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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4) 미움을 사랑으로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09 조회수1,252 추천수3 반대(0) 신고

박상대 신부님의 [(복음산책)황금률을 뛰어넘어]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복음말씀을 읽고 새삼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중학교 다닐때의 기억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바로 그 한마디를 처음 접하고 나서 성서를 전혀 모르던 철없던 시절의 부정적이었었던 기억입니다.

마침 그 무렵 읽었던 (꺼삐딴 리)의 작가 전광용선생의 소설도 함께 생각나는 기억입니다.

 

일제시대 어느 중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소설속에 나옵니다.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 학생 두 명을 불러내어 벌을 주는데 서로의 뺨을 때리는 벌이었습니다. 두 학생은 절친한 사이여서 차마 때릴수가 없어 망설이는데 두사람 사이를 잘 알고 있는 잔인하고도 교활한 일인교사는 추상같이 몰아부칩니다.

두 사람은 처음엔 살짝살짝 때립니다. 교사는 힘껏 때리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런데 때리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그들은 서로가 상대방이 자기보다 세게 때렸다는 느낌이 들면서 불쾌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불쾌감은 배신감으로 이어지고 점점 감정이 격앙되면서 나중엔 죽을 힘을 다해  서로의 뺨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물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한쪽 뺨을 맞고서 다른쪽 뺨까지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난 오랜동안 성서의 말씀이 온당치 못한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먹어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언제나 먼저 한 번씩 상대방의 입장에서 매사를 생각하게 되면 웬만한 일은 아! 그럴수도 있겠다는 이해와 아량이 생기고 외골수의 편견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천국에 가고 구원받고 그런 것들은 이차적인 문제인것 같습니다.

우선은 삶안에서 인간이 변화되고 정화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일차적으로 더 중요할것 같습니다.

그럴때마다 십자가에 매달려 처참한 고통속에서도 저들을 용서해 달리고,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죄인들을 위해 애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며 실천할때 구원은 자연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부족한 인간이기에 수시로 미운 사람도 생기고 화나는 일도 생깁니다.

남을 미워하고 화를 내면 독약보다 더 독한 독소가 자기 몸에서 발생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남을 미워하면 그 미움의 감정에 빠져 자기자신은 그 이상으로 더 괴로울 것입니다. 오죽하면 홧병으로 죽었다는 말이 있을까요? 그만큼 남을 미워하면 그 미움이 독으로 변해 부메랑이 되어 자기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을 하면 몸에 활력이 생겨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엔돌핀이 돈다고 하지요?

비록 원수를 사랑까진 못하더라도, 한쪽 뺨을 맞고나서 다른쪽 뺨까지는 내놓지 못하더라도 , 그래도 미워하는 감정을 억제하고 상대편의 마음이 되어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자신도 그만큼 편해지지 않을까요? 

 

어느 방송 드라마에서 본부인이 남편의 젊은 여자에게 신장을 떼어주는 이야기를 보면서, 예전같았으면 시앗을 보면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데 무슨 가당치도 않은 일이냐고 흥분했을텐데 그게 이해가 되는 거였습니다.

어린 애가 딸린 그 젊은 여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한 사고의 전환이 가능했던건 바로 신앙으로 인해서였습니다. 신앙은 이래서 사람의 마음을 열리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이야말로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박상대 신부님의 복음에서 들려주는 말씀들.....

원수의 미움에는 친절로, 저주에는 축복으로, 박해에는 기도로 대하라는 말씀.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까지 내어주며 뺏긴 것을 돌려받으려 하지 말라는 말씀.

원수에 대한 사랑은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저변에 깔고 있다는 말씀들이 오늘 묵상의 과제로 떠오름을 느낍니다.

도저히 그렇게 다 행할 수는 없다해도 흉내라도 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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