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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사랑과 용서의 등식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15 조회수1,499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16일 (목) -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성 고르넬리오 (?-253), 성 치프리아노 (200-258)

   

  제20대 로마교황 파비아노(236-250)가 순교의 월계관을 쓴 후, 정확히 14개월이 지난 251년 고르넬리오 신부가 교황의 계승권을 잇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이 시기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으로 박해가 끊이지 않았다. 동시에 교회 안에 불거진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한 번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뉘우치고 재차 입교를 원하는 경우, 이들을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사안이었다. 교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즉 가능한 수용과 엄격한 거부로 갈라졌다. 물론 이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313년 신앙의 자유를 얻고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된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었다.


  고르넬리오 교황 스스로가 당시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와 함께 가능한 수용의 입장을 고수하였다. 교황은 배교자들뿐 아니라 대죄를 지은 사람들도 고백성사의 은총을 받아 교회와 화해할 수 있다는 회유책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엄격한 거부의 입장을 편 쪽은 후일 로마의 주교가 된 노바시아노 신부와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교회가 배교의 죄와 그 밖의 대죄를 용서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교황의 태도가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선포되긴 하지만, 고르넬리오 교황은 갈로 황제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졌고, 253년 9월 14일 치비타베키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동료였던 치프리아노 주교는 수많은 박해를 견디어 내면서 자비와 확신으로 교구를 다스렸으며, 많은 신자들이 그의 성덕을 칭찬하였다. 치프리아노 주교는 258년 9월 14일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시기에 순교하였다. 그는 성서와 초기 교부들의 신학사상을 연구하여 많은 저서를 남겼다.


[오늘의 복음]  루가 7,36-50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36)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37)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38)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 맞추며 향유를 부어 드렸다. 39)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40) 그때에 예수께서는 “시몬아, 너에게 물어 볼 말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1)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은 “더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겠지요.” 하였다. 예수께서는 “옳은 생각이다.” 하시고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을 계속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아주었다. 45) 너는 내 얼굴에도 입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 맞추고 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라 주었다. 47) 잘 들어 두어라. 이 여자는 이토록 극진한 사랑을 보였으니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네 죄는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49) 그러자 예수와 한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인데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하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50) 그러나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복음산책]  사랑과 용서의 등식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피리를 불어도 곡을 하여도 호응하지 않는 장터놀이의 아이들로 치부(置簿)된 가운데, 그들 중의 하나인 시몬(40절)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다. 예수께서는 기꺼이 초대에 응하여 그의 집에 들어 초대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게 된다.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자리하여 먹고 마시며 어울리는 하느님 지혜는 오직 그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게 됨(35절)을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그분은 어떤 모양의 놀이든 기꺼이 응해주시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분이시다. 마태오, 마르코, 요한복음이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처음부터 예수님의 적대자로 등장시키는 반면, 루가는 그들에게도 예수님의 손길이 닿게 한다.


  루가복음에 등장하는 그들은 예수를 감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왔으며(루가 5,17), 갈릴래아 지방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반감을 가지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시비를 걸고, 고발할 기회를 찾으면서 예수의 일행을 따라다니고 있었다.(루가 5,21.30.33; 6,2.7.11) 비록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무시하고 세례를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으나, 루가복음의 예수님은 그들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께서 그들의 반감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거듭 말하지만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이 그 지혜를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해 자연히 드러날 것”(35절 참조)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 하느님의 지혜가 죄 많은 여인의 회개와 용서를 통하여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이 예수님을 존경했거나 그분을 모셔다가 따로 말씀을 듣기 위해 자기 집에 초대한 것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수를 고발할 또 다른 빌미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시몬이 손님을 초대해놓고 해야 할 세 가지 관습을 행하지 않았던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주인은 손님을 마중하여 어깨에 손을 얹고 평화를 기원하는 입맞춤을 하고, 먼지로 더러워진 발에 물을 부어 씻겨주어야 하며, 약간의 향료를 분향 하든가 향유 한 방울을 손님의 머리 위에 발라주어야 했다. 그런데 시몬은 이 모든 관습적 의례를 행하지 않았고, 반면에 갑자기, 그러나 의도적으로 나타난 ‘행실이 나쁜 죄 많은 여자’가 이를 대신 해버린 것이다.(44-46절)


  죄 많은 여인이 예수께 한 행위는 사랑의 행위였다. 여인이 보여준 사랑의 행위에 예수께서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셨다.(48절)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은 분명 하느님께 속한다. 예수께서는 물론이고 그분과 같은 식탁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49절) 그래서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0절)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네가 보인 사랑이 너의 죄를 용서하였다.”(47절 참조)는 말과도 같다. 결국 죄를 용서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 예수이시지만, 죄를 용서받은 사람이 용서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행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극진한 사랑을 보인 사람은 그만큼 많은 죄를 용서받은 것이고,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 중에는 스스로를 의인이라 생각하는 죄인이 있는가하면, 죄인이라 생각하는 의인도 있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직면하여,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은 예수가 자기를 위해 별로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고, 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은 예수의 죽음이 완전히 자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죄인이고,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죄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돌아가신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고, 동시에 예수께 엄청난 빚을 졌다. 우리 중에 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러데 이 빚마저 그분께서 다 탕감해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결국 사랑하는 것은 용서받는 것이며, 사랑하는 만큼 그 만큼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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