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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 현대의 성인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3 조회수1,173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23일 (목)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 기념일


▣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1887-1968)


1999년 5월 2일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는 광장이 터져나갈 만큼 많은 군중이 모여 든 적이 있었다. 그 군중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재하는 이탈리아 출신 비오 사제의 시복식(諡福式)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이었다. 2002년 6월 16일 또 한번 백만 명의 신자들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들었다. 바로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비오 사제의 시성식(諡聖式)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운집한 신자들이었다. 비오 사제는 세상을 떠난 지 34년 만에 시성되었던 것이다. 중세 교회사 이후 근대에 들어 한 그리스도인이 타계한 후 이렇게 빨리 시성된 성인은 없었다. 그만큼 비오 성인에 대한 생생한 기록들이 있다는 증거다.


비오 성인은 1887년 5월 25일 이탈리아의 베네벤트 지방 피에트렐치나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생 이름은 프란체스코였다. 어릴 적에 심한 열병과 발작 증세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나 기적같이 치유되었다고 한다. 16살에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하였으나 결핵으로 악화된 몸을 이끌고 신비주의적 수도생활에 정진하였다. 성인은 최악의 건강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1910년 사제로 서품 되었다. 끊임없는 기도와 겸손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며, 1918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五傷)을 몸에 간직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인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많은 순례자들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처음에 성인의 오상과 끊임없는 순례자들의 발길에 대한 교회의 공식입장은 냉랭하다 못해 경계적이었다. 그러나 성인의 안수를 통해 많은 병자들의 고통이 감소되었고, 때로는 치유되기도 했다. 1947년 어느 날 순례자의 틈에 카롤 보이티야라는 젊은 폴란드 사제도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다. 성 비오는 그 당시에 그의 교황선임과 교황에 대한 1981년의 테러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그 후 비오 성인에 대한 교회의 공식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성인은 많은 기부금으로 병원과 구호소를 건립하게 하였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또 하나의 유명한 성지가 된 상 죠반니 로톤도에서 1968년 9월 23일 성인은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는 오늘도 수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이탈리아에는 성인의 전구를 비는 2,300여개의 기도모임이 있다고 한다.


[오늘의 복음]  루가 9,7-9

<요한은 내가 목 베어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7) 한편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8)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하는 말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9)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 베어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예수를 한 번 만나 보려고 하였다.◆


[복음산책]  헤로데의 호기심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을 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님의 공생활 개시(開始)를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붙잡아 옥에 가둔 시점에 두었다.(마태 4,12; 마르 1,14) 그 후 헤로데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누구인지를 궁금해 하는 반응과 함께 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최후에 대하여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마태 14,1-12; 마르 6,14-29) 여기서 헤로데는 예수를 자기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단언(斷言)하고 있다. 그러나 루가는 전승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기록은 삭제하고, 헤로데의 호기심을 덧붙여 그가 예수를 만나 보려하는 의도를 지적하고 있다. 왜 헤로데가 예수를 만나려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은 당시 누구에게나 있었다.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바로 곁에서 보고들은 사람들뿐 아니라 당시 팔레스티나의 최고 권력가인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도 예수가 관연 누구인지 궁금해 하였던 것이다. 헤로데는 아직 예수를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예수에 관한 수많은 소문들이 그의 귓전에 몰려왔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 복음이 전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을 두고 소생한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나, 아니면 옛 예언자 중의 하나로 생각했다. 헤로데에게 있어서 예수는 소생한 세례자 요한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것은 헤로데가 요한을 목 베어 죽였기 때문이다.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에서 헤로데가 예수를 자기가 목 베어 죽인 세례자 요한이 소생한 것으로 보도되는 배경에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밀접한 관련성이 깔려있다. 그러나 루가는 이 관련성을 배제하고 오직 예수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헤로데와 예수를 관련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헤로데가 예수를 만나려 하는 이유는 예수를 정말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다. 나중에 헤로데는 운명의 장난에 의해 어차피 법정에서 예수를 만나게 된다.(루가 23,6-12) 그러나 그는 예수를 진정 알려고 하기보다는 예수가 행하는 기적을 한 번 보고 싶어 했을 뿐이다.(루가 23,8) 오늘 복음의 대목에서 헤로데가 예수를 만나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예수를 경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라면, 예수는 정치적인 메시아인 동시에 종교적인 메시아여야 한다. 정치적인 메시아라는 부분이 헤로데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헤로데 자리는 위태로워지게 될 것임으로 그는 자연히 불안에 싸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여 헤로데는 결국 아버지 헤로데 대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를 드리러 왔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을 듣고 당황한 헤로데 대왕이, 겉으로는 자신도 경배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서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몽땅 죽여 버릴 음모를 품지 않았는가 말이다.(마태 2,3.8.16) 헤로데 대왕은 그 음모를 실행에 옮겼고,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 또한 겉으로는 예수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결국은 예수의 사형선고에 적극적으로 동조함으로써 빌라도와의 반목을 깨고 친분을 다지게 된다.(루가 23,6-11)


누구든지 예수를 대면하려는 자는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야 한다. 헤로데 대왕도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도 자신의 지위를 고수하려 했기에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경계의 대상이었고, 이것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그분께 다가서느냐에 따라 그분 또한 우리에게 다르게 다가오실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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