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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오늘은 '큰' 십자성호를 긋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14 조회수1,292 추천수10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14일 (화) -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오늘의 복음]  요한 3,13-17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다.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복음산책]  오늘은 ‘큰’ 십자성호를 긋자.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 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상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십자가와 십자고상이다. 그래서 오늘은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와 성공회가 세상과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해방시키신 그리스도께서 매달려 돌아가신 십자가를 우러러 경축하는 날이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4세기경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335년 9월 13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님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고, 그 다음날인 14일에 그의 모친 헬레나 성녀가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 ‘성 십자가’를 무덤성당 안에 걸어 현양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경배하도록 한 데서 오늘 축일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덤성당은 곧 부활성당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무덤 안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나중에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성 십자가는 약탈당하게 되는데, 628년 동로마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이를 다시 찾아와 본래의 자리에 안치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추가되었다. 교황 세르지우스 1세(687-701)에 이르러 이 축일은 전체 교회가 기념하는 축일로 자리 잡게 된다.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걸맞게 전례복음은 요한사가의 ‘십자가 신학’을 잘 보여준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요한 3,1-21) 중에서 발췌된 내용이다. 니고데모의 호감에서 출발한 예수님과의 대화는 어느새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자기계시적(自己啓示的) 가르침으로 반전되었다. 이는 곧 요한복음사가의 편집의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 담겨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니고데모와 행한 대화의 연속으로 보기는 어렵다. 즉, 예수의 역사적 발설(發說)이라는 보다는 요한복음사가의 독자적 성찰의 결과로 후에 편집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간 일이 없으니(13절),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란 그 누구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은 지고(至高)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사람이 되셨고, 영광 중에 다시 높이 들려 올려진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심으로써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을 보여주신 까닭에 세상은 물과 영으로 다시금 태어나, 멸망을 피하고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받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느님께 불순종의 대가로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가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뱀을 본 사람은 치유를 받았다.(민수 21장) 여기서 구리뱀은 신약의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에 비유된다. 그러나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을 실제로 치유한 것은 뱀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이다. 바로 그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이제 십자가에 높이 달려 있는 것이다. 십자가 자체가 세상에 구원과 생명을 주기보다는 십자가에 높이 달려 못 박혀 돌아가신 사람의 아들, 즉 하느님 스스로가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16절) 이 말씀은 모든 복음서와 성서 말씀의 요약이며, 결론이다. 요한은 자신의 서간에서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1요한 4,9-16) 세상의 구원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게 되는 동기(動機)는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구원의 방법(方法)으로 하느님은 ‘외아들을 보내주시고’, 외아들을 세상에 보낸 목적(目的)은 곧,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자기 외아들까지 보내어 세상을 구원하려는 동기(動機: motivation)이다. 그 동기가 바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심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성 십자가’ 위에서 성취된 것이다. 한때는 노예나 흉악범을 처단하던 형틀 십자가! 십자가는 이제 우리 구원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은 왼손을 가슴에 얹고 오른손으로 이마에서 가슴으로 왼쪽 어께에서 오른쪽 어께로 ‘큰’ 십자성호를 그으며 십자가에 묻혀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자. 아멘.◆[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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