던 것도,

현실에 불만하고 반항하는 니힐니스트보다는 신(종교)에 귀의해서라도 행복을 붙드는게 현명하다는 어떤 사람이 해 준 충고의 말도,

그 모든 기억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한 알의 씨앗으로 던져져 단지 발아하지 못했을 뿐, 수십년간 가슴 속에 마음속에 묻혀있다가 그제서야 비로소 싹을 틔운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은총으로 받아 들입니다.

고통마저도...

대장간의 쇠가 여러차례의 담금질을 통해 점점 더 강한 쇠붙이가 되듯이 우리가 겪는 고통들도 신앙의 담금질이 되어 믿음을 더 강하고 깊게 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나는 신앙을 이성으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의 순명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편안하고 평화롭고 기쁨인가를 깨달으며 맛보는 삶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돌아왔는지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어떤이의 충고의 말씀도 철학자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일은 사필귀정,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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