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81) 칼에 날을 새워야만!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4 조회수1,36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4년9월24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ㅡ전도서3,1-11;루가9,18-22ㅡ

 

                        칼에 날을 새워야만!

 

 

명절이 오시고 있다.

양념을 준비하느라고 제법 잔 손질이 가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고명과 소재료로 쓸 파 종류와 풋고추와 홍고추를 손질하였다.

다져 놓을거, 어슷 썰을거, 길이 썰을거, 동그라미 그대로 썰을거,

씨 뺄거, 씨 안 뺄거, 지짐이용, 국거리용, 고명용.....

 

그런데

칼이?!

 

싸아악! 싸아악! 싸아악!~~~!

영 먹혀들지 않는다.

 

고명을 올릴 것은 결이 분명해야 하는데 꼭 쥐뜯어 먹을 심산이다.

큰 일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칼을 간다.

아직은 날자가 있어서 양념준비 정도 쯤이야 하는 나태함으로 칼을 부렸다.

쓰던 칼을 놓고 다른 칼을 들었다.

 

 싸악! 싸악! 싸악! 싸악! 싸악! ~~~~!

쪼꼼 그래도 나은형편이다.

 

준비된 재료들을 몽땅 놓고 설합을 열었다.

칼에도 얼굴이 있다.

 

시집이라고 와서 제일 먼저 산 물건이 식칼과 도마다.

어른들이 칼은 사 가는게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칼을 산 장소가 지금은 송파동 성당이다. 1층이 당시로는 초대형 수퍼마켓이었다. 그 건물은 없어지지 않고 리모델링으로 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집의 칼은 팔자가 성당터였나보다. 지금은 닳고 닳아서 날이 선 부분이 S자 모양을 하고 있지만 손에 익은 촉감이 그 칼처럼 편한 칼도 없고 정이 가는 칼도 없다.

 

그 다음은 짝궁이 사다준 두개의 칼인데

하나는 정육점 칼처럼 크고 단단하며 무섭게 크다. 역시 위풍당당한 몸매만큼 힘이 좋다. 큰일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마모되거나 쉽게 날이 무디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시로 날을 새우지 않아도 된다. 좋은 칼이니까 상당히 비싸게 주고 샀다고 들었다. 또 하나는 짧고 날이 둔탁하며 뼈다귀를 내리쳐도 끄떡이 없다. 짧기 때문에 손의 감각에 예민하게 움직여 준다. 주로 갈비살을 도려낼 때나 족발 같은거 발라낼 때 쓰는 칼이다.

 

식칼로는 꼴찌인 칼이 있다. 나에게 좀 사랑을 받지 못 한다.

시집 와서 맨 먼저 산 칼의 날이 기형으로 변한 터라 가끔은 좀 반듯한 날이 필요하여 근년에 하나를 샀다. 그런데 손에 익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놈도 내 말을 잘 안듯는다. 그래서 몇년이 지난 아직도 새 칼처럼 허리의 띠가 닳지를 않고 선명하다.

 

그리고 과일 칼이 세개다.

끝이 뾰족하고 철이 종이 처럼 얇은 녀석은 사과나 배 같은 껍질을 얇게 저미는 기술이 있고, 좀 두꺼운 녀석은 밤이나 대추살을 바르는데 좋으며 야채를 다듬을 때는 필수로 동반하는 녀석이다. 한 녀석은 그냥 여기저기 땜빵하러 다니는 이쁜 맛이 있는녀석이다. 뭐 가끔 끈도 자르고 야채도 다듬고 과일도 깍고 힘든 중노동이 아닌데는 졸망졸망 잘도 따라다니는 없어서는 안 되는 녀석이다.

 

끝으로 감자깍는 칼인데 언제 샀는지 얻었는지 누가 주었는지 기억도 없다.

유일하게 숫돌로 갈 수 없는 미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번도 갈아서 쓴 적이 없다. 그러나 아직도 잘 드는 칼이다. 그녀석 때문에 가끔 사은품 같은 것으로 감자칼이 생기면 모두 남에게 선물해버린다. 지난번에 새댁도 감자칼을 받더니 "언니가 새칼 쓰시구 저 헌 칼 주세요." 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 했다. "이놈이 나 한테 봉사한 햇 수도 기억이 안나는데 아무리 말 못 하는 쇠붙이지만 배신허면 쓴다냐? 너두 나 같은 맘이로 이녀석 오래오래 사랑하면서 써라." 그러구 새 칼을 주었다.

 

칼 일곱 자루가 화장실 바닥에 발랑 누웠다.

이 놈들도 명절을 샐려구 때꾸정물을 빼는 작업에 들어갔다.

신혼때 산 숫돌은 이미 닳고 닳아 반도막이 나서 버렸고, 지금 있는 숫돌을 8년전에 섬에서 이사와서 샀다. 그러니까 이녀석의 허리가 옴폭 들어가 있다. 참 수고로운 삶이 그녀석의 고단한 허리에서 읽혀진다. 쇠덩어리들을 갈아낼 적에는 누워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 몸을 갈아서 더 많이 흘려 보내야 고녀석들도 갈려서 칼이라는 구실을 하게 해 주는 것이다.

 

칼을 갈다가 말고 또 눈물이 났다.

미물도 아닌 무생물의 일생도 제 구실을 하느라고 서로 자기 자신을 갈고 있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무엇을 갈아내고 있는가?!

그런데 칼갈이가 몹시 힘이 든 작업이다. 한 쪽으로 갈아도 안되고 양쪽이 균형이 서야하기도 하지만 그냥 쓱쓱 문지른다고 날이 서지 않는다. 팔뚝에 고등어 살을 빵빵히 세우고 탱글탱글한 힘을 고르게 분배하며 갈아야한다.

 

시골에서 처럼 받침이 되어 줄 삽자루가 없으므로 숫돌이 밀려다니지 않도록 한 발로 잘 버티고 한 발에 내 몸의 중심을 잡으며 등에서 땀이 솟을 때 까지 갈아야한다. 잘 못 하면 갈다가 아니면 날을 점검하다가 손가락을 베여서 명절 내내 고생을 배로 하게 되는 위험도 크다. 칼 하나 갈아 쓰는데 이렇게 절차가 복잡하다.

어쨋든지 칼도 제 몸을 깍아서 닳고, 숫돌도 제 몸을 닳아서 허리가 굽고, 나는 나 대로 땀에 범벅이 되었다.

 

깨끗이 목간을 마치고 제 자리를 찾아 정돈을 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 성당터에서 산 식칼을 들고 잠시 방치해둔 재료들 앞에 섰다.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싹!  ~~~!

우와! 진짜 좋다.

조금 정성을 드려 주었더니 칼이 알아서 일을 해 준다.

이번 추석의 칼 질은 걱정 안해도 되것습니다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셨지유?!

이런 무생물들도 자기 몸을 먼저 닳고 세상을 향해 바르게 선다는 것을요!

화목한 추석 되시구랴!

 

예수님도 추석 잘 새시구랴!

어머니 마리아님의 송편 솜씨는 어떠신가요?

히히!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루가9,22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