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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의 묵상2
작성자권상룡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12 조회수1,092 추천수3 반대(0) 신고

나눔의 묵상2

 

예전에 십자가 길(성로신공)을 하다가 왜 예수님이 두번도 아닌 굳이 세번 넘어지셔야 하는지 나름대로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복음성서를 읽는 중에 성령님이 답을 주시더군요? 아마 베드로가 닭이 울기전에 세 번 부인을 한 일과 연관이 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요한 복음 끝자락에 가서는 세 번씩이나 '너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물음으로 확인하는 대목 있습니다.교리적으로는 삼위일체인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서 안에서 3이 갖는 숫자의 의미 때문이 아닐는지요? 예수님이 광야에서도 세 번의 유혹을 당하시는 것도 완전한 시험통과를 거쳤다는 의미와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하다가보면 환희의 신비중에 12살 때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 버리신지 사흘만에 되찾으셨다는 대목을 묵상하면서 왜 하필 하루나 이틀도 아닌 사흘이어야 할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아마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죽은지 사흘 후의 부활사건을 미리 암시하는 복선으로 설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가장 빨리 저술된 마르꼬 복음서에 없는 예수의 초년시절을 유대교의 모세의 삶과 연관시켜 서술하는 미드라쉬 기술방법으로 살을 덧붙인 것이 아닐는지요? 미드라쉬(midrash) 방법이란 새로운 인물이나 사건을 이야기할 때 옛날에 있었던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에 빗대어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마태 기자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이야기 중 히브리인 가정의 어린 아이들이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출애1:15)를 원용해 역사적으로 허구로 드러난 베들레헴에서 어린 아이가 죽임당했다는 기술을 하고 있다. (카톨릭 신학계에서도 인정-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 탄생연대가 헤롯 왕이 죽은 기원전4년 이전이고, 루가복음에 의하면 호구조사를 명한 구레뇨가 총독이 된 기원 6년 이후가 된다. 대략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적 신빙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모세가 애굽인을 죽이고 왕을 피해 미디안으로 피신하는 것과 같이(출애2:12) 예수님도 헤롯 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도록 설정하였다.

 

동방박사의 방문 이야기(마태2:1-12)는 이사야 60장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는 이야기에서, 별이 나타나는 이야기는 민수기 22-24장에서 마리아의 노래(루가1:46-55)는 사무엘상 2:1-20절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에서 아기를 밴 마리아가 아기를 밴 엘리사벳을 찾아가 복 중에 있는 두 아기를 이야기 한 것(루가1:39-45)은 에사오와 야곱을 밴 리브가의 복 중 아기들이 나중에 나뉘어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 강하리라는 이야기(창세25:19-26)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전체를 놓고 볼 때 상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어둠을 이기는 빛이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마태는 밤하늘을 비추는 별을 등장시키고 루가는 목자들을 두루 비추는 '주의 영광의 천사'를 등장시킨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왕으로 구성된 족보와 동방박사를 등장시키고, 루가는 예수님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위한 선지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와 목자를 끌여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루가복음에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본래 나사렛 사람으로서 호적조사때문에 베들레헴에 왔다고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반대로 그들이 본래 베들레헴 사람이라 했기 때문에 이집트로 피난 갔다가 돌아오면서 그들을 나사렛으로 이사를 시켜야만 했다.마태복음 저자는 그 당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구약을 읽을 때 히브리어 원문을 읽지 않고 기원전 200년경 70인역이라는 희랍어 번역판을 읽었고 거기에 따라 이사야11:1절을 완전히 오해한 데서 생긴 실수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나사렛 사람으로 오역)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는 구절 중 가지라는 말의 희랍어가 네제르(Nezer)인데 그것을 나사렛 사람(Nazarene)으로 잘못 읽었던 것이다.

 

예수때에는 나사렛이라는 마을이 있지도 않았다. 나사렛이라는 마을은 예수가 가고 8백여 년이 지난 다음에 생긴 마을이었다. 루가복음4장 29절에 보면" 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산위 벼랑까지 끌고가서 밀어 떨어뜨리려 하였다."라고 나사렛 지형을 잠깐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나사렛에 가보면 그 부근은 아주 낮고 완만한 언덕뿐이지 높은 언덕이나 낭떠러지 같은 곳이 없다. 그리스도교가 점점 확대되어 중세기에 와서는 많은 순례자가 생겼고, 순례자들은 예수가 태어난 곳을 가 보고 싶어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교회가 마을을 창조해내고 요셉이 목수였으니 목공소와 예수의 집을 짓게 되었다.

 

나사렛이라는 말은 나사렌(Nazarene 또는 Nazarite)이라는 특정한 사람들의 무리를 뜻한 것이지 지명 자체와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랍 사람들이 크리스천을 부를 때 나스라니(Nasrani)라고 한 것과 이슬람의 코란에 그리스도교를 나사라(Nasara) 또는 나자라(Nazara)라고 부르는 것은 히브리어 어원의 '나즈리 하-브릿(Nazrie ha-Brit)의 복수형 노즈림(Nozrim)에 근원을 둔 것이며 그 뜻은 '언약을 따르는 사람들'이라 한다.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면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구별하는 일이다. 4복음서는 예수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길 것을 목적으로 쓰여진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한 마디로 믿음을 위한 신앙고백서라는 것이다. 상당수의 신학자는 기독교의 역사적 비극 중 하나가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라 본다.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예수님의 믿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이런 저런 교리나 이론을 무조건 믿는 것보다는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올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제가 나름대로 한 묵상을 통해 터득하게 된 것과 알고 있는 범위에서 쓴 글이오니 완전한 내용이 아닐 수도 있답니다. 그래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올린 글이오니 부족하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면 더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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