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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예수께는 불리하나 우리에겐 유리하니...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05 조회수1,271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6일 (월) -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6,6-11

<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마침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한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그를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었다. 8)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셈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 서라.” 하셨다. 그가 일어나 가운데로 나서자 9)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10) 이렇게 물으시며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 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 하셨다. 그가 손을 펴자 그 손이 이전처럼 성하게 되었다. 11) 그들은 잔뜩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


[복음산책]  예수께는 불리하나 우리에겐 유리하니...


  앞서간 복음들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공생활이 본격화되고 예수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수록 예수와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은 갈수록 그 골이 깊어간다. 지금까지 루가복음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하면서 죄의 용서를 먼저 운운한 일(5,20), 예수의 제자들이 나름대로의 종교적 집단을 구성하고 있으면서 전통적인 단식과 기도를 소홀히 한다는 일(5,33), 안식일에 예수의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 비벼먹은 일(6,1)로 안식일 규정을 범한 것 등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격렬할수록 손해를 보는 측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논쟁을 피하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맞으신다. 왜 그러실까? 답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논쟁이 격렬해질수록 우리가 얻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와 그의 아버지 하느님에 관한 진면목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유대교와의 격렬한 논쟁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나아가 야훼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더욱 명확히 공부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다.”(6.5)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바로 천지창조의 완성과 안식과 축복의 날인 제7일(창세 2,1-3)의 주인이시라니 이 얼마나 통쾌한 말씀인가 말이다.


  오늘 복음은 또 다른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병자를 치유하는 일을 놓고 예수와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논쟁을 전해준다. 루가는 이 대목을 마르코복음에서 베끼면서 약간의 내용만 수정하였다.(마르 3,1-6; 마태 12,9-14)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예수 앞에 오른손이 오그라들어 먹고 사는 데 많은 불편을 가진 병자가 있었던 것이다. 복음서들은 모두 율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론 회당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행동을 예의주시함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안식일에 대한 엿보는 무리들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이 크게 대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그분은 하늘이 무너져도 병자를 고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일단 병자를 회중 가운데 세우고 질문을 던지신다. 이 질문은 사뭇 흥미롭게 들린다.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9절) 두말할 것 없이 착한 일을 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답이다. 여기에 무슨 잔소리가 필요한가. 그런데 더 흥미롭고 한편 부끄러운 일은 율법을 꿰뚫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잔뜩 화가 나서 예수를 어떻게 하려고 의논했다는 것이다.(11절)


  이미 예수께서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선포하셨다.(5절) 오늘은 안식일의 핵심정신을 다시 한번 밝혀주신다. 착한 일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창세 2,2-3; 출애 20,8-11)과 할례를 받는 일(창세 17,10-11)은 야훼께 대한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신앙행위의 지침들이다. 동시에 이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신앙심을 저울질하는 종교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안식일 법을 지킨다는 것은 이 날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는 것을 이 날에 금지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예수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질문은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다. 혹자는 예수께서 굳이 안식일 법을 어기지 말고, 안식일을 피해 다른 날을 택하여 좋은 일을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루가 13,14 참조) 그러나 꼭 알아두어야 할 점은 예수께 있어서 내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과 ‘여기’외에 다른 것은 없다. 오늘이 안식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좋은 일을 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에 모든 일에게 손을 떼고 쉬셨다(창세 1,2)고 해서 이렛날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는 날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 날은 창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날이기에 거룩한 날이고 다른 날보다 복(福)이 많은 날이다. 이 날이 유다인들에게는 토요일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主日)이다. 따라서 이 날은 죽은 무행(無行)의 날이 아니라 살아있는 행위(行爲)의 날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사명의 핵심이 바로 세상에 ‘생명을 주는 일’, ‘사람을 살리는 일’에 있지 않는가? 이들 일은 안식일에 더욱 더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생명만 챙기고 나만 살자고 하는 행위는 안식일의 정신에 크게 어긋남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오늘 행위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불리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죽임을 당할 것을 내다 보시면서도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시는 뜻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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