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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목숨을 살린 사람들 - '미친 사람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0 조회수1,269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20일 (월)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오늘의 복음]  루가 9,23-26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예수께서 23)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24)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거나 망해 버린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을 거느리고 영광스럽게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복음산책]  목숨을 살린 사람들 - ‘미친 사람들’


  오늘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 이웃 때문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103위 한국 천주교의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대축제의 날이다. 동시에 우리들도 성인들의 순교정신을 본받아 신앙을 증거 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어떠한 경로를 통하여 들어왔는지 모르는 신자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어느 교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평신도 자체에 의한 선교방식이었다. 천주교(서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이미 조선시대 후기 17세기 초엽에 창설된 실학파에 의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실학파는 전통유학(儒學)의 전근대적인 사고와 가치관에서 탈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하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에서 출발하였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실학파의 학자들은 천주교를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으로 받아들여 소위 ‘비신자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함을 알고는 북경으로 가는 동지사 편에 이승훈을 딸려 보낸다. 1984년 이승훈(베드로)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관련서적들과 성물(聖物)들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공동체가 임의로 만들어 실시한 ‘가성직(假聖職)제도’ 또한 교회사에 유례없는 조직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1791년부터 조선의 천주교는 조정으로부터 박해를 겪어야 했다. 초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이유는 서학의 평등사상으로 말미암은 양반위주의 사회질서 파괴와 유학정신의 근간인 조상제사의 거부였으나, 나중에는 정치적 다툼과 이권이 개입되었다. 모진 박해 중에도 신자들은 중국의 성직자와 1836년부터 프랑스의 선교사들을 영입하여 교세를 확장시켰고 결국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 두 명의 방인 사제를 배출하였다. 조정의 천주교에 대한 박해는 100년 넘게 계속되었고, 만 명이 넘는 신자들이 순교했다. 대대적인 박해로는 1791년(정조15) 신해박해, 1801년(순조1) 신유박해, 1839년(헌종5) 기해박해, 1846년(헌종12) 병오박해, 1866년(대원군) 병인박해를 손꼽을 수 있다. 이들 박해 중에서 기해, 병오, 병인박해 때 순교한 103명이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맞아 내한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들 가운데 최초의 방인 사목자였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와 훌륭한 평신도 정하상 바오로가 대표적 인물이다.


  오늘은 비록 한국천주교회의 한국인 성인 93위(사제 1명, 평신도 92명)와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성인 10위(주교 3명, 사제 7명) 등 103위 성인의 천상탄일을 기념하고 그들의 순교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날이지만, 우리나라에 순교자가 어디 이들 뿐이랴. 1784년 이 땅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100여년의 박해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신앙의 씨앗이 되었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신자들과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신자들의 열정적인 신앙생활과 복음전파를 통해 오늘 한국천주교회는 세계 속의 교회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또한 무명(無名)의 순교자들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눈을 지그시 감고 우리 선조 순교자들의 박해와 순교 상황을 떠올려 보면 그들은 참으로 ‘미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복음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일찍이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 정약용(丁若鏞)의 형으로서 이벽(李檗)과 매형인 이승훈(李承薰) 등과 교유하여 서양의 학문과 사상을 접하고, 가톨릭에 입교, 벼슬을 버리고 전교에 힘썼던 이유도 그가 서학(西學)에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되어 이곳에서 한국 최초의 수산학 관련서적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편찬한 것도 그가 물고기에 ‘미친’ 탓이 아니었겠는가? “재물을 잃으면 적게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목숨을 잃으면 죄다 잃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목숨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잃지 않을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목숨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복음에 ‘미쳐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추종하는데 역행하는 이기적인 ‘자아’와 ‘욕심’을 조금씩 버리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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