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Re:엘렌님, 뜨게질하시는 할머님께 드리세요.^^*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3 조회수769 추천수8 반대(0) 신고
                              성모님의 바느질 (성모성탄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한번은 어느 청년이 하느님께 화를 내며 "도대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엉망이고 엉터리입니다."라고 따졌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그 청년에게 "여보게, 젊은이. 자네는 왜 부정적으로 이 세상이라는 수예틀의 아래쪽만 바라보는가? 긍적적으로 수예틀의 위쪽을 바라보게! 지금 얼마나 멋진 그림이 수놓아지고 있는가를 보게나. 지금 나의 어머니께서 직접 바느질을 하고 계신다네. 좀더 인내를 가지고 작품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게나..."

 

   그 청년은 바로 저였습니다. 지난 주말에 저희 병원 부근에 있는 은혜의 집에서 청년들 피정에 고백성사를 도와달라고 해서 갔었는데 프로그램이 늦어졌다며 저를 무려 한 시간이상 기다리게 했습니다.(얼마나 화가 나는지요...) 그리고 깜깜한 복도( 몇 개의 컵초만일 켜져있는...)를 통과해 역시 깜깜한 방에서 청년들의 고백성사를 주고나니 어느덧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죄인들(^^*)을 기다리면서 묵주기도(마리아항공)을 하다보니 복도와 밤의 어둠을 밝히는 그 컵초들이 야간비행(?)을 하는 저를 안전하게 연착륙시키는 '활주로의 유도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은혜의 집으로 저를 초대해주셨고 저를 통해 '하느님의 놀라우신 은혜'라는 수예작품을 만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로운 성모성탄일을 맞으면서 성모님께 축시로 '바늘질'이란 시를 바칩니다. 가브리엘통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제가 지금 소개하려는 이 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감히 자신있게 공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긴긴 겨울밤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을때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젊은 분들은 몰라도 사십대를 넘어선 분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임홍재시인이 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나는 이 시를 소개합니다.


<바느질>

 

한평생 닳고닳은

눈물의 화강석

맑은 귀를 틔워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눈썹마다 푸른 신경이 돋아

아린 빛살에 찔리며

구멍 뚫린 자루를 깁는다.

 

그슬린 등피 너머

물빛 연한 시간이

바늘귀에 뜨이고

죽은 은어 떼가 물구나무 서서

목숨의 한 끝을 말아올리는 밤.


어머니 십팔문 반 옥색 고무신으로

눈물에 익은 달빛을 퍼 올리다

잠든 내 유년........


술래처럼 실을 물고

물구나무 선 방

가난한 식솔들의 목마름이

목화실에 뜨이고 뜨이고.......


청보리 목잘려 간 황토 영마루

떠나간 할머니 상복 깁던 바늘로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뼈마디마다 일어서는

몸살을 안고

채워도채워도 채울 길 없는

허기를 깁는다.


눈이 내리는데, 눈이 오는데

우리들의 마음 속에 간직한 씨앗 하나

긴박한 눈물에 익어

맑은 하늘 아래 사랑으로 채우고

목화 다래가 될까!

속곳까지 찟긴 바람이여

귀먹은 바늘귀여.

 

불씨 다독여 인두를 묻고

반월성 성마루에 달이 오르듯

고운 선 빚어내어

어머니 바느질을 하신다.

 

바람은 청솔바람

대숲에 와 머물고

댓잎소리 우수수

한지에 스미는 밤

머리칼 올올마다 성애가 찬데

한평생 닳고닳은 곧은 바늘로

바느질을 하신다.


   제가 처음 이 시를 읽은 때가 1980년도였습니다. 이미 그 바로 전 해에 이 시인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이 시는 75년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입니다. 같은 해에 이 시인은 '염전에서'라는 시조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도 당선되었습니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힘들다는 신춘문예에 동시에 두 군데나 당선되어 화려하게 등단했으나 4년 후인 79년도에 안타깝게 타계하고 만 것입니다.

 

   1940년대에 태어나 70년대 후반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힘들고 궁핍한 시대를 살다간 세대의 이 시인은 그러나 너무도 순수하고 맑은 시심으로 가난마저도 이렇게 아름답게 승화시킨 '바느질'이란 시를 남겼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는 순간에 물결쳐오던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시가 너무도 아깝고 소중하고 좋아서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보물처럼 간직해 왔었습니다. 3년 전 단 한 사람에게만 이 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제 홈피에 이 시를 1번으로 등록했답니다. 하느님을 믿는 마음으로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개인적 이기심(?)을 밀어냈다고나 할까요. 활동기간이 4년밖에 되지 않아 세상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고향인 안성에 다음과 같은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답니다.

 

  "한평생 닳고닳은 눈물의 화강석 맑은 귀를 틔워...... "

 

  바늘을 눈물의 화강석으로,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을 닳고닳은 바늘에 비유한 시인의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신비합니다. 졸음을 쫓으며 어머니 바느질하시는걸 지켜보다 지루해진 어린 소년, 마음속으로 어머니 옥색 고무신에 눈물로 익은 달빛을 퍼담아 올리다가 스르르 잠드는  어린아이의 외로움 같은 것이 가슴 아릿하게 느껴집니다. 유난히도 맑고 여린 감성을 지녔던 한 소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시는 무절제한 어휘의 나열이 아니라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성의 세계라는 걸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느끼게 됩니다.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좋은 시를 느낄 줄은 아는 제가 감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라고 생각하는 이 시가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동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정자님의 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