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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정직함과 부정직함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19 조회수1,250 추천수8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19일 (일) - 연중 제25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가 16,1-13 [또는 16,10-13]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 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 놓아야겠다.’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6)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 주었다. 8)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 9)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니 잘 들어라.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일에도 부정직할 것이다. 11)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너희의 몫을 내어 주겠느냐?”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복음산책]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정직함과 부정직함


  우리는 지난주일 복음에서 잃은 양, 은전, 아들을 다시 찾은 목자, 여인,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한 죄인의 참회와 회개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알았다. 비유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든 세리와 죄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율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정작 회개해야 할 죄인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바로 잃어버린 양이며 은전이며 아들로서 하느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광야에 놓아둔 채 찾아다니시고, 온 집안을 샅샅이 찾으시며, 매일같이 동네 어귀에서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올까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말씀으로서 앞의 비유들을 염두에 두고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부분은 부정직한 청지기의 약삭빠른 일 처리에 관한 비유(1-9절)이며, 둘째 부분은 재물에 관한 말씀(10-13절)이다.


  ① 우선 첫 부분의 비유는 어떤 부자에 의해 고용된 청지기가 재산을 관리하면서 낭비 또는 횡령한 것이 드러나, 청산(淸算) 후 퇴출(退出)을 강요받는 것으로 시작된다.(1-2절) 그 동안 재무관리로 의자생활에 습관이 되었을 청지기는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그는 짧은 시간에 묘안을 생각해 내고 일사천리로 일을 해치운다. 묘안은 퇴출 후에도 자기를 후하게 대접해 줄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 빚을 삭감해 주는 방법을 택했다.(5-7절) 마지막에 가서 주인은 청지기가 자기를 속이는 줄을 모르고 그의 약삭빠른 일처리를 보고 오히려 그의 슬기로움은 칭찬한다. 비유의 마지막에 붙은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8b절)는 말씀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설로 보인다. 물론 빛의 자녀들이 이를 흉내 내지 말 것을 바라시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부자주인과 같은 입장에서 부정직한 청지기를 칭찬하려 하신 것 같다. 무엇이 그리 칭찬 받을만한 일인지를 살펴보자.


  그것은 부정직한 청지기가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를 깨닫고 자신의 미래를 구할 수 있는 절묘한 방책을 마련한 것이다. 청지기는 비록 부정직한 방법을 택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가능한 모든 수법을 동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청지기의 부정직하고 비양심적인 면은 덮어두고라도 그의 슬기로움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걱정할 줄 알고, 이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다. 예수께서도 이 점을 칭찬하신 것이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가능하면 본받으라는 것이다. 임박한 심판 앞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걱정해야 한다. 그것도 영생(永生)을 판가름 짓는 심판이라면 그 절박함이 더욱 고조된다. 청지기가 당한 ‘청산 후 퇴출’이라는 실직(失職)의 위기처럼 최후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회개(悔改, Metanoia)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다. 이젠 머지않아 우리도 자신의 삶을 청산하고 이 세상에서의 퇴출을 명(命) 받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회개의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일 수도 있다.


  ② 두 번째 부분의 재물에 관한 말씀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정직함과 부정직함, 충실함과 불충함의 대조(對照)를 통하여 하느님과 재물 가운데 양자택일(兩者擇一)의 원칙이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부정직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보듯이 평소에 남의 것을 마구 낭비하고 횡령한 사람은 마지막까지 부정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마련한다. 즉, 일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한번 부정직하고 불충한 사람은 끝까지 부정직하고 불충한 사람으로, 한번 정직하고 충실한 사람은 끝까지 정직하고 충실한 사람으로 지속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이든 비록 단 한번이라도 선택이라 할지라도 삶의 방식 전체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직함과 부정직함은 결코 어울려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재물과 하느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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